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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l 03. 2024

여덟 살 감정사전

“몇 학년 가르쳐?”

지인들이 묻는다.

1학년을 가르친다고 하면 걱정과 감탄을 함께 해준다.

예전의 한 텔레비전 프로에서 1학년 담임교사의 하루를 보여주며 

거의 초인적인 생활이라고 했다. 

당시 선생님의 인터뷰 중에 그 말이 딱 와닿았다.

‘아이들은 스무 명이 넘고

교사는 한 명이니

일일이 못 챙겨서 미안할 때가 많다.’

맞다.

나도 그렇다. 

1학년 아이들의 감정을 다 못 챙겨서 미안하다. 

#슬픔 

교실 운동장을 만들어 길이 비교 놀이를 하고 내친김에 여름 ‘인사합시다’ 놀이를 하려고 이중원을 만들어서 설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 ** 울어요.”

엥? 방금 전까지 길이 비교 신나게 하던 아이인데 무슨 일이지?

가만히 보니 진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야, 왜 그래? 어디 아파?”

고개를 흔든다.

“그럼 누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아니란다.

“그럼? 말을 해봐.”

뭐가 슬픈지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그사이 다른 아이들은 교실을 뛰어다니고 난리다.

“그럼, 자리에 앉아서 얘기하고 싶을 때까지 진정하고 있어.”

선생님이 조금만 딴짓해도 이 아이들은 천정을 뚫을 기세다.

인사 활동을 하면서 **를 보니 조금 진정된 듯하다.

밥을 먹고 하굣길에 물어봤다.

“**야, 아까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어?”

“저, 이거 때문에요.”

주섬주섬 가지고 오는 게 마스크 줄이다.

끊어져 있다.

“아빠가 사준 캐릭터 줄인데...”

또 눈물이 글썽인다.

“선생님이 고쳐볼게.”

“저도 고쳐봤는데 고리가 자꾸 깨져요.”

깨진 플라스틱 고리를 힘으로 빼내고 끼워보니 약해서인지 정말 깨진다.

“선생님이 한 번만 더 해볼게.”

조심스럽게 구멍을 맞춰 끼워보니 된다.

** 얼굴이 한순간에 환해진다.

“그래서 아까 그렇게 서럽게 울었어? 엄청 슬펐구나.”

“아끼는 건데 망가져서 눈물이 막 났어요.”

“**, 그럴 땐 선생님한테  이유를 알려줘야 도와줄 수 있어. 다음부터는 꼭 얘기해 줘.”

“네!”

돌봄 교실로 가는 뒷모습이 아주 가볍다. 

#불안

“선생님, **아빤데요. **가 교문에서 학교 안 가겠다고 울고 있어요. 아무리 달래도 안 떨어져요.”

수업 시작 전 교실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다.

일단 친한 두 아이를 불렀다.

“** 손잡고 같이 들어올 수 있어?”

“우리가 데리고 올게요. 걱정 마세요.”

친구를 보면 마음이 바뀔까 싶어 1단계 조치를 취했다.

그 사이 교실 아이들에겐 책을 꺼내고 잠시 읽으라고 했다.

3층에서 내려다보니 **가 아빠 목에 매달려 더 떨어지지 않는다.

두 친구가 내려가도 소용없는 듯하다.

“조용히 책 보고 있어요. 밖에 나가거나 소리 지르면 안 돼요.”

나머지 아이들 단속을 하고 얼른 1층 교문으로 내려갔다.

보안관님, 교감선생님도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야~~”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더니 아이가 나를 보고 아빠 목을 푼다.

내 품에 와락 안긴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 어디 아픈 거야?”

말없이 울기만 한다.

“아빠, 출근해야 하니까 일단 아빠 가시라 그러자.

아빠 ** 우는 거 보면 하루 종일 걱정하시니까 웃으면서 보내드릴까?”

아이 손을 잡고 복도로 들어서니 벌써 목청 큰 아이들의 소리가 교실 밖으로 들린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이 녀석들...’

교실에 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하고 잘 놀고 밥도 잘 먹었다.

발표도 시키면 또박또박 대답도 잘해서 한시름 덜었다.

워낙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라 늘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아침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굣길,

가방을 멘 **가 먼저 말을 한다.

“선생님, 오늘 아침에 운건 센터 가기 싫어서 그랬어요.”

하교 후에 가는 키움센터인데 오늘은 가기 싫었나 보다.

“아빠가 오늘 후문으로 일찍 데리러 오신다고 했으니까 아빠랑 오늘은 일찍 갈 수 있어.”

‘혹시나 아빠가 안 오시면 어쩌지?’

아이 손을 잡고 후문 쪽으로 들어서니

저 멀리 ** 아빠가 보인다.

**가 환하게 웃으며 아빠에게 달려갔다. 

#놀람

여름 수업 가족행사 날짜 조사를 급히 알리미로 보냈다.

하루 전에 급히 알려 많이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바쁘신 부모님이 알리미를 못 봤는지

몇 명이 수업시간 울상이 됐다.

“괜찮아, 일단 아이스크림만 만들고 날짜는 나중에 적어도 돼.”

그래도 **는 속상한지 울상이 됐다.

“선생님, 제 생일 밖에 몰라요.”

‘괜찮다, 일단 만들고 나중에 날짜 적자’며 달랬다.

그래도 야무지게 행사표를 멋지게 꾸며 내길래 한숨을 놨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오린 후 도화지를 버리러 간 이 녀석이

갑자기 우당탕 한다.

발을 헛디뎠는지 노란색 재활용 박스에 빠졌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난다.

아이들이 “**야, 괜찮아?”

나도 놀라서

“**야, 안 다쳤어?”

교실 뒤편에서 한 달음에 달려온 **.

내 품에 와락 안겨서 엉엉 운다.

“아파? 어디 다친 거야? 아님 놀랐니?”

아이의 콩닥콩닥 심장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놀랐어요. 엉엉”

“괜찮아. 괜찮아.”

울음이 잦아든다.

얼마나 지났을까.

“선생님, 답답해요. 이제 풀어주세요.”

쿵쿵 뛰는 심장소리에 나도 모르게 아이를 꽉 껴안았나 보다.

“응, 알았어. 미안. 괜찮지?”

고개를 드는데 씩 웃고 있다.

“놀라서 울었어요.” 


옛날 우리 엄마도 그랬다.

“불면 날아갈까 주무르면 터질까

그렇게 너희들 키웠다.”

나의 딸들도 이렇게 키웠나?

바쁘고 힘들다고 알고도 모른 척 외면한 날들이 좀 부끄럽다. 

부족한 엄마의 반성문을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을 보듬으며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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