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컴백
사랑하는 사람, 믿는 친구가 있다면 꽤 선방한 인생이다. 다행히 나는 송기후와 락스타를 가슴에 품고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송기후는 많이 놀란듯하다. 왜 아니겠는가. ‘약간 건강이 덜컹한 것’과 ‘가망 없다는 방점이 찍힌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일 테니. 이렇게 착한 남자를 이렇게 내 인생 끄트머리에 끌어들여도 될까. 비밀 한 점 없이 용기를 냈다는 후련함과 안도감 속에서 고개를 쳐드는 죄책감이 불규칙한 패턴으로 머릿속을 긁어댔다. 송기후가 피워둔 모닥불 앞에서 우린 불멍을 이어갔다. 달빛, 별빛과 풀벌레 소리... 한밤의 낭만이 우리를 감쌌다.
“앞으로 뭐 하고 싶어요?”
“내가 제일 잘하는 일...”
“응?”
“기후 씨네 밴드 앨범 디자인도 해보고 싶고.”
“오...!!”
“혹시나 보컬이형이 거절한다면, 송기후 솔로 앨범 디자인 하고.”
“아직 내 노랜 2개뿐이지만 빨리 완성할게요.”
“그리고 또...”
“응?”
“기후 씨 그려서 그림책도 만들어보고 싶고.”
“오, 것두 좋다.”
“일전에 그랬잖아, 나의 라스트씬이 되어 달라고.”
송기후는 살짝 시선을 내렸다. 내가 또 그의 가슴에 파문을 일게 한 건가..
“기후 씨, 정말 미안하지만...”
“어허!! 자꾸 그런 말 하기만 해요?! 송기후 뿔 보게 될 겁니다.”
“왜 껴들어요, 정말 미안하지만 절대 미안하다고 안 할 거라고 말할 참인데.”
그제야 송기후는 말갛게 웃었다.
“휴가 동안에는 딱 붙어있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나 없인 아무 데도 못 가.”
“딱, 듣고 싶었던 말이넹.”
“방 빼면 우리 집에 와 있어요.”
“무한정 그럴 순 없죠. 일단은 시골집에 가려구요.”
“나 없이?”
“무슨 소리예요. 내 옆에 딱 붙어있겠다며. 휴가 한 달 받았다며.”
“나 진짜 가도 돼요? 집안 어르신들 잔뜩 계실 거잖아.”
“나 막 자랑할 건데? 내 남친 어때요, 고모 조카 능력 있죠, 하고.”
“근데... 이런 얘기로 스트레스 주고 싶진 않은데..”
“응?”
“다른 병원 가보는 건 어때요?”
이번엔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후 씨, 딱 한 번만 얘기할게요.”
“.....”
“희망고문 당하지 않을 거예요. 또 조마조마하며 결과를 기다려야 하고 오진이 아니었다는 걸 굳이 시간 들여 돈 들여 마음 들여 확인하겠죠.”
“알았어요, 입 닫을게요.”
“스트레스 없이 행복한 기억만 쏙쏙 뽑아서 가질 거예요. 하루라도, 아니 1분이라도 더.”
송기후는 우유미소로 고갤 끄덕였다.
“그럼 시골집 가기 전에 필요한 거 다 챙겨갑시다.”
“완전 깡촌인데 괜찮겠어요? 와이파이도 없고... 제일 가까운 고모네 집도 몇백 미터 떨어져 있거든요.”
“건반 챙겨갈 거고 뮤즈님도 모셔가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내가 송기후의 뮤즈라니....
“그 쎈 친구분은 어디 갔어요?”
송기후의 질문에 심장이 뚝 떨어졌다.
“금방 올 거예요.”
락스타는 다시 와줄까....
와주라, 락스타..
“정리 금방 하고 올게요. 먼저 텐트에 들어가요. 온열매트 켜놨지롱.”
송기후는 설거지 거리를 잔뜩 들고 갔다. 그 뒷모습에 나도 몰래 미소가 물어졌다. 저 남자는 도대체 언제까지 날 웃게 할 셈인가. 그 한 번의 웃음으로 나는 1분 정도 더 수명이 늘지 않았을까. 그 순간만큼은 죽음의 엄습 없이 순도 100%로 행복했으니까. 이렇게 1분씩 적립할 것이다.
한동안 모닥불 앞에 홀로 앉아 저물어가는 불길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내 인생처럼 처연했다. 더 이상 슬프지 않을 무모한 자신감은 사실, 어쩌지 못할 체념에서 왔을 테니... 이율이야, 언제까지 불안정하게 널뛸 거야. 송기후가 눈앞에 있을 땐 죽음은 한걸음 떨어지고 혼자 남겨지면 락스타로 인해 알게 된 나의 죽음이 떠올라 길을 잃는다.
태블릿을 켜고 그리다 만 송기후 그림에 덧칠을 해본다. 락스타를 OFF 하고 송기후를 ON하니 다시 입가에 미소가 물려진다. 그렇게 미친년처럼 내 소중한 두 존재의 ON/OFF를 반복하고 있다.
“괜찮아 보인다?!”
신경 긁는 저 말투에 고개를 드니 락스타 후임 그 애가 앉아있다. 나와 락스타와 불청이, 셋다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목소리지만 왜 유독 저 애만 저토록 꼴 보기 싫을까... 혹여 내게도 저런 면이 있으려나 걱정이 될 지경이다. 서울에서 깡촌으로 끌려온 어린아이는 저토록 불손한 눈길로 할머니를 봤을까, 그래서 내가 더 미웠으려나.
“뭘 그렇게 빤히 봐? 기분 나쁘게.”
“불청이 왔구나.”
“건 또 뭐냐. 설마 나한테도 유치한 이름 붙인 거니?”
“어. 불청객이니까 딱이지.”
불청이와 락스타의 다른 점은 딱 하나다. 불청이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락스타는 선글라스가 디폴트라 그랬는지 모르지만 항상 그녀의 얼굴은 날 향해있었다. 그러나 불청이는 달랐다. 짧게 쏘아보고는 시선을 항상 돌렸다. 뭔가 들킬까봐 걱정인 것처럼.
“당일 날 오라니까. 피차 반갑지 않잖아. 할 말 있으면 하고 가.”
“신경 끄시라고.”
안 보여야 신경을 끄지.
“나... 언제 가?”
“우리도 몰라 당일에 통지받아서.”
“그럼, 당일에 만나. 보시다시피 내가 일행이 있어. 지금은 혼자 고요히 내 인생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야. 그만 가주면 좋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불청이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래, 너랑 무슨 말을 섞겠어. 내가 피하자.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 분노로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 벌떡 일어서는데 휘청 넘어지면서 텐트 한쪽으로 쓰러졌다. 그때 불청이가 후다닥 달려와 나를 부축했다. 불청이의 싹퉁 바가지 눈빛이 아니라 다정했던 락스타의 눈망울로.
“락스타?”
[조용히 해. 지금 감시받아.]
“...!!....”
[문제 일으키지 않으면 쟤네들 곧 갈 거야.]
“잠깐만..!!”
[조용히 하라구!!! 암튼 눈치 드릅게 없어.]
불청이는 락스타였다. 나의 락스타. 그런데 지금 락스타 눈에만 보이는 감시자가 있으니 감격의 상봉은 하지 말란 거잖아. 근데 지금 나, 락스타 니 마음을 읽은 거야? 락스타는 누구들 보란 듯 부러 거칠게 나를 일으키고 살벌하게 노려봤다.
“조심 좀 하자, 응?! 예정일 보다 빨리 가고 싶어?”
윽박지르며 락스타는 홱 돌아섰다. 싹퉁바가지로 행동하는 락스타였지만 그 애의 진심을 알게 된 나는 너무 기뻐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락스타가 돌아왔다.
송기후는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그의 뒤허리를 와락 안았다.
“따뜻한 데 있으라니까.”
“그래서 왔잖아.”
나는 송기후의 따뜻한 등에 매달려 그의 동선에 따라 졸졸 따라다녔다. 송기후는 으이그.. 하며 접시와 머그의 물기를 닦았다.
“얼른 일 마치고 놀아줄게.”
이번엔 그의 손등에 내 손을 포갰다.
“무슨 소리야, 물기는 내가 닦는구만. 송기후 손으로.”
아무것도 아닌 걸로 우리는 웃고 또 웃었다. 내 목숨 1분 연장, 또 1분 연장... 죽기 직전에 이렇게 행복한 사람 있음 나와보라 그래.
하나의 연인, 하나의 친구...
이번 생은 그걸로 충분해.
아니, 차고도 넘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