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롱쌤 Nov 17. 2024

목욕, 네가 좀 맡아다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3

피키에씨가 양로원에서 매일 샤워를 하는 건 그가 최소한의 사회적 이미지를 가능한 한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는 지병인 파킨슨병이 악화하자 그레구아르에게 부탁한다. “목욕 말이다. 네가 좀 맡아다오. 가능하다면 오늘부터 네가 해줬으면 싶구나.”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일단 행복회로 돌려보기로 한다. 80세가 갓 넘었을까. 단정한 커트 머리에 허리가 꼿꼿한 주름이 고운 할머니가 저녁 밥상에 앉았다. 오늘따라 그녀는 집안의 모든 물건을 유난히 찬찬히 둘러본다. 저녁 식탁에서 식구들의 왁자지껄한 웃음들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특별하지도 않은 시간이 따뜻하게 흘러간다. 유난히 고단했던 하루, 그녀는 산책을 쉬기로 한다. “잘 거야. 모두 안녕.” 지금이 몇 신데? 라는 가족의 의아한 표정에 미소 한 숟가락 얹어준다. 오디오북을 틀었다. 익숙한 음성이 음악처럼 귀를 간지럽힌다. 눈을 감았다. 그녀만의 고요한 불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이렇게 나의 지구별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어느 시인이 말했듯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아름다운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하지만 삶이란 게 결국 예고치 않은 일을 겪어내 가는 과정임을, 아니 속도와 방향만 다를 뿐 결국엔 비슷한 경로로 종착지에 이름을 나라고 왜 모르겠나. 원치 않았던 미래도 결국엔 내 운명이라면, 나도 피키에씨처럼 스스로 씻는 게 불가능해진다면 ‘목욕 말이다. 네가 좀 맡아다오.’ 부탁할 사람이 있을까. 반평생을 훨씬 넘게 살았는데도 담대함이란 세 글자가 아직 한참 부족하다. 이 말밖에는 못 하겠다. ‘내 목욕 말이다. 네만은 절대 하지마라.’           

일단 남편은 제외하기로 한다. 여보 변기 막혔어, 여보 형광등 갈아줘, 여보 딸기잼 뚜껑 열어줘, 머슴 부르듯 하루에도 몇 번 부르는 사람이지만 이것만은 안 되겠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하자고 약속했지만, 마지막 자존심이란 게 있다면 이 남자에게만은 지키고 싶다. 아직도 친구들은 나를 놀린다. 남편을 쳐다볼 땐 꿀이 뚝뚝 떨어진다고. 사실 눈에 씌운 콩깍지는 진즉에 수도 없이 떨어졌고 떨어진 거 자꾸 붙이느라 아주 힘들다. 언젠가 이 짓도 지겨워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그땐 에라 고생 좀 해봐란 심정으로 ‘목욕 말이야. 자기가 꼭 시켜줘.’라며 고집부릴지도 모른다.        


두 딸도 괄호 밖이다. 부모의 허물어져 가는 육신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겪어봐서 안다. 건강을 자신하던 엄마가 암세포에 처절히 무너져가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다 눈에 총기마저 잃어버리던 어느 날. “나 어떡해. 지금 이불에 실수했어.” 자식들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던 엄마, 세상에서 제일 강인했던 여인이 한순간에  버렸다. 엄마 없는 우리 집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딸들이 부디 빨리 여물기를 바란다. 설령 그들이 나의 보호자가 되어도 그 말은 힘들겠다. 부디 나의 딸들의 기억 속에선 엄마의 마지막도 견고하고 평화롭기를.           


기저귀를 차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아들딸을 밀어냈다. 막내 이모만 찾았다. 어릴 적 머리 쥐뜯고 싸운 동생을 불렀다. 세상 누구에게도 못한 마음속 얘기도 이모에게만은 털어놨다고 한다. 살붙이란 그런 것일까. 내게도 두 살 터울의 언니가 있다. ‘목욕 말이야, 언니가 해줘!’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내 손등 흉터 사연 알아?”라며 언니에게 사진과 문자를 보냈다. 돌아가신 엄마 아빠만 알던 상처를 당신들 떠나신 세상에 한 명쯤은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로 전화가 왔다. 뭔 일 있냐고. 여차저차 어리광을 좀 부렸다. “우리 똥개가 갑자기 왜 센티해졌을까. 손등 흉터 언니가 꼭 기억해 줄게.”(어렸을 때부터 하도 졸졸 쫓아다녀서 언니는 나를 늘 똥개라고 부른다) 별말도 아닌 그 한마디에 눈물바람했다. 안 되겠다. 나의 밑바닥까지 모조리 알고 있는 엄마를 쏙 빼닮은 언니도 탈락.            


아, 결국엔 간병인밖에 없구나.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값을 지불하고 노동을 사야겠다. 돈으로 해결되는 거라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려면 간병보험을 들어야 하나, 돈을 더 열심히 모아야 하나. 아니지,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해서 그런 일 없게 만드는 게 맞겠다. 슬펐다 우울했다 다시 기운이 솟는다. 감정이 요동치고 춥다! 덥다! 며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는 나는 분명 지금 갱년기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의 숨 고르기 '등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