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은 "인공위성으로 지구를 관측하는 것"이다. 일종의 사진 분석가라고도 할 수있겠다.
목, 금, 토, 일, 월... 4박 5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일"을 위한 "출장"이었다.목적은인공위성으로 탐지 가능한 해양 물체를 판별하는 것이다. 굳이 제주도인 이유는,바다 위에 떠있는선박들이주된대상이기 때문이다.
아리랑 위성으로 촬영한 제주항
짐을 챙기면서,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제주돈데...'
하지만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빡신 일정인지라 따로놀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다.그런데... 문득 예전에 읽었던 '빌 게이츠의 생각'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빌님은 멀리 출장을 갈 때마다, 그에 걸맞은 책을 골라 놓고, 내내 읽으며 순간의 생각을 정리한다더라...
'역시 빌님은...멋지네...'
빌님은 '의미 부여'와'의미 찾기'를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도출장 중간책 읽을시간은있을 터였다. 특히, 배 타고 먼바다에 나가서는 족히 4~5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인공위성이 그 바다 그 배 위를 지나갈 때까지...
그래서 나도 책 한 권을 챙겼다. 빌님처럼, 출장 기간의미있는 생각을 하면서믓지게 책 한권 '완독' 하리라 다짐했다.
청주공항에서 출발 그리고 첫장 시작
선정한 책은 박범신 작가의 '은교'라는 소설이다.좀 논란이 됐던 책이긴 한데... 후배가 자신의 인생 책이라고추천해 준것이다. 나는 종종 지인들에게 책추천을 부탁한다. 책 편식을 피하고 싶어서 이기도 하고, 그 사람을 더 이해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이기도 하다.
그렇게... 공항 커피숍에서 우아하게첫 장을 넘겼다.
문득...내가 '인텔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바다 그리고 IBS
새벽 5시쯤 항구에 도착했다. 바다는 이뻤고, 탈 배는 운치 있어 보였다. IBS라는 보트였다... 물론 저 위에서 우하한 책 읽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후에는 돌풍도 불었다. 쓰고 있던 모자가 하늘로 솟구치기도 했다.
갈치잡이 배 그리고 일출
이번에는 조금 큰 배를 탔다. 갈치잡이 배라고 했다. 출항은 5시 귀항은 15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선상 위에서 보는 일출은 꽤 멋있었다. 배를 타고 멀리... 예정된 촬영 포인트로 이동했다.
도착과기다림...
같이 배에 탄 동료는인공위성이 올 때까지 잠을 자기도 하고 컵라면을 먹기도 했다. 지속되는 지루함에 낚시도구라도 챙겨 오지 못한걸 못내 아쉬워했다.
운치있게 책 읽기
선상에 걸터앉아 책장을 넘겼다. 바닷소리와 햇살 그리고 동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뭐... 따스했던 것 같다. 갈치 배 이긴 했지만 왠지 호화 요트에 있는 듯 그런여유로움도 느껴졌다.
'영화 보니까 부자들은 이렇게 바다위에서 책을 보더라...'
책 이야기는 자세히 않겠다. 요약하자면 70대 시인과 여고생 사이의 그런 이야기다. 사실 시인의 그 감정과 그 태도가 썩 맘에 들지 않았었다.그런데이렇게 바람을 맞으며 슴슴한 바닷소리를 들으니그 마음이이해될 것 같기도 했다. 이런 게'감성에 젖는다'라는 건가 싶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마지막 장
배 위에서 호텔에서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틈틈이 책을 읽었다.그리고 약속대로 '완독'했다. 나름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추천해준 후배의 마음도 조금은 더 이해한 것 같다.
소설책을 챙겨 온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이야기니까... 흐름이 끊겨도 괜찮았고, 이동하는 중간중간 읽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책 속의 사건들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가 서로 중첩되면서 묘한 감정 변화들도 일어났다. 일상적이지 않은 문학적 상상력도 솟구쳤다.
종종 있는 출장이었고, 그렇게 여유로운 일정도 아니었다. 하지만 떠올려 보니 그 기억들 하나하나 묵직하다. 아마 책 한 권의 이야기가 그때의 기억들과 섞여있기 때문인 것같다. 사실'감성에 젖었었다'가 이번 경험의 최종 결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그리고 새로운 경험으로 기록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