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에 따라 급여를 받는 그대들에게...
학창 시절 친구들끼리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먹을 때면 늘 감자튀김은 한 곳에 모아놓고 먹었던 기억이 있다. 경계를 나누어 각자의 할당량을 정확히 나눠놓진 않았지만,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는 일종의 관습과 규율 같은 것이었다. 먹을 것에 집착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감자튀김을 빛의 속도로 흡입한 뒤 감자튀김이 사라질 때 즈음 고이 감추어 두었던 햄버거의 포장지를 쓱 벗기는 그런 친구이다.
덕분에 나도 그 소리 없는 '감튀전쟁'에 뛰어들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은 훌쩍 지나 우리가 더 이상 돈 5000원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왔을 즈음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날을 회상하며 추억팔이를 하는 중에 "이 자식아 너 때문에 넘어가지도 않는 감튀를 얼마나 꾸역꾸역 먹었는 줄 아느냐?"라는 투정에 4남매에 막내아들인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형제가 많아서인지 어릴 적부터 식사시간은 나에겐 전쟁이었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식사시간이라... 6.25 사변을 50년 흘려보내고 88 올림픽을 10년 흘려보낸 시점에 식사가 전쟁일 거라는 건 매번 반찬투정인 남동생 하나뿐인 나에겐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먹기 싫어도 때에 맞춰 나오는 한 끼 식사가 누군가에게는 전투와 경쟁이었던 것이다. 그 전투와 경쟁에서 살아남은 그 친구는 176cm의 78kg 즈음되는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나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12명의 물리치료사들과 함께 병원의 치료실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들에게 월급을 주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큰 형으로써 그들의 안녕을 담당해야 할 위치에 있다 보니 그 욕심쟁이 친구의 이야기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부모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큰 뜻은 각자 사회에서 책임을 다해 제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식으로 만들기 위한 자식사랑이자 사회사랑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우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하고 환자로부터 우리의 삶을 영위할 힘을 얻는다. 자식 없는 아버지 없고 제자 없는 선생 없듯 치료사의 존재는 환자와 대면할 때 시작된다. 그리고 환자의 아픔을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자 책임이고 그 책임을 다할 때 우리의 존재는 완성된다. 그 완성의 대가로 받을 수 있는 삶의 영위는 곧 우리의 권리이다. 하지만 때때로 책임과 역할 없이 삶의 영위만을 위한 목적으로 환자들이 '감튀전쟁'의 감자가 되는 모습도 본다. 감자를 서로 먹겠다고 예의까지 저버린 그 모습의 안타까움을 표현하면 "병원 시스템이 경쟁을 부추기기 때문에 예의는 중요하지 않다."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살기 위해 혼자만 먹는 감자는 비만의 원인이 되고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 된다.
나만 살찌우려는 욕망을 용인하는 사회, 그것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의 경쟁은 전투일 수밖에 없다.
경쟁은 욕망을 성취하고자 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감튀전쟁'(경쟁)의 본질은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성장의 본질은 역할의 수행으로써 완성된다.
아무런 역할 없는 갓난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잘 먹고 잘 싸서 두 발로 걷기를 바란다.
두 발로 걷을 때 즈음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뛰놀기를 바란다.
뛰놀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길러지면 공부를 통해 사회에서 쓰임 받을 준비를 잘 마치길 바란다.
그렇게 본인의 일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우러진다.
건강한 경쟁은 존중을 동반한다.
우리는 그렇게 피할 수 없는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경쟁자는 당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일을 계속해서 더 잘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 헨리 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