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오후 11시에 늦게 끝나는 편이다. 일을 마치고 버스 정류장까지 쉼 없이 뛰어야 가까스로 집으로 데려다주는 버스를 탈 수 있다. 11시라 그런가, 사람은 많이 없어서 항상 앉아 간다.
나는 버스를 타면 창문을 활짝 연다. 원래 그렇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며 생긴 습관 중 하나이다. 버스를 타면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이때 창문 밖으로 머리를 조금 내놓는다. 그리곤 가만히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스쳐 본다. 무척이나 빠르다.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도무지 보려 해도 볼 수 없는 것들 위에는 보지 않으려 해도 도저히 안 볼 수가 없는 풍경이 있다. 어두운 밤 속 한강 위의 야경이다. 그렇게 지나가는 야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또 천천히 놓치는 그 시간을 즐긴다.
이때, 항상 듣는 노래가 있다. 王菲 - 몽중인 (夢中人)이다. 중경상림의 노래다. 아름다웠던 홍콩의 그 시절이 떠오르는 노래라고 한다. 난 홍콩에 어렸을 적 가 본 적은 있지만 기억나는 것은 아쉽게도 없다. 그렇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버스를 타고 창문 밖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있다. 지금 이 후텁지근한 여름 날씨만큼 이 노래와 어울릴 수 있는 건 없다.
이 노래는 중경삼림의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을 때 나오는 노래다. 중경삼림의 주인공들은 낯선 이를 사랑하게 된다. 마치 그전에 열렬히 사랑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래서인가 이 노래를 들으면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느낌이다. 그 시작이 단순히 여행의 시작일 수도, 감정의 시작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이 노래는 내게 있어서 “시작”이 주는 그 설렘이다.
그런데 웃긴 건 이 설렘이 마냥 신선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습디 습한 여름밤 때문일까, 오히려 눅눅한 설렘에 가깝다. 이 눅눅한 설렘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날씨가 주는 탓에 생각난 단어들의 조합이겠지만 앞으로 수없이 다가올 습한 여름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을 수 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