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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May 11. 2024

나야말로  키웠다!  사랑한다 착각하며

어성진 '자녀를 사랑한다는 아빠의 착각'을 읽고

첫 장을 펼칠 때부터 놀랐다. 작가의 에피소드가 딱 과거의 나를 염두에 두고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지막 장까지 반성하며 읽었다. 왜 진작 이런 책을 읽지 못하고 난 두 아이를 막 키웠을까. 아쉬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올망졸망한 세 딸을 키우는 어성진 작가는 청각장애특수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다. 이쯤 되면 그가 안쓰러운가. 아이들에 둘러싸여 파김치가 된 그가 보인다면 사람 잘못 보셨다. 그는 가르치는 일을, 특히 아버지로서의 삶을 완벽하게 즐기고 있었다. 매 순간 고민하고 생각하는 아버지로 끊임없이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장면이 기억에 남지만 매일 세 딸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현관에서 나누는 인사는 참 인상적이다. 소파를 없애고 거실 책상에서 함께 책을 읽고, 매일 칭찬 감사일기를 쓰는 등 가족의 소소하고 잔잔한 일상이 책 안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부모가 어른이라고 아이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눈높이를 맞춰가며 어린 자녀를 존중하며 묻고 이야기하며 소통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성진 작가의 일상은 감탄의 연속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내가 딱 그랬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바로 연년생 딸들을 준비도 없이 낳고 키웠다. 나 혼자 낳고 키운 게 아니므로 남편도 공범이다. 생 왕초보 부모는 교육이 아닌 보육만 했음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엄마는 드라마를 보면서 딸들은 문제집을 풀게 했다. 아빠는 휴대전화를 끼고 살면서 아이들은 중학교 때까지 2G 폰을 고집했다. 그런 모자란 부모 밑에서 대들지 않고 삐뚤어지지 않고 잘 자란 딸들에게 절이라도 해야겠다.      


작가는 이기적인 부모의 말과 행동을 조곤조곤 짚어준다. 밤낮 일을 해서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게 그토록 중요한 거냐도 따진다. 아이들은 엄마·아빠와 함께 놀며 추억을 만들길 원한다고. 그래서 저자는 어린이집 보내는 것도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며 아이의 생각을 묻는다고 했다. 맞다. 우리도 그래야 했다. 지금도 남편과 함께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딸들과 함께하지 못한 지나간 ‘시간’이다. 백일도 안된 작은딸을 아래층 아주머니에게 던지듯 맡기고 두 돌 된 큰딸은 종일반 어린이집에 강제로 들여보냈다. 만약에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과감히 선택할 것 같다. 실컷 엄마 품에서 충분히 놀고 눈 맞춤하며 자랄 수 있도록 함께 하는 시간을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큰 사람이다. 늘 자기반성과 성찰을 생활화한다. 아이 앞에서 ‘미안하다’ ‘잘못했다’라는 말을 기꺼이 하는 모습은 참 닮고 싶다. 우리 부부는 ‘권위’라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은 그 실체 없는 성을 허물기가 참 어려웠다. 돌아보니 사춘기 절정 딸들과 갈등의 핵심은 아마도 사과를 제대로 못해서였다. 버르장머리 잡겠다며 남편이 딸 머리통을 때렸다가 난리가 났었다. 폭풍의 결말은 결국 남편의 진정 어린 사과로 매듭이 지어졌다. ‘잘못했어. 미안해.’라는 말을 들은 딸은 펑펑 울었다. 혹독한 홍역을 치른 후에야 우리 부부는 ‘미안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는데 도대체 작가는 어떤 교육을 받았길래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를 교훈을 이토론 젊은 나이에 실천한단 말인가.     


부모로서 이기심과 욕심을 ‘사랑’이라고 포장하지 말라는 경고도 참 아프다. 겉으로는 ‘괜찮다.’ ‘너만 행복하면 돼’라고 속삭였지만, 속으로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가기를 온몸으로 외쳤다. “시험 100점 못 받아오면 엄마한테 자꾸 눈치가 보였어.”라고 지금도 얘기하는 두 딸에게 정서적 폭력을 행사한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누구나 부모는 되지만 훌륭한 부모는 공부하고 치열하게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 책을 읽을수록 작가의 집과 우리 집이 겹치며 자꾸만 고개가 숙여졌다.      


작가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담담히 이야기하고 원가정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들려줄 땐  삶에 대한 그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졌다. 세월호 사건을 보며 세 딸의 아버지로서 털어놓았던 진솔한 고민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의 긴 사색을 통한 결론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선한 행동이 선순환되어 내 가족을 구원할 것이라는 ‘밀알’ 같은 삶에 대한 자세라니! 건강한 가정이 결국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는 그의 신념을 보며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참 닮고 싶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진정한 부모가 되기 위해 돌아봐야 할 것들을 되짚어 주고 무심코 했던 행동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며 작가의 아이들과의 일상으로 풀어준다. 부모의 착각을 인정하고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고 사랑한다면 부모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간 활용, 스마트폰 사용 문제로 자녀들과 힘든 나날을 보내고 계시다면 이 책을 당장 펼쳐보라 권한다. 30대의 초보 보호자에게, 40대의 갈팡질팡 학부모에게 작가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자녀가 기적처럼 온 인생은 우리를 더 큰 인간으로 만드는 행복한 여정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 기꺼이 동의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했던 나의 시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을 10년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정말 잘할 자신이 생겼는데 어쩌나, 너무 늦었다. 뒤늦은 후회가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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