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생님께서 교사에게 방학이란 멈춤, 갖춤, 맞춤의 시간이라고 하셨다. 나에게 방학이란? 웃음 코드 하나 보태 '멈춤 갖춤 막춤'이라고 하고 싶다.
일단 멈춤, 관계의 숨 고르기다. 교사의 하루는 출근한 순간부터 퇴근 직전까지 숨 가쁘다. 아침 7시 30분, 책이라도 몇 줄 읽어보려 일찍 출근했지만 학교 오고 싶어 잠이 안 온다는 그 녀석이 바로 들이닥친다. “선생님독서할 거니까 말 걸지 마.” “네, 조용히 있을게요.” 이래 놓고 자꾸 말 붙인다. “응, 응” 건성으로 대답해 보지만 이내 포기. 그래 학교서 무슨 독서냐, 꿈이 야무졌다. 곧 우르르 몰려드는 아이들. 8시 30분이 지나면 100미터 달리기 전력질주하듯 시간이 흐른다. 숨 돌릴 틈 없이 6교시까지 내달린다. 쉬는 시간 쨤도 못내 방광 질환은 교사의 숙명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 2시 30분. 아이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교실에서 음악을 듣는 우아한 시간, 꿈도 못 꾼다. 이놈들 도통 집엘 안 간다. 배움 노트 쓰는 아이, 청소하는 아이, 방과 후 기다리는 아이들이 어울려 웃고 떠들고 노느라 정신없다. 놀 시간도 친구도 없는 아이들이 여기서라도 어울리겠다는데 어쩌겠나.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내일 수업준비는 언감생시다. 너네 학원 안 가냐, 제발 집에 좀 가라고 통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다 보면 한 놈 두 놈 사라고 비로소 고요가 찾아온다. 고개 들어 시계를 보면 어느덧 퇴근시간이 코 앞. 업무 조금 끄적거리다 보면 또 지각 귀가다. 여지없이 내일 수업준비는 집으로 싸간다.
숨 가쁜 일상의 멈춤은 되돌아봄의 시간이다. 한 학기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좋았던 일, 아쉬웠던 일을 손에 꼽아본다. 한 명도 몸과 마음 다치지 않고 마무리를 했다는 건 정말 다행이다. 수년 전까지만 당연하다 여겼던 일이 지금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 돼버렸다. 아이들도 예민하고 부모님들은 더 불안해하는 수상한 시대. 자녀가 행여왕따를 당하는 건 아닐까, 교사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아닌지, 수업을 못 따라가 뒤처지면 어쩌나 크고 작은 이유로 부모님들은 초조해하신다. 불신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보면 그 어떤 것도 진실과는 멀어진다. 다행히 무사히 올해의 절반을 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공적이다. 해맑고 밝은 우리 반 아이들과 늘 믿고 지지해 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미안하고 아쉬운 구석도 있다. 교단일기의 횟수가 작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사건사고 풍년이었던 지난해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다스리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글을 써댔다. 예쁜 올해 아이들의 일상을 써도 좋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소홀했다. 2학기에는 좀 더 얘네들에게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방학은 교사에게 갖춤과 채움의 기회다. 감정노동자의 번아웃 위기를 다시 채울 수 있는 시간이자 또 가르치는 자의 배움의갈증도 해소한다. 이번주는 학생처럼 아침 9시 수업시작, 오후 3시 귀가를 하고 있다. 방학에 누가 이렇게 열심히냐고? 믿지 못하겠지만 전라도, 강원도 등 전국에서 모여든 선생님들이 교실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학교는 교사의 성향에 따라 아주 개방적일 수도 폐쇄적일 수도 있는 집단이다. 적어도 여기 모인 선생님들은 교육철학, 교실운영을 서로 공개하며 배우고 따라 하며 성장하려 애쓴다. 대부분 20-30대 젊은 선생님들이지만 드문드문 머리 희끗한 교사도 섞여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경제교실을 운영 중인 나도 한자리 꿰차고 앉았다. 끊임없이 연구하시는 선생님들의 교실 사례 발표에 감탄하며 그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저것들을 우리 교실에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하게 된다. 집으로 배달되고 있는 책들도 8월을 빼곡히 채워줄 것이다. 교육 관련 도서, 소설, 에세이책들은 빈곤했던 마음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책상다리 먼지까지 빼내며 대청소 중인 아이들.
방학식날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이 떠나가라 애국가를 불렀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대청소를 했다. 늦잠 실컷 잘 생각에 자꾸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친구들과 방학 계획을 나눔 하는 자리에선 기대와 각오가 대단했다. 피아노 콩쿠르 준비를 하겠다, 자전거를 타겠다, 재밌는 동화책을 많이 읽겠다는 아이들. 아리랑 꺾기 연습을 해서 공기놀이에서 선생님을 꼭 이기겠다는 친구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세상에서 수학이 가장 싫다는 숭재가 수학 1학기 복습을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어? 그럼 나도 공부해야 하나?” 시험 때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경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와~ 하고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방학 축하 급식으로 피자 특식이 나오자 깨춤을 추는 아이들. 사실 난 막춤을 추고 싶었다. 이건 비밀인데 너네보다 내가 더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