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일이다.
올해 고3인 지인의 아들딸에게 찹쌀떡은 진작 보냈다.
1학년 아이들은 다른 이유로 이날을 기다렸다.
1시간 늦은 등교.
“야호! 늦잠 잘 수 있다!”
나도 19살 서울의 한 대학에서 시험을 봤다.
인생 최대 담판의 날이라 여겼던 그날,
가슴은 콩닥콩닥, 손에는 땀이 한가득.
삐그덕 거리며 들어오던 히터 돌아가던 소리가 또렷이 기억난다.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대학 갈 때쯤엔 이런 입시지옥은 없겠지?
수십 년이 지났고 몇 년 전 아이 둘은 여전히 험난한 입시전쟁을 겪었다.
부모가 돼 보니 차라리 내가 시험 보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긴장감은 더했고
출근해서도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지금 1교시 국어 끝났겠군, 이제 밥 먹겠군
중얼거렸다.
교문 앞에서 큰딸을 기다리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얼굴은 허옇게 떠있고 머리는 질끈 묶은 똑같은 몰골에
무릎담요를 칭칭 감고 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8시간의 사투에 지쳐 기가 모두 빠졌고 허탈함 가득한 눈빛 그것이었다.
가장 예뻐야 할 시기에 이게 무슨 일인가.
큰 아이를 보기도 전에 눈물 바람이었다.
딸이 엄마를 먼저 발견하고는 어깨를 툭 쳤다.
“엄마~~!!”
시험은 잘 봤나 어쨌나 눈치를 살피는데
아이는 의외로 담담해했고 조잘조잘거렸다.
작은딸 수능날은 아예 남편을 보냈다.
실시간 남편의 중계방송이 있었고
지켜보는 초조한 부모보다
아이는 덤덤했다.
결과도 의연히 받아들였다.
따뜻한 수능날.
천진난만한 1학년 아이들을 본다.
12년 후 이 녀석들이 시험 볼 때쯤엔
분위기가 달라질까?
인생의 담판장이 아닌 통과의례로 걸어 들어가는 담대함을
우리 아이들이 가졌으면 좋겠다.
“선생님, **가 ** 좋아한대요.”
우리반 커플들이 자꾸 커밍아웃한다.
“우린 모두 사귀고 모두 사랑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가 좋아한다고 진짜로 말했어요.”
“그래?”
하굣길 우연찮게 알림장 쓰느라 **와 **가 남았다.
“**야~~, ** 어디가 좋아?”
“안 좋아하는데요.”
“너 눈빛이 ** 좋아한다고 그러는데?”
“눈빛만 그래요.”
아이고야.
눈빛이 전부라는 걸 아이가 알 수가 없지.
“그럼, ** 어디가 귀여워?”
“머리모양이 귀여워요.”
켁!! 안 좋아한다며!
두 아이가 깔깔 웃으며 사이좋게 교실을 나가는데
귀엽고 예쁘고 앙증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