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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Sep 01. 2024

오해는 부디 말아주세요!

마감 시간 금요일 5시가 됐는데 신청자가 3명이다. 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용기 내어 데이트 신청을 했다가 거절을 당한 기분이 이럴까. 너무 성의 없게 안내를 한 건 아닐까, 학부모님께 보낸 제안서를 다시 한번 읽어봤다.      


**5학년 5반 학부모님 안녕하세요.

2학기부터 학부모님과 독서 모임을 운영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말이 거창해서 독서 모임이지 책을 핑계로 부모님과 소통해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제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그림을 간단히

소개해보면요~~

1. 1권의 책을 정해서 읽기(책 목록 함께 정하기)

2. 월말에 요일 정해서 ZOOM으로 만나 책 관련 이야기 나누기

(아마 저녁 시간이 좋을 것 같은데 시간은 함께 협의해 보는 거로)

3. 운영기간: 9.1~2025.1.31 (5권 정도)

4. 신청 기한: 830일 금요일 오후 5시까지

요렇게 대충 계획은 잡고 있습니다. 모두 바쁘실 것 같아 조금 망설였지만, 혹시나 희망하시는 분이 계시면 시작해 보겠습니다. 인원이 너무 적으면(5인 미만) 없던 일로^^

관심 있으신 학부모님 하이톡 주세요.     


지금 읽어보니 너무 성의 없는 공지다. 모임에 대한 목적이나 의도가 부족하다. 더군다나 참여 인원 5명 미만이면 하지 않겠다는 협박 비슷한 문구까지 넣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건 아닐까. 착각도 유분수지. 사실 너무 많은 분이 참여하겠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까지 했으니 아주 오만방자하기 그지없었다.   

  

며칠 전 우리집에서도 한바탕 설전이 있었다. ‘학부모 독서 모임’이라는 원대한 포부에 식구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헐, 굳이 왜? 엄마는 애들 선생님이지 학부모의 선생님이 아니잖아.”

큰딸은 엄마의 무모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엄마가 크게 착각하나 본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책 읽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

평소 과묵한 작은딸까지 거들었다.

“일하고 애 키우고 바빠 죽겠는데 부모님들이 그럴 여유가 있겠어? 음, 딱 두 명 정도 신청할 거라고 본다. 그것도 후하게 쳐줬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남편의 반응.

모두들 나의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 더 오버스럽게 큰소리쳤다.

“그래도 대여섯은 신청할걸? 두고 봐!”

“엄마, 그래도 아이 담임선생님이랑은 별로 엮이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
큰딸이 마지막으로 매섭게 일갈했다.      


그래, 맞다. 세월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부모님들에게는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부담스럽고 어려울 수도 있겠다. 너무 오래전이라 잊어먹었었다. 나도 두 딸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갈 때면 긴장부터 했다. 내 새끼의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왠지 선생님 앞에 서면 창피했다. 선생님들이 딸을 칭찬할 때면 구멍 숭숭한 딸들의 부족함을 떠벌이며 겸손한 척했고, 아픈 말을 할 때면 집에서 더 신경 쓰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편치 않은 담임선생님과 모임? 마음먹기 쉽지 않았겠다.    

  

독서? 한때 문학소녀였던 나조차도 그 시절 어땠나. 아이들 챙기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날그날 살아내느라 책 한번 펴볼 여가가 없었다. 완독의 기억이 별로 없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걱정만 많아 멍하게 영화를 보거나 늦은 밤 짧은 산책으로 숨통을 틔웠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한다고 우리 반 부모님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왜 생각 못 했을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학부모독서 모임’을 꾸리고 싶었던 솔직한 마음은 좀 밝히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학부모님과 더 많이 소통하고 싶은 담임의 욕심이었다. 최근 우리 교육현장의 붕괴 같은 거창한 이유는 다 집어치우고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며 혼란스러워하는 학부모님과 고민을 함께 나눠보고 싶었다. 학기 초 짧은 시간 이루어지는 요식적 학부모 상담을 할 때면 괜히 죄송하고 안타까웠다. 그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며 살아가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우리 아이들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미리 육아를 경험해 본 선배로 이런저런 경험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가 가져온 순기능 중 하나로 온라인 활동이 쉬워졌다는 것도 이런 생각에 한몫 거들었다. 나의 경우만 해도 줌모임을 통해 전국에 흩어져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낭독을 하고 독서토론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굳이 교육 장소에 가지 않고도 전문가에게 수업을 듣고 코칭을 받고 있다. 그럴 때마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세상엔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젊은 사람들은 또 어찌나 현명한지. 아이를 키우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 참여하는 그들은 하나같이 말을 한다. 분명 책 한 권을 읽기 어려웠는데 이렇게라도 함께 하니 가능해진다고 말이다.     


뭐 지금 와서 말해봐야 소용없음을 알고 있다. 다만 더 자세하게 안내하지 못해 학부모님들께 죄송할 뿐이다. 교사라고 학부모까지 책 읽으라고 하는 건 갑질이라고 한 남편 말에 너무 놀라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 마음은 추호도 없었음을 밝혀본다.      


‘학부모 독서 모임’ 신청자가 5명 미만이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경솔했다. 다섯 미만이지만 우리끼리라도 첫걸음을 내디뎌볼까? 뭐, 오붓한 게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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