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를 선물 받았다. 비싸 보이는 쿠키였다. 그 종류도 다양했다. 브라우니, 카스타드, 초콜릿 쿠키, 플레인 쿠키, 말차 쿠키, 오트밀 쿠키. 따듯한 커피, 차와 같이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쿠키를 좋아한다. 쿠키 특유의 바삭함과 그 안의 부드러움? 솔직히 모른다. 내가 쿠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저 커피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나는 상쇄되는 것을 좋아한다. 달고 단 쿠키를 먹고 난 뒤에 마시는 씁쓸한 커피 한 모금은 그전에 먹었던 쿠키를 내 입속에서 깔끔하게 지워낸다. 난 그 느낌이 좋다.
6개나 되는 쿠키를 먹을 수 있다니 행복했다. 6번의 행복을 보장받은 셈이니까. 쿠키 1개를 가져왔다. 그 옆엔 서투른 솜씨로 내린 커피를 놓았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의 팀원도 5명이라는 점. 동시에 나눠 먹을까?라는 생각도 스쳤다. 하지만 싫었다. 나는 이 쿠키를 본 순간 6번의 행복을 생각하였고 지금 나눠 먹게 되는 순간 지금 내 앞에 있는 1개의 행복을 제외한 5개의 행복이 사라지니까 말이다. 모두가 각자의 간식이 있을 텐데 내가 굳이 나의 행복을 나눠야 하는 이유가 있나 싶었다. 맞다. 이기심이다.
그렇게 쿠키 한입을 베어 물었다. 바삭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쿠키 속은 뻑뻑했다. 내가 좋아하는 식감이다. 그 뻑뻑함이 되려 커피라는 액체의 존재 이유기도 했으니까. 행복했다. 행복은 별 게 없구나 싶었다. 동시에 눈치가 보였다. 알고 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뭐라 할 수 도 없다. 이건 나의 간식이니까. 하지만 나를 삼킨 건 스쳐 갔던 ‘나눠 먹을까’라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답답했다.
결국 쿠키 상자를 가져와 남은 5개의 쿠키와 디저트를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알고 있다. 나누어 먹는 것의 행복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누군가가 내게 고맙다고 하는 것의 행복을. 누군가는 말했다. 자상하다고. 친절하다고.
이게 자상 한 것일까? 이게 친절한 것일까?라는 물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나는 그들을 위해 나누어준 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나의 답답한 순간을, 눈치 보이는 순간을 없애기 위해 나누어 주는 행동을 선택한 것이다. 진정으로 이기적인 행동이었던 것 같다.
이기심과 이타심은 평행선에 놓여져 있는 것 같다. 나를 생각함과, 타인을 생각함은 다르니까. 그 정의 자체가 다르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리 다르진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이타심이란 이기심에서 비롯되기도 하니까.
칸트의 글이 떠오른다. “진정한 선이란 어떠한 긍정적인 보상도 없어야 한다. 그것이 너의 개인적인 행복, 만족감이더라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우리는 봉사를 해도 봉사를 하는 나 자신이 좋을 수 도 있지 않나. 그것 역시 자기 자신의 만족감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 아닌가. 나 역시 마찬가지고.
어찌 보면 칸트가 말하는 진정한 선이란 “선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수도 없이 선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샌가 선이 주는 만족감이 무뎌져 결국 0으로 수렴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선을 반복하고 싶다. 선한 행동을 했을 때 그 어떤 기분의 변화도 없고 싶다.
(또 드는 생각은, 0의 기분이 되기 위해 수도 없이 선을 반복해서, 결국 그 0을 달성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달성”이라는 개념 또한 “개인적인 만족”이라는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 생각의 끝은 없다는 것을. 어찌 보면 궤변론자의 논리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