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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Aug 19. 2024

'아디도스'의 추억

대학 동기가 생일이라며 러닝화를 선물했다. 아침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말에 좋은 신발 신고 뛰라고 신신당부했더랬다. 집에 운동화가 넘쳐나는데 굳이? 라며 콧방귀도 안 뀌었더니 결국 사서 보냈다. 정말 못 말린다.


이 친구와 인연이 30년이 지났다. 대학 학보사에서 1~2학년을 함께 보냈다. 밤새 책을 읽고 토론하고 MT를 다니고 신문을 함께 만들었지만, 학창 시절엔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던 친구였다. 갓 상경해 촌티 풀풀 나는 나와는 달리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는데도 뭔가 분위기가 남달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건 넉넉함의 냄새였다. 걔는 내 한 달 치 용돈에 육박하는 이름도 잘 외워지지 않은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어느 날, 노란색 후드티를 입고 나타난 스무 살의 나를 보고 친구가 깔깔 웃었다.

“야~~ 유현미. 너 아디도스를 입었네!”

“응? 뭐?”

동기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진짜네 하며 낄낄거렸다.

“아디도스가 뭔데?”

“그 옷, 영어로 아디도스라고 쓰여 있잖아.”

그제야 가슴팍을 내려다보니 ADIDOS라는 영어가 보였다.

“이게 왜?”

‘아디다스’라는 브랜드를 모르니 나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브랜드가 있는 옷이 있고, 그 브랜드를 흉내 내는 짝퉁이라는 게 세상에 있다는 걸. 옷이면 다 똑같은 옷인 줄 알았는데, 세상이 참 복잡하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던 때였다. 작은딸이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까? 학교에 카드 영업을 하던 분이 방문했는데 가져온 사은품에 눈이 멀어 동료들과 우르르 카드를 만들었다. 예쁜 가방을 얻었는데 고릴라 인형이 달린 핑크색의 앙증맞은 디자인이었다. 작은딸 책가방 하면 딱 맞겠다 싶었다. 취향이 까다로웠던 딸도 가방을 받고는 엄청나게 좋아했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를 다녀온 딸이 냅다 가방을 집어던지며 엉엉 우는 게 아닌가.

“에잇, 이까짓 짝퉁!”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왜 나한테 가짜를 사줬어?”

“뭐? 가짜?”

“이거 짝퉁이라고 친구들이 놀렸어. 창피해서 죽을 뻔했다고!!”

도통 사태파악을 못 하던 내게 작은딸은 눈물 콧물을 쏟으며 말했다.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자마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단다. 너무 예쁘다며 부러움의 눈길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한 친구가 대뜸 “이거 가짜네!”라고 말했다고. 고릴라 인형 엄지를 입에 끼워보며 “봐 안 들어가잖아.” 하면서 말이다. 가짜라는 말에 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한 명씩 돌아가며 다 손가락을 끼워보며 진위를 확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음은 안봐도 뻔했다. 분명 아이들은 재미로 했을 행동이었지만 작은딸에겐 큰 상처가 됐던 것 같다. 어른인 나도 모르는 걸 아홉 살 아이들이 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어이도 없었다.

“엄지가 콧구멍에 들어간다고?”

“아니, 입이라고!”

고릴라의 엄지손가락을 입을 끼워보았다. 진짜로 안 들어갔다.

“애들도 다 아는 걸 엄마는 왜 모르는데!”

울던 딸은 급기야 나를 째려보며 따졌다.

“아니, 진짜 몰랐어. 일부러 그런 거 절대 아냐. 진아, 미안해.”

딸이 얼마나 창피하고 상처받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다음날 확인차 백화점을 갔더니 진짜 똑같은 가방이 있었다. 키**이라는 브랜드였다. 가격표를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딸이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다.

엄마, 이런 거 사지 마. 진짜 가짜 있는 거는 이젠 절대로 안 할 거야.”

딸에 말에 안심이 되면서도 뭔가 속상했다.      


아직도 나는 브랜드를 잘 모른다. 옷과 신발을 살 때도 돌아다니다 그냥 디자인과 가격이 마음에 들면 산다. 그런데 등산을 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여름철 땀에 푹 젖었던 티셔츠가 거짓말처럼 금방 뽀송뽀송해지고 무겁지도 않은 재킷이 엄청 따뜻해서 겨울철 칼바람도 무섭지 않다. 낙하산 만드는 소재로 만들었다는 배낭은 거의 종잇장처럼 가볍고 질기다. 브랜드 마다 등산복의 특징도 다르고 기능성도 차이가 많다. 그래, 비싼 게 이유가 있네! 있어. 그래도 이름은 도통 기억을 잘 못 하겠다. 하지만 로고를 보면 아 그거? 하게 된다. 급기야 최근엔 큰맘 먹고 몇 개  질렀다. 중고마켓을 뒤져가며 반값으로 사기도 한다. 전 국민이 다 안다는 명품 에***, 구* 문양도 아직 구별 못 하는 내가 브랜드를 찾아 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30년 전 ‘아디도스’ 입었다며 놀리던 친구가 보내준 신발을 보고 있자니 미소가 지어진다. 2주나 걸려 해외에서 배송된 러닝화, 친구는 인기 많은 디자인과 색깔이라 어렵게 찾아내 샀다고 했다. 아마 그는 그 옛날 에피소드는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 ‘브랜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중년의 아줌마는 먼지 묻을까 신발 호호 불어가며 브랜드 이름을 머릿속에 꼭꼭 집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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