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타처럼 죽고 싶어 11,12

송기후와 나

by 햇빛투게더

11화 _송기후입니다


나는, 그녀의 앞 호실에 사는, 율이 씨의 썸맨이다. 그녀가 이사 온 날 복도에서 처음 본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그저 눈인사로만 퉁친 못난이.


대부분 첫 연애가 그 사람의 연애스타일이 된다. 남들은 중2부터 어른의 연애를 한다지만 나는 딱히 사건이 없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밴드 활동을 하던 중, 팀의 리드보컬이자 인기 많은 여학생의 공개 지목을 받고서는 그냥 그렇게 CC가 됐다. 그 애의 호기심은 대부분 나를 통해 해소되었고, 그 애는 마치 ‘나를 클리어’ 한 후에 진짜 연애 대상을 찾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이런저런 실험을 내게 해댔다. 그리고는 6개월이 지난 후, 학교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선배에게 가버렸다. 이별의 슬픔이 아니라 일방적인 내동댕이의 비참함. 두 번 다시 저딴 애는 만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두 번 째도 세 번째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호르몬이 널 뛰는 나이라 늘 비슷한 장소에서 만난 비슷한 스타일의 여친들을 만났다.

맞다, 의미 없고 그 소득 없는 전쟁을 이제는 끝내고 싶었다. 설렘도 시작도 썸도 없는 노골적인 연애랄까. 매번 후회를 했지만 자극적인 연애 후엔 더 강렬한 사람을 찾았던 거 같다, 그러다 연애에 질려버린 거지. 나의 연애사는 줄곧 의미 없는 흑역사.


이곳에 이사 온 것도 내가 놀던 쓴 물과의 단절을 위해서였다. 그런 와중에 앞 집 여자 이율이를 알게 됐다. 그림체가 달랐다, 그 사람은... 수채화로 그린 그림처럼 여리여리하고 고운 색감의 미소.. 그런데 그 미소가 또 간단치 않았다. 수심인가 그늘인가 그런 안개 필터가 씌워진. 그게 나쁜 뜻은 절대 아니고 뭐랄까... 어쩌면 나의 오만함인가, 그녀에게 내가 필요한 느낌. 그걸 딱히 설명할 길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의 옆에 작은 틈 같은 내 자리가 보였다. 내 자리라고 생각하니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내게 쌓인 연애의 찌꺼기들이 디톡스 될 만큼의 시간 동안 그저 시간을 벌고 있었지.


어느 날이던가, 동네 식당에서 엄마랑 밥을 먹다가 창문 너머 이율이 씨가 지나가는 걸 봤다. 고요하고 느렸지만 초라하지 않고 강단 있는 걸음걸이. 이율이를 물끄러미 보는데 엄마가 ‘아들’ 하고 테이블을 두 번 쳤다. 이율이 씨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내 시선을 딱 들킨 거지.


“우리 아들의 취향을 이렇게 알게 되네?!”

“그런 거 아니야.”

“근데 쟤 좀 묘하다. 안아주고 싶은데 또 기대고 싶은 느낌?”

“칼국수 불어요.”

“네네~”


정작 나는 시선을 떨구고 칼국수를 흡입하는데 엄마는 이율이 씨를 끝까지 쫓았나 보다.


“어머, 너랑 같은 건물 사나 봐.”

“엄마, 제발 거기까지만.”

“어머, 저 아가씨 3층까지 올라갔어. 같은 층이네. 너 아는 애구나?”

“쫌~!”


그래서 엄마가 나 없는 틈에 음식을 잔뜩 해와서 이율이한테 귀여운 수작을 부리신 거고. 어쨌거나 그 덕에 율이 씨랑 말이라도 하고 클럽에 초대도 했고 같이 밥도 먹었으니 고맙다면 고맙고.


이율이는 의외로 저돌적인 구석이 많았다. 그런 성품이라기보다는 본인이 가진 것 이상으로 용기를 내는 느낌. 작은 한계를 넘는 느낌. 기껏 용기를 내버리곤 바들바들 떠는 그 작은 주먹이 모든 걸 말해주거든.

공들여 천천히 알아가고 싶었다. 어떤 취향인지 어떤 타입인지. 하나하나 천천히 내 손으로, 내 눈으로 확인하고 이제야 연애 다운 연애를 해보고 싶었다. 그간의 내 연애에 별로 없던 항목들, 즉 설렘과 호기심, 그리고 호감이 어우러져 그녀와의 눈인사로 어떤 시점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새로운 남자로 리셋되고 있었달까.

지지부진한 기다림을 떨쳐내고 한걸음 훅 다가서려는 그때, 전화를 거니 **병원이라며 누군가 대신 받았다.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의사와 간호사 얘길 들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율이 씨가 어디 아픈 뉘앙스. 일단은 내색하지 않으련다. 괜히 스트레스 더 받을 테니까. 그저 입 꾹 다물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 그때의 내 머릿속에는 '그녀를 지켜주리라' 그 하나의 생각만이 가득했다.

문득 그날이 생각났다. 그녀가 계약이 만료되기도 전에 집을 내놓고 어디론가 멀리 간다고 했던 말. 내가 놀러 갈 수도 없는 먼 나라. 게다가 억지로 가는 듯한 느낌. 심장이 툭 떨어져 발 밑을 구르는 듯했지만 내게 아무 말도 없었다면 아직 아무것도 일어난 게 아니야.





12화 _송기후와 둘이서


“누구.. 세요?”


지나치게 나와 닮은 그녀는 한동안 반응하지 않았다.


“락스타.... 야? 아니야?!”


불을 확 켰더니 순둥순둥한 그냥 이율이 그 자체였지만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시간이 많지 않아. 준비 잘하고 있어.”

“...!!....”

“그거 하나만 말해줘. 락스타는? 괜찮아? 괜찮은 거지?”

“락스타? 그게 뭔데.”

“........”


그렇게 나는 락스타를 잃었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었던 그날처럼..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애착 이불도 없이, 공주가 그려진 내 예쁜 밥수저도 없이, 내 예쁜 공책도 없이, 엄마의 자장가도 없이 가장 익숙하고 소중한 것을 강탈당했던 그날처럼. 락스타도 그렇게 빼앗겼다.


“부탁 하나만 할 게. 당신이 어디에 있건 뭘 하건 내 눈앞에만 나타나지 말아 줘.”

“너는 뭘 요청할 수가 없어.”


도대체 이 자들은 왜 이토록 오만한 것일까. 정신이 번쩍 났다.


“나는!!! 요청할 수 있어!!”

“.....”

“그지 같은 너네 시스템은 니들이나 지켜.

이건 내 인생이고 내 마지막이니까 니들에게 허락받지 않을 거야.”

“이율이, 이건 단순히 죽는 문제가 아니야. 너의 소속이 달라지는 거야.”

“아니! 어차피 죽으면 끝이야.”

“그 눈부신 나이에 생을 마감하니 억울한 건 알겠는데.”

“누가 알아? 너나 락스타도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일지. 안 그래?”

“어이없군.”


나는 그대로 집을 나가버렸다. 문 쾅 소리와 함께.



내 발길이 향한 곳은 송기후의 집이었다. 벨을 누르자 송기후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안온한 미소를 보였다.


“궁금한 게 있어요, 기후 씨...”

“뭐든.”

“미움이 나아요, 슬픔이 나아요?”

“글쎄요....”

“원하는 걸 줄게요.”

“굳이 선택을 하라면 슬픔.”

“왜죠,,?”

“미움을 주려고 거짓말을 할 것 같고

슬픔은 왠지 솔직할 거 같아서.”


나는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송기후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이끌어 현관문을 닫았다. 한번 터진 울음은 송기후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고 이럴 바에야 다시 집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만큼 나는 무너져 내렸다.





칼질 소리가 아득히 들리고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으며 창가의 햇살이 감긴 두 눈을 쑤셔댔다. 엄마인가... 여전히 눈 뜨지 못하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다. 지금 내 머리 어딘 가에 ‘로딩 중’ 아이콘이 떠 있을 것이다.


“일어났어요?”


아.. 그랬지. 야밤에 이 집에 쳐들어왔지. 그리곤 아이처럼 펑펑 울었지. 그리곤 울었지... 또 울었지... 하고 싶은 말은 하지도 못하고 울었지. 새벽녘쯤 진정이 된 후 잠든 송기후 깨지 않게 조심조심 나가려다 그의 육포 전완근에 잡혔지... 그리곤 락스타가 말했던 으른 키스를 했지. 그리곤 지금 눈을 뜬 거지...


송기후는 테이블에 샐러드와 커피를 내려놓고 침대로 다가왔다.

송기후는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 식탁으로 이끌었다.


“미안해요, 기후 씨한텐 계속 민폐네요.”

“그 시간에 딴 남자한테 갔으면 더 서운했겠죠.”

“얼굴 많이 부었죠?”

“그런 걸 눈물 보톡스라고 한다죠? 팽팽하니 좋구만 뭐.”


큽.. 하고 실소가 났다.


“언제 줄 거예요?”

“네?”

“미움 혹은 슬픔, 택일 하라며.”

내가 포크질을 멈추자 송기후는 다시 햇살미소를 보였다.


“아... 지금 할게요.”

“아니.”

“....”

“이율이 씨 병원에 있는 동안 보컬이 형이랑 협상을 했어요. 한 달간 휴가.”

“그럼 기후 씨 빈자리는 어떡해요.”

“대타 세웠죠. 보컬이 형이 신곡 2개 만들어오면 봐주기로.”

“저 때문에 괜히...”

“캠핑이나 여행 가요. 그때 얘기해 주세요. 아침 먹으면서 할 얘긴 아닌 거 같네.”





나를 쏙 뺀 ‘이율이 사자’는 창가를 서성이고 있다. 아, 맞다. 쟤가 있었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락스타 같은 ‘다정한 오지랖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저 애를 곧 폐기하게 될 이 방의 가구나 로봇 청소기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때마침 집주인의 전화가 왔다. 새 세입자가 이달 말로 집을 비워달라고 했단다. 얼떨결에 할 일이 생겼다. 버릴 거 버리고 나눌 거 나누고 최소한의 짐만 꾸린 채 시골집으로 가야겠다.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곳에 이 몸을 뉘어야겠다.


“며칠 후면 나 여기 없어.”

“걱정 마. 니가 어딜 가든 내가 보일 테니.”


기막혀.. 내 얼굴, 내 목소리지만 꼴 보기 싫다.


“눈치는 있더라, 송기후 집에 따라오지 않은 거.”

“촌스럽게 거길 왜 가. 가건 안 가건 다 보이는 데 뭐.”

“그래, 그런 신통력은 그렇게 거리 지키면서 써. 어디 사라져 있다가 나 죽는 날 와주면 더 고맙고.”

“데이터랑 좀 다르다, 너?!”

“락스타 덕분이야. 내 마음속 비번을 풀어줬거든.”

“우리 요원 중에 락스타 따윈 없어, 웬 잡귀가 붙었나 보네.”

“너처럼 내 얼굴, 내 목소리로 왔는데 그럼 너도 잡귀겠네?”

“뭐?”

“락스타를 부정하면 너도 부정되는 거야.”






세간이 얼마 없는 집이라 짐정리도 후딱 끝났다. 나의 모든 짐은 작은 캐리어 하나에 모두 담겼다. 송기후는 그동안 캠핑장 예약을 마쳤다. 송기후와 나는 캠핑장 근처에서 장보기도 하고 시장 구경도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만끽했다.

송기후는 구슬전구까지 구해와서 감성 가득한 캠핑 꾸미기까지 해 주었다. 평일이라 이용자는 거의 없었고 우린 캠핑장을 전세 낸 듯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밤이 깊어갈 무렵 나의 고민은 깊어졌다. 병원까지 내달려왔던 남자, 미움과 슬픔 중에 슬픔을 선택한 송기후의 마음을 예측할 수 있기에-


“건강검진 하고 난 후 이상소견이 있다고 불려 갔었는데요,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고 했어요.”


모닥불에서 쿠킹호일에 싼 고구마를 뒤적이던 송기후가 작대기 질을 멈췄다.


“엄마도 이 병으로 돌아가셨고.”

“........”

“나는, 이 병을 알게 되기 전부터 송기후 씨를 바라봤어요. 짝사랑 같은 거죠. 이사 오고 얼마 후에 일었던 감정이니까.”

“...........”

“죽기 전에 말하고 싶었어요. 송기후 씬, 나한테 아주 많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

“미안해요.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멈췄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

“.........”

“나쁜 년처럼 남의 감정 들쑤시고 사라져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마지막까지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이게 나예요.”


송기후는 내게 달려와 와락 안아주었다.


“종료시점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잠시만 옆에 있어줄래요?”


송기후는 대답 대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뜨거운 눈물이 나의 뒷목덜미로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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