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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l 14. 2024

뭐든 처음처럼 귀하게!

학교 알뜰시장을 보며

모든 것이 부족해서 새것을 좀처럼 보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기억나는 나의 최초의 새것은 초등학교 입학식 때 둘러맸던 ‘토끼와 거북이’ 그림이 그려진 빨간 책가방이었다. 그 가방에서 나는 새것 특유의 석유 냄새가 좋아서 품에 안고 킁킁거렸다. 그리고 무지갯빛의 예쁜 코고무신이 있었다. 여름날 개울가에서 둥둥 띄워 놀다 한 짝을 잃어버리고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부모님께 혼났다. 4학년 봄 소풍을 앞두고 새 신발을 얻고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던 장면도 있다.

학용품은 또 얼마나 귀했던지 연필 한 다스를 못 사 겨우 한 자루씩 손에 넣었다. 연필을 칼로 깎아가며 닳도록 쓰다 몽당연필이 되면 볼펜대에 끼워 마지막 끝자락까지 썼다. 공책 한 권을 상품으로 받고 싶어 운동회날 죽도록 달렸다. 화선지를 아끼느라 아버지가 잘라서 묶어준 신문지 위에 궁서체 붓글씨를 쓰고 또 썼다. 부들부들하지만 질긴 그 종이 위에 붓이 지나갈 때면 손에 땀이 나고 떨려 세로획 가로획이 자꾸 삐뚤거렸다.      

모든 것이 부족해서 모든 것이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1학기 전교회장단 주최로 학년 알뜰시장이 계획됐다. 그런데 사전 조사를 해보니 팔려는 사람은 없고 온통 사겠다는 아이들뿐이다. 시장놀이를 하려면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행사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될 것 같다고 집에서 찾아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볼멘소리했다. 엄마가 필요 없는 물건은 거의 다 바로바로 버리고 중고앱으로 팔아서 없단다. 몇몇은 필요한 물건도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다며 행사에 참여 안 하겠다고 했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시장이 형성되려면 어느 정도 공급량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아이들을 설득했다. 결국, 시장놀이 참여는 자율에 맡겼고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친구들과 연합하여 가게를 열고 집에서 적어도 팔 물건을 하나 이상은 가져오라고 했다. 놀이에 참여하고 싶은 아이들이 그래도 꽤 많이 물건을 챙겨왔다. 아끼던 포카가 포장돼서 등장했고 인형들도 보였다. 앞반이 파는 중간놀이 시장놀이 땐 살 물건이 없었고 대신 우리반을 포함한 뒷반이 파는 점심시간 땐 팔거리들이 넘쳐나 꽤 재밌게 행사가 진행됐다. 짤랑거리며 동전을 챙기는 우리반 아이들의 얼굴엔 흥분이 가득했다. 5교시 알뜰 시장놀이 소감을 나누는데 사는 즐거움은 못 느꼈지만 파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고 했다. 계좌이체가 안돼서 아쉬웠다는 아이의 말에 웃음이 터졌고 다시 한번 놀이를 한다면 준비를 해서 더 재밌게 참여하고 싶다고도 했다.      


부족함이 없는 시대다. 부모님들께서는 아이들이 요구하기 전에 모든 걸 사서 채워준다. 그래서인지 아쉽지도 않고 간절한 무언가도 귀해졌다. 멀쩡한 연필이 교실 바닥에 뒹굴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새 도화지를 마구 꺼내쓴다. 없이 자란 나는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고 영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반은 모든 걸 ‘돈’과 연결시켰다.(우리반은 경제교실을 운영중이다. 아이들은 매달 자신의 1인1역으로 월급을 받아 생활한다.) 학용품을 스스로 챙겨라, 도화지 위에 그린 무언가가 조금만 맘에 안 들어도 망했다 생각 말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라, 학습지 잘 챙겨라…. 이런 잔소리 안 한다. 대신 부드러운 목소리로 씩 웃어주며 말한다.

“연필 없니, 선생님 것 갖다 쓰렴. 10파워 내고!”

“새 도화지 다시 받고 싶니? 그럼 가계부 지출에 10파워 쓰렴.”

“학습지 잃어버렸니? 다시 인쇄해줄게. 대신 돈을 내야지.”

친절한 선생님의 말투에 아이들은 약올라 한다.

“아니요, 됐어요. 연필 다시 찾아볼게요.”

“그냥 여기에 그려볼게요.”

“학습지 어딘가 있을 거예요. 돈 아까워요.”

그러다 한숨 푹 쉬며 내게 오는 아이도 있다.

“어쩔 수 없네. 선생님, 한 장 주세요.”

그때면 교실 구석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야, 연필 빌려줄게.”

“아, 고마워. 나도 나중에 꼭 빌려줄게.”

아이들은 돈 아껴서 좋고 난 서로 도와주는 흐뭇한 모습이 보기 좋아 웃는다. 교과서 잃어버려 한 달 치 월급을 쓴 친구, 학습지를 연속으로 잃어버려 돈이 쑥쑥 나가는 친구를 보며 스스로 배운다. 자기 물건 관리 잘하자! 모든 게 돈이니 소중하다. 백 마디의 잔소리보다 효과적인 교육이다. 하지만 만만찮은 부작용도 많다.  

    

“벌금 내면 되지 뭐.”

“돈이면 다 돼!”


이런 말이 심심찮게 들리면 아찔해진다. 또 어쩔 수 없이 돈은 살아가는데 중요한 가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님을 가르치려 머리를 짜낸다. 많은 위인, 감동의 에피소드, 그리고 선생님의 경험들이 동원된다. 돈만 아는 사회가 얼마나 삭막하고 잔인해지는지 상상해보게 한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선 시장은 도덕적 기준으로 보상되지 않고 인간의 이기심이 결국 부를 일구는 게 맞다. 하지만 교육이란 게 결국 ‘혼자 행복하기’ 보다는 ‘함께 행복하기’를 배워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거라는 걸 믿기에 내 역할에 충실하려 애쓴다.      


없이 자란 나는 아직도 새 것이 좋다. 아직도 신발을 사면 꼭 머리맡에 두고 자는 버릇이 있다. 남편은 이런 마누라를 두고 아직 애 같다며 놀린다. 아직 어린애 같은 나는 뭘 잘 사지도 않지만 한 번 사면 요리 쓰고 조리 잘 쓴다. 쓰다가 필요 없어진 물건은 중고거래시장에 내다 판다. 며칠 전 학교 알뜰시장에서 산 머리끈은 긴 머리 동료에게 선물하고 하나는 작은딸에게 줬다. 그리고 고양이 머리띠는 방학 때 놀러 갈 때 쓰려고 챙겨놨다.      


아직도 수십 년 전 어린애로 살고 있는 내겐 큰 욕심이 하나 있다. ‘요즘 아이들’인 제자들이 물건을 허투루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처음처럼 소중하게 대했으면 한다. 모든 게 새 것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 마음 잊어버리지 않고 귀하게 대한다면 말이다, 분명 그것들과 얽힌 행복한 기억도 빼곡해지리라는 굳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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