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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Apr 09. 2024

만우절에 아이를 울렸다

아침 출근길 친구들 카톡방이 시끄럽다. 한 친구가 요즘 초등학생들은 만우절에 어떤 장난을 치느냐고 묻는다. 가만 보자. 그러고 보니 요즘 학교에서는 만우절 장난이 사라졌다. 장난전화 피해를 경고하는 뉴스 탓인가? 재미나고 소소한 해프닝도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학교가 너무 삭막해진 것 같아 갑자기 서글퍼진다. 

그럼 오늘은 내가 한번 장난쳐봐? 


학년 교사 카톡방에 담임을 바꿔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인지 별 호응이 없다. 다행히 1반 선생님과 쿵작이 맞았다.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교실을 바꿔 들어갔다. 요 녀석들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낯선 선생님이 교실에 있으니 아이들이 자꾸 와서 묻는다. 

“선생님 누구셔요? 우리 선생님 아파요?”

심각한 척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따가 모두 등교하면 얘기하자.”

등굣길 멈칫하는 아이들, 무슨 일이냐며 서로 소곤거린다. 자리가 다 찬 교실에 정적과 긴장감이 흐른다. 무슨 말로 시작할까? 

“너네 담임 선생님 엄청 좋으시지?”

그제야 말문이 터진다. 담임 칭찬이 이어졌다. 친절하고 열심히 공부 가르쳐주고, 화도 잘 안 내시고...

“그런데 어떡하니. 오늘 날짜로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

“네? 네? 뭐라고요?”

눈이 똥그래지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 

“우리 선생님 편찮으셔요?”

“그건 잘 모르겠다 나도. 교장선생님이 오늘부터 1반 들어가서 애들 가르치라고 하셨어.”

그런데 몇몇 아이가 한 아이를 지목한다.

“야! ** 너 때문에 선생님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거잖아.”

“며칠 전에도 선생님 힘들게 했잖아.”

여기저기서 친구들이 한 마디씩 거드니 그 아이는 울상이 된다. 

“네가 담임선생님 힘들게 했어?”

“그게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아이.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참았다. 안돼! 최대한 무표정하게, 목소리는 무섭게! 

“자, 이제 옛날 담임은 잊어라.”

“네? 진짜 우리 선생님 이제 못 봐요?”

“그럼 내가 거짓말하겠니?”

앞에 앉은 꽤 똘똘해 보이는 한 아이가 대뜸 한마디 한다.

“에이, 선생님 오늘 만우절이라고 그러시는 거죠?”

뜨끔했지만 굳은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그렇게 믿고 싶지? 그런데 어떡하냐. 아냐!”

목소리를 한층 더 깔았다.  

“한 가지 꼭 짚고 싶은 게 있어. 난 예전 너희 담임 선생님과는 완전 정반대야. 일단 친절하지 않아. 그리고 두 번 얘기하는 건 딱 질색이야. 기억해라. 그리고 참, 내가 만난 학생들은 나를 ‘마녀’라고 부르더라.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 너희들도...”

“선생님은 이름이 뭐예요?”

갑자기 말을 끊는 아이. 그 아이를 쳐다보며 정색한다. 

“너, 앞으론 내 말허리 안 잘랐으면 좋겠어. 학생의 기본 예의 안 배웠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쏴아~해졌다.  

“친절하고 다정했던 옛 선생님은 잊어라.”

그런데 1   분단에 앉은 아이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오열한다. 

“진짜 우리 선생님 안 와요? 선생님은 우릴 괴롭히려고 학교 와요?”

어, 내 연기가 너무 악역이었나? 어떡하지? 

“아니, 그럴 리가. 난 최선을 다해 내 역할을 할 거니까 너네도 최선을 다해 학생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2 분단에 앉아 있던 한 여자아이도 고개를 숙인다. 손으로 눈물을 쓱 닦는다. 안 되겠다. 더했다가는 통곡 소리 날 것 같다. 

“자자, 1반? 모두 놀랐죠? 오늘은 만우절이었고요. 지금까지 선생님 말은 뻥입니다요!! 난 5반 선생님이고요. 너희들 담임 선생님은 지금 5반에서 똑같은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

어안이 벙벙해진 아이들. 그러다 순식간에 사태파악을 하고는 안도의 한숨과 웃음이 터진다.  

“아, 완전히 속았다.”

“선생님, 너무 했어요.”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어.”

“선생님, 연기력 미쳤어요.”

“5반 애들 불쌍해요.”


1반 아이들의 아우성을 들으며 교실을 빠져나왔다. 교실 앞에서 만난 1반 선생님도 웃겨 죽는 줄 알았단다.

앞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이들이 와~ 하며 박수와 함성을 지른다. 자기들을 왜 버렸느냐며, 교장실 쳐들어가려고 했다는 등 원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너무 놀라 심장 떨어져 버릴 뻔했다는 아이도, 눈물 날 뻔했다는 아이도 있었다. 만우절에 이런 거짓말하는 선생님 처음 본다며 완전 대박이라는 말도 했다. 얘들아. 미안해. 재밌는 추억 한번 만들어주고 싶었을 뿐이야. 가슴이 쿵 떨어졌다고 눈 흘기는 아이들을 보는데 왜 이리 고소했는지 모르겠다. 

내년 만우절엔 30분 말고 하루 정도 담임 바꿔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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