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유치한 복수전

'쉬는 시간 인권법' 압도적 표결로 통과...내 수업권도 칼같이 지키겠다

by 포롱

아침 출근길 이유 없이 화딱지가 났다.

사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이유는 있다.

‘쉬는 시간 인권법’.

지난 4월 대통령(선생님) 권한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이다. 그걸 오늘 꼭 국무회의(학급회의) 때 재의결을 하겠단다. 4월과 5월 쉬는 시간을 칼같이 지켜줬으니 이 법안이 필요 없다고 하겠지? 당연히 부결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왜 난 짜증과 화가 날까.

최초의 법률 제안자 상민이가 나와서 법의 취지를 다시 설명했다.

“3월에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을 너무 보장해 주지 않으셔서 이 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4월과 5월 잘 지켜줬습니다. 그래도 이런 법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의결을 앞두고 자유로운 토론 시간이 주어졌고 몇몇 학생들의 의견들이 오갔다.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을 칼같이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옳지, 그렇지!

“쉬는 시간은 힘든 학교생활의 단비 같은 시간입니다. 꼭 법으로 만들어서 보장받고 싶습니다.”

“굳이 필요치 않은 법들을 자꾸 만드는 건 오히려 족쇄라고 선생님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을 잘 지켜주고 있지만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지 않습니까?”

설왕설래가 오가는데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찮다.

그냥 공개투표를 하자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더니

어?

슬금슬금 친구들의 눈치를 보던 녀석들이 법 찬성표로 우르르 손을 든다.

20대 3 압도적 찬성으로 ‘쉬는 시간 인권법’ 최종 통과!!

요 녀석들 봐라.

날 못믿겠다는 거지?

열이 확 받는다.

아이들은 본인들의 의지를 관철해 냈다는 뿌듯함에 싱글벙글한다.

아오! 약 올라.

국무회의의 마지막 순서다.

우리반 반법률 제안서에 대한 토의가 이어졌다.

“사업자 등록증도 없는 사람이 제티를 친구들에게 되파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법으로 만들지 말고 그건 명확히 금지사항으로 공지하면 될 것 같습니다.”

“들어오는 앞문과 나가는 뒷문을 어기면 벌금 부과 법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까지 법으로 만드는 건 부당합니다. 그냥 우리가 잘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어라? 요것들 봐라.

자기들이 지켜야 하는 것들은 법으로 안 만들고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만 법으로 만들겠다고?

갑자기 또 뭔가 훅 치밀어 오른다.


마지막 법률제안자 은지가 ‘수업 시간 이동 금지법’ 제안 취지를 읽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물을 먹거나 연필을 빌리려고 돌아다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는 ‘수업 시간 이동 금지법을...”

띵동 띵동 띠리링~

그때 수업 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수업 끝!”

“와~~~!!”

박수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졌다.

그런데 법률제안자 은지 얼굴이 확 굳어졌다.

황급히 자리로 들어가는 모습이 심상찮다.

눈물까지 글썽인다.

예상치 못한 친구의 반응에 아이들도 당황했다.

그제야 나도 사태 파악.

“은지야, 괜찮아? ”

“눈에 뭐가 들어갔어요.”

“친구들 박수때문에 그래? 그런 거 아닌 거 알지?”

고개는 끄덕였지만, 표정을 보니 괜찮지 않다.

“와~~ 민수 너무했네. 왜 애를 울리냐. 가서 사과해라.”

박수 같이 쳤던 한패들이 한 놈에게 몰아붙인다.

민수도 당황한 듯 쭈뼛쭈뼛 다가가서는 은지에게 사과 한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너를 속상하게 하려고 그런건 아냐.”

은지 마음이 쉽사리 풀리지 않는 것 같다.

점심시간 은지를 따로 불렀다.

“많이 당황했지?”

“......”

“선생님 탓 같다. ‘쉬는 시간 인권법’이 통과돼서 열받아 있었거든. 그때 종이 치니까 나도 모르게 ‘수업 끝’이라고 외쳤던 것 같아. 아마 손뼉 친 아이들은 본인들의 쉬는 시간이 보장된 거에 신이 나서 손뼉 치고 환호성을 질렀고. 너의 법률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닌 거 알지?”

고개를 끄덕이는데 눈물이 고인다.

“내가 차분히 너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너희들 권리만 요구하는 게 괘씸해서 말을 뚝 끊었어. 내 탓이야. 미안해.”

“아니에요. 선생님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한테 서운해서요.”

또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5교시를 시작하려는데 또 화딱지가 난다.

“아우, 열받아. 쉬는 시간 안 지켰던 적이 없는데 괘씸해. 이놈들!”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앞에 앉아있는 녀석들이 씩씩 웃는다.

이 상황이 아주 재밌나 보다.

‘이에는 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아이들을 쳐다본다.

“‘쉬는 시간 인권법’ 통과한 걸 축하합니다.

법을 열심히 지키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의무도 지켜야 하는 거 알죠?

종이 딱 치면 수업 준비가 바로 돼 있어야 합니다.

종 치고 사물함 책 꺼내고 화장실 가는 시간 이젠 용납 안됩니다.

수업 시작 시간 늦어지면 그 시간 카운트하겠습니다.

늦어지는 시간만큼 쉬는 시간 줄어듭니다.

선생님의 수업권은 40분이고 너희들의 쉬는 시간은 10분입니다.

우리 원칙대로 잘 지켜서 서로 권리를 보장받아 봅시다.”

헐...

눈이 똥그래지는 아이들.

이건 뭐지 하는 표정이다.

아오!! 속 시원해.

빡빡하게 하시겠다면 나도 딱 그 수준으로~

장담컨데

종 치고 수업 딱 끝나기는 글렀다고 본다!

수십 년은 더 산 선배의 유치한 복수에 그나마 속이 뻥 뚫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월을 배우는 우리들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