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by Henry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처음 마신 커피가 언제였는지, 무슨 커피였는지 어디였는지도 모르지만, 좋아한다. 아마도 처음엔 호기심이었을 확률이 높다. 어른들이 밥을 먹고 나면 항상들 마시는 100원짜리 믹스커피가 신기한 기억이 있으니까.


하나 기억나는 건 있다. 처음 마셨던 커피의 맛은 별로였다. 왜들 마시나 했다. 지금은 하루에 한잔이라도 먹지 않으면 두통이 오는 카페인 중독의 상황이긴 하다. 잘은 모르겠으나 고등학교 시절, 끝없는 학원의 연속이었을 때의 덕일 것이다.


지금은 커피가 좋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산미(아마 신맛일 거다)가 있는 커피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난 산미가 있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잘은 모르나 커피는 씁쓸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씁쓸하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나면 숨을 쉴 때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그 특유의 향과 맛을 즐겨보아라. 그리고 물 한잔을 마셔보면 나의 말을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요새는 커피를 그라인더로 직접 갈아 커피가루를 만들어 직접 내려 마시기 시작했다. 솔직히 귀찮았다. 기계가 해주는 커피가 더 맛도 좋고 향도 좋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인 내가 내려 마시는 커피가 정밀하게 설정된 기계를 속도에서도, 맛에서도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커피콩을 두 스푼 직접 떠서 그라인더로 가는 그 투박하고 어설픈 1~2분의 시간이 좋다. 한강을 보며, 다리를 보며, 하늘을 보며, 남산을 보며 원두를 분쇄하는 그 짧은 시간이야말로 온전히 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속도, 내가 원하는 원두의 양으로 나의 커피를 내가 직접 준비한다. 그 무엇도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그다음도 마찬가지이다. 원두를 갈고 나면 거름종이에 올리고 그 거름종이를 드리퍼에 넣어야 한다. 드리퍼 아래에는 내가 마실 컵을 준비하고 말이다. 그 후 뜨거운 물을 찬찬히 거름종이 안의 까만 원두가루에 일정하게 그리고 짧게 반복적으로 넣어야 한다. (찾아보기론 물의 온도와 물을 넣는 방법 그리고 물을 넣는 시간에 따라 커피의 맛이 또 달라진다고 한다) 이 과정은 약 3~4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을 한 번에 넣는 것이 아닌 적정량을 넣고, 그 물이 커피 방울이 되어 빠질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 적정량의 물을 넣는 과정의 반복이다. 이 순간이야말로 흔히들 말하는 느림의 미학을 겪는 순간이다.


빠르게 커피를 내리는 것의 역행인, 기술 발전의 역행인 핸드드립은 귀찮다. 더군다나 내가 커피를 내리는 곳 바로 옆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3개나 존재하기에 더욱이 귀찮다. 그러나 핸드드립은 소심한 고집이자 바람이다. 언제부터인가 속도가 미덕이 되어버림을, 나 자신 역시 그렇게 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며 이 자그마한 잔 안에 담긴 150ml의 커피만큼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나 역시 언젠가는) 소심한 나의 고집이자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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