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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Oct 27. 2024

날 부디 처참히 깨부셔라!

우리반 공기대회




3월에 만난 우리반 남학생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지붕이라도 뚫을 기세의 에너지 만땅인 열두 살의 날 것의 모습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에서 붙잡기 놀이를 했으며 실실 웃어가며 어깨치기를 즐겼다. 그러다 수가 틀리면 바닥에 벌러덩 누우면서 “어? **이가 사람 네!”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잘 놀다가도 감정이 삐끗해 티격태격 실랑이를 벌이다가 쪼르르 앞으로 달려와 일러댔다.

심판하는 사람 안할거야, 대신 너희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

걸어다니자, 신체 접촉은 말자, 학급회의를 통해 온갖 장치를 만들고 갈등을 해결하는 법도 차근차근 배워갔다. 그덕인지 애들이 좀 차분해졌다 싶었고 그러다 여름방학을 맞았다.


그런데 한달간의 휴식 후 아이들은 다시 원점회귀, 아니 키와 몸집이 커진 만큼 더 활동적으로 변했고 과격해지고 소란스러워졌다. 조용하고 반응 없는 분위기는 사실 내가 재미없다.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하다 싶어 고민이 됐다. 이 혈기왕성함을 억지로 누르는 것 말고 방향을 좀 다른 데로 틀어볼까? 그러다 공기를 생각해냈다.     

“한 달 뒤 우리반 공기대회 열 거야. 지금부터 열심히 연습해봐.”


그런데 아이들이 시큰둥했다. 공기대회? 공기가 뭐예요? 이러더니 이내 재미없어요! 지루해요! 못해요! 했다.  하기야 틱톡, 릴스, 숏츠 등 잠시도 눈 뗄 수 없을 정도의 재밌고 신나는 영상을 보며 자랐고 브롤***, 로블** 등 도파민 팡팡 터지는 사이버 게임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이럴 땐 먼저 호기심을 갖게 해야겠지 싶어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먼저 보여줬다.(나는 어릴적 공기여왕이였다) 순식간에 와~ 대박! 하는 탄성이 터졌다. 그리고 어린시절 보물찾기하듯 예쁜 돌멩이를 찾던 이야기, 그리고 피나는 연습 끝에 공기 세계를 평정한 사연을 영웅담처럼 들려줬다. 흥미진진한 동화책을 듣듯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리고 공깃돌을 던지고 잡는 방법의 비법을 알려줬다. 덤으로 꺾기 기술의 연습 방법도 공개했다. 한번 해볼까? 하는 도전 의욕을 보이는 아이들. 이 정도면 일 단계는 성공이다. 2단계는 호기심에 불을 붙여야 한다. 그러려면 경쟁심을 자극해야 한다.

“우리반에 선생님을 꺾을만한 인재가 좀 보여. 그게 누구냐면….”

평소 눈여겨본 공기고수 후보 세 명의 이름을 불러줬다. 꺾기 기술을 조금만 연습하면 ‘공기 여왕’ 선생님을 가뿐히 제압할 거라는 예언까지 했다. 진짜요? 설마? 반신반의하는 아이들의 표정.     


이 정도면 공기 광풍이 불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몇 번 던져보다 잘 안되니 자꾸 포기했다. 결과가 즉각적으로, 쉽게 안 나오니 재미 없어했다. 그래? 그럼 교사가 직접 몸을 던져야지! 싶어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을 꾀었다. 1대1 개인지도 해주겠다며. 그리고 잘하는 애들과는 공기대결을 했다. 과한 몸짓과 환호성을 질러댔다.

“연습을 해. 집에서 휴대폰 말고 공깃돌을 잡으라고!! ”

승부욕 강한 녀석들 약을 살살 올렸다. 이 광경을 아이들이 재밌게 지켜봤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의외의 아이들 덕분이었다. 이른바 꾸준히 연습하는 성실파들의 일취월장하는 모습이었다. 바보 공기도 겨우 하던 친구가 1단을 하고, 2단, 3단, 4단까지 성공하는 모습을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봤다. 바닥에 주저앉는 아이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남자아이들이 더 열광적으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공부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약속이나 한 듯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연습하고 대결을 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앞에 몰려들어 연습중인 아이들.

“선생님, 대회에 모두 참가해야 해요?”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던 여자아이들 몇몇이 슬슬 동요했다. 그때부터는 공기놀이가 과열 양상을 띠었다. 수업시간에도 공깃돌을 자꾸 만지작거렸고 한 통 가득한 공깃돌이 깨져 거의 멀쩡한 게 몇 개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똥그란 공기 알맹이가 교실 바닥 여기저기에 굴러다녔고 자석으로 그것만 붙이러 다니는 전문 취미 꾼도 생겼다. 딱딱한 바닥에서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손가락이 까져서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꺾기 기술에 성공하는 친구들이 우후죽순 생겼고 대회를 앞두고 열기는 한층 더 뜨거워졌다. 잘 싸우려면 무기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들은 무거운 공깃돌을 찾기 시작했고 여자아이들은 예쁜 패션형 공깃돌도 가져왔다.      


드디어 대횟날이 다가왔다. 상품이 매력적이었는지 주말 내내 연습에 매진한 아이들이 많았다. 예상순위를 말하기도 하고 떨린다며 손바닥 땀을 바지에 연신 닦았다.

“매일 1시간씩 3일간 3라운드 진행할 거야. 우리반 모든 친구와 맞붙는 게 원칙이고 이길 때마다 1점 추가돼.”

높은 점수를 얻으려면 빨리 많은 아이와 붙어 이겨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잘하는 것도 보상이 있지만 ‘일취월장’ ‘최선상’도 있다 하니 환호성이 터졌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반 공기대회, 깜짝 놀랐던 장면이 하나 있다. 강력한 우승 후보 **가 첫 라운드에서 공기놀이를 포기했던 **에게 1대1 과외를 하던 모습이었다. 점수를 얻으려면 못하는 친구 상대로 빨리 이기고 다른 친구와 붙어야 하는 데도 30분을 **이만 상대해줬다. 선생님이 갖은 수로 공기하자고 꼬셔도 꿈쩍도 안 하던 **는 친구의 친절한 가르침에 공깃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두 아이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놀이를 하는 모습은 아주 감동적이었다. 1라운드가 끝나고 중간 점수를 확인하며 칭찬을 퍼부었다. 이기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즐기는 모습은 진정한 고수의 그것이라며 한껏 치켜세웠다. 아이들도 와~ 하며 우승후보의 모습에 느낀 바가 있는지 손뼉을 쳐줬다. 2라운드, 3라운드 대회는 꼭 잔치 같았다. 공기를 못하는 친구들은 1점 내기에 진심을 다했고 피나는 연습 끝에 화려한 기술을 선보인 친구의 승리를 웃으며 축하해줬다. 라운드가 진행되며 공기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가 생겼고 실력도 부쩍 늘었다.

1등과 2등, 그리고 노력상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상을 받았다. 1등에게는 영화관람과 간식 데이트에 초청, 2등은 친구 두 명 골라 핫도그 데이트, 일취월장상 최선상은 마이쭈를 부상으로 받았다.

공기대회 3라운드 결승중


이따금 학부모님께서 문자를 보내오신다.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던 아이가 공깃돌을 집어 들고 앉아서 놀고 있다며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하신다. 아들이 공깃돌 가지고 와서 자꾸 한 판 붙자고 한다며 가족의 주말 모습이 바뀌었다며 감사 인사도 하셨다.


공기대회가 끝난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은 바닥에 붙어있다. 이번엔 ‘공기 여왕’인 나에게 자꾸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공기여왕은 연승 퍼레이드 중이지만 곧 처참하게 깨질 것이다. 기껏 공기놀이일 뿐인데 결국엔 나보다 뛰어나고 말 제자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왜 이리 행복한지 모르겠다. 부디 모두 청출어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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