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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Aug 06. 2024

'브런치' 먹는 아내와  남편


마누라의 펜대는 무섭지만 그래도 응원한다며 갖다준 펜.


“이거 또 글로 쓸 거지?”


“세상 짠돌이로 남편 또 흉볼라.”


“마누라 펜대가 세상에서 젤 무서워.”


마누라가 브런치에 글을 쓰자 남편이 자꾸 눈치를 본다. 왜 안 그러겠나. 부부 사이 사소한 다툼도, 숨기고 싶은 비밀도 확성기 대고 중계방송하니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민망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겠지. 남편은 자신이 대한민국의 평균 이상의 남자라는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마누라 글 속에 등장하는 그는 뭔가 희화화돼 좀 창피하단다. 글 속에 객관화된 캐릭터가 맘에 들기도 하고 안 들기도 하고 영 헷갈리는 것 같다.

  

“걱정하지 마. 당신 알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래도 기분 별로야.”

혹시나 싸움 날까 싶어 남편과 관련된 글은 꼭 그의 사전 검열?을 거친다.  

“허락 안 하면 폐기처분할 거야.”

‘폐기처분’이라는 말에 그는 움찔한다. 부탁인지 협박인지 알쏭달쏭 하지만 남편은 결국엔 OK 사인을 넣는다. 뭔가를 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님을 아는 그는 울며 겨자 먹기식 선택을 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그렇게 인색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전기와 관련돼서는 유독 알뜰하다. 늘 아이들 방과 거실 불을 끄고 다닌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느라 불을 켜놓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따라다니며 스위치를 내린다. 또 들어간다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다.


여름마다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에어컨 대첩’.    

“더워. 빨리 에어컨 켜.”

“가만있으면 견딜 만 해.”

“축 늘어져 있는 딸내미들 안 보여? 당장 가동하자!”

“얘네들? 주말엔 원래 그래.”

“어쨌든 켜자.”

“일단 샤워하고 나와봐.”

저 못 말리는 남편. 씩씩 거리며 욕실로 향한다. 마누라가 샤워를 하고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남편은 선풍기를 코앞에 대령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찬물 한번 끼얹고 선풍기 바람 앞에 앉아 있다 보면 웬만한 더위쯤은 견딜 수 있다. 알뜰한 남편 덕에 헉~ 하는 수준의 전기세 폭탄을 아직까지 맞아본 적은 없다.  


그런데 올해는 한계치를 넘었다. 습도까지 높은 폭염이 벌써 수 주째 계속되고 있다. 나는 수시로 에어컨을 가동하고 남편은 틈만 나면 전원을 끈다. 환기를 시켜줘야 한다는 둥, 너무 가열되면 불난다는 둥 그러면서.

“진짜, 고만 좀 해!!”

소리를 꽥 질렀더니 남편이 에어컨 리모컨을 슬그머니 내 앞으로 내밀면서 그런다.

“이것도 브런치에 쓸 거야?”

“뭐?”

“당신 맘대로 에어컨 틀어. 나 짠돌이 절대 아니다.”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을까. 행여 마누라 글에 또 등장할까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남자. 웃기면서도 좀 귀엽다. 에어컨 대첩이 올해는 싱겁게 끝났다.     


오늘 아침 남편은 에어컨을 홀라당 끄고 출근했다. 집에 있는 우리는 더워 쪄 죽으란 말이냐며 전화해서 따지려다 말았다. 사람 진짜 안 변한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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