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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곰 Nov 08. 2024

힘들 때 여행을 떠나면 행복할까

결국 퇴사한다고 말했다. 업무 성과가 안 나오고, 집에 새벽 3시에 들어가는 야근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불협화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바란 것은 단지 작은 감사의 표현이었다.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서로의 실수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1시간 내로 발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후임이 보낸 발주 메일을 2차 확인하던 중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말할까 말까 고민했다. 동료의 업무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느낌도 들었지만, 이 상태로 두면 6개월짜리 프로젝트가 틀어질 게 뻔했다.


결국,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2차 검증을 해봤는데, 이 부분이 인쇄 나갈 때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이렇게 수정하면 어떨까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후임은 '그래서?'라는 표정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터져 나왔다. '아니, 문제가 생긴다니까? 시간이 늦은 건 이해하지만, 이건 네 업무잖아! 프로젝트에 영향을 준다니까? 이 표정은 뭐지? 나보고 고치라는 건가?' 순간, 문제를 지적한 것이 후회되었다. 물론, 후임이 신입사원이라 모든 게 서툴다는 것도 이해했고, 누가 야근을 하고 싶겠는가.


그때 머릿속에 든 생각은 "프로젝트가 망가지면 안 돼"였다. 발주 업체에 전화해 메일을 다시 보낸다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사실 후임이 처리해야 할 일이었지만, 상황이 급한 만큼 내가 처리하고 같이 퇴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후임에게서 파일을 건네받아 작업을 시작했는데, 내가 작업한 내용이 아니어서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30분쯤 지났을까, 옆에서 갑자기 짐 싸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면서 작업을 계속했지만,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배신한다.


"안녕히 계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이 말이 이렇게 울화통 터지는 순간이 있을 줄은 몰랐다. 붙잡지도 못했다. 내가 스스로 업무를 떠안았으니, 후임은 할 일이 없겠지.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지만, 결국 "고생했어요, 내일 봐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에도 ‘빨리 마무리하고 택시 타고 집에 가야겠다’라는 생각뿐이었다. 작업은 자정을 넘겨 끝났고, 또 새벽에 귀가했다. 괜찮다, 문제는 해결하지 않았는가.


다음 날, 내심 고맙다는 말을 기대했다. 하지만 후임은 회사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앉기 전 커피를 뽑아 마시고,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업무가 힘들어도 괜찮았다. 야근을 매일같이 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이런 인간관계는 뭔가 아니었다. '불안해하지 말자, 잘하자'던 다짐은 이때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여긴 그저 이익 집단이었다. 내 업무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게다가 연말이라 연봉 협상도 해야 했다. 1년을 더 다닐 생각을 하니, 이럴 거면 대우라도 제대로 받아야겠다는 마음에 돈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결국 회사에서 얼마를 더 준다고 하고, 직급도 올려준다고 했지만, '이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은 계속 남았다. 커리어를 위해 더 오래 있는 게 맞는 걸까? 연봉 천만 원을 더 준다고 했지만, 한 달 내내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돈을 더 준다고 하는데, 남들은 천만 원이면 그냥 더 다니라는데 이게 맞는 걸까?" 그러자 여자친구는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미래의 행복이나 가치보다 돈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저 질문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대신 결정을 맡기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한 달 동안 고민하는 내 모습을 지켜본 여자친구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백수가 되었다. 사람들은 물어본다. 이직할 곳은 찾았어? 하지만 그런 건 안중에 없었다. 커리어를 쌓아햐 한다는 압박감과 인간관계에서 벗어났다. 언젠가는 다시 일을 해야 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쉴 뿐이었다.





일주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에도 경력을 쌓고 있을 텐데, " "돈을 벌어야지, " "이래도 괜찮은 걸까?" 같은 생각들이 나를 옥죄어 왔다. 내가 왜 지금 쉬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 시간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느낀 허탈감을 돌아보고, 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삶의 의미란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가진, 정답이 없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금전적 자유를 통해, 또 누군가는 봉사나 여행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마치 쌍둥이도 서로 다른 삶을 살 듯, 삶이란 객관식이 아닌 주관적인 과정이니까.


나는 진정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원한다. 하지만 그동안은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돼, " "쟤는 이렇게 잘하는데…" 하며 스스로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데 익숙했다. 이런 성취감이 나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행복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물론 연애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작은 행복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은 이런 일시적인 기쁨을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작년에 떠났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는 그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찾은 것 같다. 남이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 비행기 표를 예매해 떠난 그 여정. 조용한 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 함께 밥을 먹으며 한 달을 온전히 나 자신으로 즐겼다. 이 여정에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깊은 행복감을 느꼈다.


돌아보면, 내 삶은 늘 압박감 속에 있었다. 학생일 때는 졸업을 해야 하고, 대학에 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해야 한다는 목표들이 마치 이정표처럼 놓여 있었다. 중간에 다른 길을 선택할 여유조차 없다고 여겼기에, 휴학도 미루고 취업의 길로 나섰다.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컸고, 그동안 나는 타인이 정한 기준을 따르며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나는 처음으로 도시를 벗어나 그 모든 기준을 뒤로한 채 나만의 길을 걸어보았다. 누가 일부러 돈을 쓰면서 800km를 걷겠냐고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그 숫자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길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사람들이 왜 굳이 스페인까지 가서 순례길을 걷냐고 묻는다면, 나만의 기준으로 답할 수 있다. 나는 정보가 적은 곳에 있고 싶다. 한국에서 걷다 보면 수많은 정보가 내 선택을 이미 제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보지도 않은 음식점의 평점만으로 맛을 미리 알 수 있고, 걷기 싫은 순간에는 택시를 타버릴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도전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 다른 좋은 장소들도 많겠지만,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특별한 행복을 느꼈다.


이제 다시 행복해질 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생각이다. 물론 힘든 순간도 많겠지만, 내가 직접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스스로 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 길 위에서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걷는 순간이야말로 내게 가장 큰 행복이자 의미 있는 시간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다. 내 삶의 의미는 바로, 내가 진정으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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