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덥다. 폭염이란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태풍이 오지 않아서인지 폭염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난 여름을 좋아한다. 여름이기에 바다에 빠졌을 때가 더 시원하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날, 바다에 빠지면 여름은 사라진다. 그 느낌이 좋다. 그리고 난 여름을 싫어한다. 이 지긋지긋한 열대야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을 감은 채로, 올라가는 체온에 괴로워하며 누워있을 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24년 8월 21일의 서울. 35도. 집을 나서면서도,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내 몸은 회사의 에어컨을 기다린다. 그렇게 몸을 식히고 난 후 집에 오면 잠을 자지 못한다. 에어컨으로 식힌 몸은 5분도 채 가지 않고 다시 후텁지근해진다.
그렇게 눈을 감고, 오늘도 역시나 2시간 동안 가만히 누워 있는다. 문득, 감은 눈에서 희미한 섬광을 느꼈다.
번개다. 아마 20초쯤 뒤에는 천둥이 칠 테다. 그리곤 비가 쏟아질 거다.
반갑다. 이 번개가. 이 천둥소리가. 이 비가.
일어나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여름 내내 더운 바람을 막기 위해 굳게 닫아 놓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로 앞의 나무들. 건너편의 창문들. 구름 속 섬광의 순간. 그리고 빗소리.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생각에 빠지게 된다. 생각해 보면, 난 어렸을 때부터 비가 오면 비를 맞고 싶어 했다. 감기에 걸리더라도, 미세먼지로 가득 찬 비가 머리를 빠지게 할지라도 비를 맞고 싶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작고 가느다란 빗방울들이 중력에 이끌려 우수수 쏟아진다. 이 쏟아지는 빗방울들 아래에서 나는 그저 빗방울의 연속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이 쏟아짐은 압도적이다. 이 작지만 압도적인 빗방울들은 팔이며, 머리며, 다리며 나의 모든 것을 에워싸며 이내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그렇게 압도되고, 그렇게 가만히 있다 보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제일 자연스럽지 않은 도심 한복판에서 말이다. 이 순간이 좋다.
따지고 보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비 자체를 막을 순 없다. 그저 가릴 뿐이다. 한낱 지구의 기후조차 막을 수 없는데, 범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떠할까. 나의 존재감이란 0에 수렴할 테고 그저 찰나일 테다.
그래서 그 찰나가 반갑다.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라는 찰나가, 지구라는 찰나 속에서, 다른 이름 모를 찰나를 마주할 확률이. 그래서 매일 아침 마주하는 햇빛도, 나를 스쳐가는 바람도, 공원 속 참새 소리도, 모두가 반갑다. 서로 마주하기 전에는 우리 모두 각각의 찰나의 속에만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기에 만남도 이별도 결국엔 반가움 아닐까. 몇 년이 혹은 몇 초가 걸리기도 하는 반가움과 반가웠음일 테니까.
그래서 난 반가운 사람이자 결국 반가웠던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힌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당신의 찰나를 볼 수 있어 반갑고 또 반가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