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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Aug 25. 2024

'살랑모닝' 하실래요?

지난 6월 중순쯤 ‘나는 오늘도 달린다’ 이도영 작가의 온라인 북 콘서트에 참여했다. 3년차 직장인 아침 러너의 달라진 일상을 듣고 느낀 바가 많았다. 작가는 이렇게 좋은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확신에 찬 어조에 혹했다. 

바보가 되면 안 되지, 나도 함 달려봐?      
 


평소의 기상 시간을 앞당겼다. 아침 시간 40분 정도를 확보하려면 적어도 5시 30분에는 나가야 한다. 휴대폰 알람이 울리면 눈곱도 떼지 않고 옷을 입었다. 졸린 눈을 반쯤 감은 채 어기적어기적 집 근처 천변에 서면 비로소 잠이 깼다. 처음에는 산책로를 그냥 걸었다. 그러다 내키면 뛰었다. 뛴다고 얘기하기도 좀 민망하다. 빠른 도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이도영 작가의 표현처럼 힘들지 않게 ‘살랑살랑 뛰기’,  나만의 아침 달리기 도전을 ‘살랑모닝’이라고 이름 붙였다.      


‘살랑모닝’의 첫 달은 아침에 무조건 나가는 게 목표였다. 피곤한데 더 잘까?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데 무슨 운동이야? 감기 기운 있는데 쉬고 싶다, 끝없는 유혹을 물려 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팔, 다리 한 번 쫙 펴고 심호흡 크게 한 후 벌떡 일어났다. 비가 쏟아지는 날엔 잦아지길 기다렸다 우산을 들고나갔다. 불볕더위가 절정일 땐 시간을 줄였다. 하지만 조금만 걷고 뛰어도 땀을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었다. 힘들기만 했던 ‘살랑모닝’에 주변 세상이 보였다.      

‘살랑모닝’의 풍경 하나. 여명의 시간에 도시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들. 부부끼리 친구끼리 때로 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걷는 사람들…. 형형색색의 옷을 차려입고 파크골프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어르신들, 축구장이 떠나가라 고함치며 공차는 젊은이들. 맨발 걷기를 하며 책을 읽기도 하고 흔들흔들 운동기구에 매달리기도 한다. 아침 6시30분 집으로 들어올 때 즈음이면 와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운동에 진심이라고?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머리 희끗희끗해지는 중장년층과 70대 이후의 노년층도 많지만 젊은이들도 상당하다.       

‘살랑모닝’의 풍경 둘. 금계국, 개미취, 개망초, 기생초, 달개비꽃, 나팔꽃 등의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졌다. 산책로를 하루가 다르게 침범하는 풀의 기세는 대단했다. 지칠 줄 모르던 우렁찬 매미소리도 결국엔 희미해져 나뒹굴기 시작했다. 요란한 폭우뒤엔 죽은 벌레와 지렁이가 여지없이 길 위로 깔렸다. 행여 밟을까 살금살금 뛰었는데 다음날이면 말끔히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이걸 누가 치웠을까? 때마침 등장한 까치 몇 마리, 먹이를 콕콕 쪼아댔다. 아하 너희들이었구나. 알쏭달쏭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 왜가리 몇 마리 물속으로 고개를 집어넣는다. 아침 고요의 주인은 따로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살랑모닝’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뛰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자세, 보폭, 빠르기 등을 눈여겨봤다. 움직임이 크고, 어정쩡하고, 유난히 쿵쿵거리며 뛰는 사람은 한 눈에도 힘겨워 보였다. 아마도 이제 막 초보 러너에 입문한 나 같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물 흐르듯 달렸다. 팔다리가 구령을 붙이듯 경쾌히 움직였고 발놀림도 가벼웠다. ‘사부작사부작’이라는 표현이 딱 맞겠다. 옷은 다 젖고 얼굴은 상기돼 있지만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다. 호흡도 안정돼 보였다. 그런 부류의 종아리와 허벅지, 상체는 여지없이 남달랐다. 군살 없이 근육이 단단했다. 아, 달리기는 사람의 신체를 정돈시켜주나 보다.      

그들을 따라 달렸다. 살들이 출렁인다. 이것들을 못살게 굴면 도망간단 말이지? 그런데 쉽지가 않다. 뛰기 시작한 후 3분도 되지 않아 헉헉거렸다. 5분 뛰고, 10분 쉬고, 5분 뛰고 5분 쉬고, 5분 뛰고 2분 쉬었다. 휴대폰 달리기 앱을 사용하며 뛰는 시간을 조금씩 올렸다. 5분에서 8분, 10분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록이 올라가니 신이 났다. 몸이 유난히 가벼운 날엔 쉼 없이 20분을 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달리고 오면 집에 오면 나른하고 몽롱해졌다. 출근길이 힘들어 자꾸만 한숨을 쉬었다. 몸이 힘들다 보니 커피를 달고 지냈다. 퇴근 후 밥만 먹고 나면 꾸벅꾸벅 졸았다. 딸과 남편도 못 보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일이 생겼다. 남편은 새벽에 벌떡 일어나 나가는 내 뒤통수에 “어이구~ 과자를 먹지 말지, 꼭두새벽부터 뭔 고생이야!”라며 쯧쯧거렸다. 반면 딸들은 존경한다는 눈빛을 보내며 나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살랑모닝’을 시작한 지 석 달째가 되고 있다. 여전히 새벽기상은 힘들다. 하지만 망설임의 시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매일 걷고 뛰고 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새벽 일정이 있던 몇 날을 제외하고 개근 중이다. 이젠 25분 정도는 거뜬히 달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매일 그렇게 뛰지는 못한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40분 내내 걷다 오는 날도 있고 10분만 뛰는 때도 있다. 하지만 몸이 많이 가벼워졌다. 아쉽게도 드라마틱한 체중변화는 없지만 근육이 조금 생겼다고 확신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런 것보다 사실 더 뿌듯한 것은 마음속 결심을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이다.     


‘살랑모닝’이 일상을 기분 좋게 흔들고 있다. 또 누가 알겠는가. 살랑살랑 불던 이 미미한 바람이 49.195km 마라톤 풀코스 도전이라는 큰 태풍을 일으킬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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