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입시를 3년 준비했지만, 실기 시험에서 다섯 번 모두 떨어지고 결국 마지막으로 안전하게 지원한 대학에 겨우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항상 주변의 친구들이나 잘하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한국에서 좋은 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실기라는 큰 벽을 넘어야 합니다. 보통 고1부터 고3까지 3년간 준비하게 되는데, 주어진 주제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그림을 그리는 시험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의 방식이 성공적인 합격의 기준이 되었고, 특정 학원의 스타일이 높이 평가받으면서 합격을 위해서는 이러한 방식대로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래서 실기 그림을 보면 개성이 사라지고 합격 방법에 맞춘 작품들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대학교의 실기 시험을 위해 지정된 체육관에 들어갔을 때, 100명이 넘는 수험생들이 각자의 물감, 150색 색연필, 전동 지우개, 전동 연필깎이 등을 펼쳐놓는 모습은 저에게 참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제 손에는 72색 색연필도 살 돈이 없어서 제일 많이 쓰는 10가지 색연필과 잠자리가 그려진 작은 지우개뿐이었으니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중요한 것은 가진 도구가 아니라 어떻게 그림을 그리느냐라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철이 없었습니다. 그저 남들의 모습에 위축되고, "저 친구는 저런 것도 가져왔구나" 하며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만 신경 쓰곤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건 자기 연민에 빠져드는 길이었습니다. 다섯 번 모두 떨어진 후, 성적이 나쁜 것인지 그림이 부족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실기 시험을 치른 곳에서 전부 떨어진 결과는 제 자존감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4년의 시간을 날렸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불안감은 응어리가 되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과 애매한 재능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하는 인생의 첫 패배감을 맛본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