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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곰 Nov 19. 2024

저녁식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길을 걸으며 다양한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저녁을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래서 길을 걸으며 괜찮은 외국인들, 특히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오늘은 딘, 미쉘, 트레이사 이 세 사람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딘과 미쉘은 전편에서 ‘언어는 달라도 마음은 통한다’에서 나온 친구들이다. 트레이사는 피레네 산맥을 넘던 첫날, 길을 헤매는 것 같아 도와줬던 인연이다. 그날을 계기로 서로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고 이제 이렇게 저녁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내가 저녁식사를 선택한 이유는 음식에는 마음이 담긴다고 생각해서다. 음식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닌,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방식이다.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곧 마음을 선물하는 것과 같으니까. 외국인들은 음식 알레르기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을 수 있어 미리 확인했고, 메뉴도 세심하게 골랐다. 오늘은 한국식 콜라수육과 김치볶음밥을 대접하기로 했다. 한국 음식을 조금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유튜브 영상도 보여주며,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수육을 만드는 과정도 설명했다.


초대에 기뻐하던 그들은 각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물어왔다. 나는 트레이사에게 야채를, 딘에게 맥주를 부탁했다. 미쉘은 언어 소통이 어려워 따로 부탁하지 않았다. 또한, 한국 식재료가 필요하니 가게 위치를 미리 찾아두고, 내일 쇼핑할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사실 무계획으로 그냥 흐름에 맡기고 싶지만, 나는 계획 없이는 불안감을 느끼는 성격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랬던 것 같다. 다만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도 크게 다가올 것 같아 걱정도 앞섰다.


오후 3시가 되자 트레이사에게 연락이 왔다. "같이 장 보러 가자"는 제안에 흔쾌히 수락하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주말이던 오늘, 정육점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가게 대부분이 오후 2시면 문을 닫는 스페인의 주말 사정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트레이사에게 장 봤던 물건들을 숙소로 가져달라고 부탁하고 다급히 남은 식재료를 사기 위해 2km 떨어진 마트로 향했다. 신발이라도 잘 신고 올 걸, 가까운 곳에 갈 줄 알고 슬리퍼를 신은 탓에 상황이 조금 더 급박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마트에서 삼겹살을 찾았지만 얇은 구이용 삼겹살뿐이었다. 이걸로 수육을 만들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그대로 구입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기대에 부풀어 외국인들에게 자랑까지 했던 메뉴가 뜻대로 준비되지 않자 우울함이 밀려왔다. ‘괜히 저녁을 하겠다고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숙소에 도착해 장을 풀고 요리를 시작했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수육을 먼저 준비하며 물과 소주, 콜라를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트레이사에게는 냄비밥을 부탁했고, 그녀는 내가 하는 방식을 존중하며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준비해 주었다. 4시 30분쯤 딘도 맥주를 한가득 들고 도착했다. 예상보다 많은 양에 놀라 묻자, 몇 캔을 사 오라는 말이 없길래 그냥 많이 사 왔다는 딘의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이제 거의 완성될 무렵 라면을 끓이려고 했지만, 숙소에서 라면 냄새가 진동할까 봐 고민이 됐다. 결국 호스트에게 "향이 강한 한국 수프를 대접하고 싶은데, 냄새가 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호스트는 흔쾌히 이해해 주며 환기 조치까지 해주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해서 여러 가지 걱정이 밀려왔다. 이 음식이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굶은 채로 온 그들이 음식을 제대로 못 먹는다면 내일 걷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컸다. 결국 트레이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가 만든 음식이 너희 입맛에 맞지 않을까 봐 걱정돼." 트레이사는 미소를 지으며 "네가 만든 음식은 훌륭할 거야. 걱정하지 마"라며 위로해 주었다.


가끔 나는 지나치게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오늘도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초대에 기뻐해 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큰 삼겹살을 사고 싶었는데 얇은 고기밖에 구할 수 없었어"라고 고백하자, 그들은 별것 아니라는 듯 "괜찮아"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눈치를 덜 보고 편하게 즐기고 싶지만, 그것 역시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왼쪽부터 딘, 트레이사, 미쉘

딘, 트레이사, 미쉘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이 작은 저녁 한 끼가 일상의 순간일 수도 있지만, 나는 많은 위로와 행복감을 느꼈다.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도,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식사 후 자연스럽게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도 삶의 활력을 느꼈다.


작은 행복을 찾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불안감이 해소되는 걸 느꼈다. 함께하는 식사 속에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스스로를 위로받는 이런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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