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일
매번 음력으로 기일을 챙기다 보니 이번 기일은 6월로 넘어갔다. 부산에서 대전까지 거리가 있기에
코로나 이후로 아버님도 대전까지 올라오기가 힘드신 것 같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끼리 간단하게 기일을 챙기기로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우리끼리 지내는 기일이 편하긴 하다. 제사에 맞춰서 손님이 오다 보면
제사 음식보다 손님 접대 음식까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8년 전에는 돌도 안된 둘째를 업고, 가격대비 신선한 과일과 고기를 사기 위해 농수산물까지
운전해서 사러가기도 했었는데,
어머님 제사 모신 지 10년이 되다 보니 나에게도 잔머리와 짬밥이 생긴 것 같다.
제사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장을 볼 목록을 적고, 이틀에 걸쳐서 장을 보기도 했었다.
이제는 머릿속에 어떤 재료를 구입해서 음식을 준비해야 되는지
정리가 되기 때문에 하루 만에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한다.
친정엄마가 직접 농사지은 고사리를 물에 불려서 삶고
삼색 나물도 뚝딱 만들었다.
4인가족이라 조금만 준비한다고 해도 나물반찬이 두통이 되었다.
올해 처음으로 수박도 구입해서 먹었다.
남편은 수박을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수박을 잘 안 먹는다는 이유로
제사 핑계로 수박도 구입을 했다.
어머니 기일이 다가오면 항상 왜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많은 숙제를 내주고 갔는지
원망도 되면서, 아들 박사과정 다 끝나고 이제 한국에서 먹고 살만 하려고 하니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는지 어머니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어머니가 가엾다는 생각도 했었다.
10년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기억나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영상통화 모습
우리와 정을 떼려고 했었는지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전에 어머니를 엄청 미워했었다.
그 당시 어머니는 아들이 취업하자마자 기다렸다듯이
자신들의 보험을 들어달라고 이야기했었다.
결혼하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따라 유학 가기 전
며느리가 보험은 있는지 없는지 챙기시면서
왜 자신들의 보험은 들지 않고, 자식들에게 들어달라고 부탁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들어줬던 보험으로
우리는 2천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는데
그것이 어머니가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 기일이어서 그런지
옛날이야기가 생각나서 끄적거려 본다.
둘째가 제사상 차릴 때 목기를 닦으면서
물어본다.
"왜 우리 할머니는 나를 못 보고 가셨을까? 최강우주 백 00을 봤더라면
나를 엄청 좋아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