‘선생님이 망신을 줬다’ 며 눈물을 보였던 효리는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등교했다.
늘 그렇듯 자신감 있게 손을 들어 발표를 했고 앞에 앉은 준호랑도 조잘댔다.
3교시 학급임원 선거 후보에도 당당히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적었다.
집에서 소견발표를 적어온 친구도 있었는데
효리는 그런 아이들 틈에서 원고를 보지도 않고 자신을 뽑아달라고 당당히 말했다.
멋진 공약도 여러 개 밝혔는데 그 중엔 어제의 사건을 언급한 것도 있었다.
“어제 사실 기분이 아주 나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친구들이 나처럼 기분이 나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허락도 받지 않고 노트를 친구들에게 공개하는 일은 없도록 할 것입니다.”
오호~ 요봐라?
영문을 모르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효리와 티격태격했던 준호가 고개를 돌려 내 눈치를 봤다.
애써 웃어줬다.
효리는 아직도 선생님이 자신을 망신 주려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학생이 친구들 앞에 자신의 노트가 공개되는 것이
끔찍이 싫다면 교사도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건 교권의 영역이라 우긴다면?
그리고 아이는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나온다면?
이래서 선배들이 자조 섞인 목소리로 그랬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여자회장 자리를 두고 효리는 또 다른 후보와 엎치락 뒤치락했다.
양가감정이 마음속에서 일렁였다.
‘그래, 효리가 회장 되면 좋겠다. 아이가 한 뼘 성장할 수 있을 계기가 될지도 몰라.’
‘아니지, 매사 저렇게 태클을 걸면 피곤할 것 같은데’
효리는 4표 차로 회장에 당선되지 못했다.
너무나 아쉬워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자 내 탓만 같아 미안했다.
아쉽게 떨어진 아이들에게도 한 마디 소감을 말해보라 했다.
얼굴에 억울해죽겠다는 표정의 효리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버벅거리지만 안 했어도 됐을 텐데 속상해요.”
떨어진 후보들에게 1학기 열심히 생활해서 2학기에 꼭 도전하라는 말로 위로를 전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을 좀 도와달라는 말에 효리는 뚱한 표정을 보이며 가타부타 말도 없이 하교했다.
아이 마음 열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어렵게 효리 어머니와 통화가 됐다.
어제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고 4학년 생활은 어찌 지냈는지 물었다.
예상대로 효리는 선생님과 너무 힘든 한 해를 보냈고
친구 관계도 어려웠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작년 담임 선생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아이와 늘 대치하셨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누구보다 똑똑한 학생이 교사와 맞선다?
교사의 작은 약점이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요 열두 살 제자를 어찌 요리할꺼나.
공식 어리바리, 구멍 숭숭 현미쌤,
까다로운 시어머니 제대로 만났다.
유쌤~ 바짝 긴장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