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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Oct 24. 2024

나만의 숨 고르기  '등산'

'그레구아르와 책방할아버지'2

수레국화 요양원, 그레구아르는 여름휴가철을 맞아 일손이 모자란 지하 세탁장에서 일하게 된다. 거기에서 쓰레기 다니에게 호모새끼라고 조롱을 당하며 호된 괴롭힘을 당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를 꽉 깨물고 견딘다. 그레구아르는 소리 내어 책을 읽을 동안만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매듭이 조금씩 풀리는 걸 느끼며 몰입한다. 낭독이 끝날 때쯤이면 힘들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화가 모두 사라진다. 그는 그렇게 잔인한 생업의 세계를 책과 낭독, 은밀한 공모자 피키에를 통해 씻겨지고 정화하며 견딘다.




나는 걷기, 독서, 사람을 좋아한다. 스트레스받을 때면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거나 책을 사서 읽으며 해결의 실마리 찾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 하소연을 하며 풀기도 한다. 그런데 이 3종세트로도 극복이 안 됐던 시기가 있었다. 두 딸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여느 집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모습이었을 텐데 그때는 정말 버거웠다. 불안과 혼돈의 소용돌이에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뒤엉켜 버둥거렸다.


연년생 딸들은 중학교에 입학 후 삐딱해졌다. 말이 거칠어졌고 예의 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엄마에게 꼰대 같다며 되려 딸들이 화를 내고 입을 다물었다. 학교 갔다 오면 교복도 아무 데나 벗어던지고 책상은 말할 것도 없고 방바닥에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숙제는 막판까지 몰려 대충 흉내만 냈고 학원도 건성으로 다니는 것 같았다. 야무지고 착했던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답답했다. 품 안에 쏙 들어오던 예뻤던 딸들이 낯설어 도무지 내 자식 같지 않았다.        


평일엔 나도 바쁘고 피곤하니 그런대로 대충 넘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주말이었다. 여유가 있으니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성에 안 찼다. 해가 중천이 되도록 잠을 자는 아이들과 밥 먹여 독서실이나 학원으로 내보내고 싶은 엄마의 신경전이 집안을 늘 냉랭하게 만들었다. '늦잠도 자고 싶겠지 싶어' 조조영화를 보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도 방문은 닫혀있고, 마트에 가서 시장까지 봐 와도 여전히 한밤중인 아이들. 인내심의 한계에 달해 결국 청소기를 들고 온 집안을 시끄럽게 만들며 심술을 부렸다. 환기시킨다며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활짝 열고, 빨래할 거라며 이불까지 세탁기에 집어넣으면 그제야 어그적 어그적 걸어 나오는 딸들. 시계는 낮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등산이나 다녀볼래?”

골프에 빠져 주말마다 집을 비우던 남편이 미안했는지 느닷없는 제안을 했다. 등산 경험이 전무했던 내가 산에 푹 빠질 거라곤 그때는 전혀 예상도 못했다.     

그렇게 동네산악회에 발을 담갔다. 등산모임이 불륜의 온상으로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던 시절이었는데 동네산악회는 분위기가 남달랐다.  50-60대의 점잖은 어르신들이 주축이 돼 봉사해 주셨고 특히 부부가 함께 온 회원이 절반을 넘었다. 남편과 내가 들어오자 회장님은 우리를 새댁, 새신랑이라고 불렀다. 30대 후반의 젊은 편에 속했던 우리는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다. 16인승 전용 버스를 타고 전국의 명산을 누비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루종일 집을 비워도 되나 걱정도 했다. 하지만 주말등산으로 딸들은 자유를 만끽했다. 솔직히 내가 더 좋았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면 거짓말처럼 집안일, 학교일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철 따라 꽃도 구경하고 형형색색의 단풍도 밟으니 지친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땀을 뚝뚝 흘리며 숨을 몰아쉬며 능선에 올라서면 멋진 풍광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불어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평지에서 시작한 걸음이 하나하나 보태져 결국엔 정상에 올랐을 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희열이 느껴졌다. 햇볕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바리바리 싸 온 도시락을 먹는 그 재미는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것이다.


두 딸이 일어나긴 했는지, 밥은 챙겨 먹었나, 늦지 않게 학원은 갔는지 걱정이라도 할라치면 인생 선배들이 그랬다. ‘할 놈은 하고 안 할 놈은 때려죽여도 안 한다’며 안달복달하는 나를 진정시켜 줬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그 진부한 말이 마음에 쏙 스며드는 것이었다. 연륜이 가져다준 그들의 여유와 지혜가 위로가 됐다.


어쩌다 산길에서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딸이 학원에 안 왔다는 전화를 받을 때도 있었다. 딸은 연락도 안돼 열불 나고 속 터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 나는 1000리나 떨어진 풍광 좋은 산 꼭대기에 있다. 물이나 벌컥벌컥 마시며 열을 식힐 수밖에. 그러다 슬그머니 마음 한 켠으로 작은 속삭임이 하나 비집고 들어왔다. ‘힘들어서 하루 쉬겠지. 학원 빼먹는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니잖는가.’  

주말 하루를 산에서 웃고 떠들며 실컷 놀다 집에 오면 이상하게 모든 것에 너그러워졌다. 혼날 예상에  잔뜩 움츠려 있던 딸이 엄마의 쿨한 반응에 알람 시계를 사달라고 했다. 감정의 날만 세우던 냉랭했던 모녀에게 훈풍이 불었다. 물론 티격태격하던 일상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답답한 교집합의 공간에 숨통이 트였고 그 틈을 비집고 과제분리, 객관화, 공감 등 책에서만 읽던 해법이 일상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주말이면 산을 오른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산을 걷는 건 그냥 생활이 되었다. 집 주변의 뒷산을, 서울 근교 산을 걷는다. 친정 가듯 동네산악회를 따라 명산을 가기도 한다. 친구들과도 산에 가서 논다.  한여름 땀띠가 나도 초록길을 찾고 살에는 칼바람 불어도 설산을 밟는다.


뭔가에 빠져 산다는 건 답답한 현실에서 한 걸음 비껴 나 숨 한 번 쉬게 하는 여유다. 나를 옭아맸던 매듭을 찾는 시작점이다. ‘그레구아르와 책방할아버지’에서 그레구아르가 책을 낭독하면서 쓰레기 다니와 대적하는 법을 배운 건 너무 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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