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타처럼 죽고 싶어 16

나만 몰랐던 비밀

by 햇빛투게더

서대표는 코마상태가 지속되었다. 맹세코 그녀의 불행을 원한 건 아니었다. 다만 부당한 취급에 목소리를 냈을 뿐.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착잡했다. 복도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데 락스타가 기막힌 얼굴로 옆에 앉았다.


“이율이, 넌 안 보이지?”

“응?”

“서대표 옆에 누가 있어.”


열린 병실 문으로 간병인이 보였다.


“간병인... 같은데?”

“아니, 둘이야.”


아무리 눈을 비벼도 내 눈엔 간병인 하나였다.


“나 같은 자. 서대표의 얼굴을 하고 있어. 창문 앞에”

“.....!!!......”


그러네, 락스타조차도 본인의 결정에 따라 예비망자인 내 눈에 보이기도 안보이기도 하네.


“저 여자...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 봐봐, 벌써 담당자 배치된 거.”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이들은 어떡하라고. 아니, 본인은.. 본인의 삶은 어쩔 건데. 사람은 실수를 할 수 있고 그 실수는 시간을 들여, 진심을 들여 만회하면 된다. 그런데 노력도 안 해보고 불명예스럽게 진짜 간다고? 나처럼 일방 통보를 받은 것도 아니고 스스로 포기한다고? 겨우 결정한 게 죽음이라고? 어떻게 죽음을 선택할 수가 있어? 이건 순도 100%의 분노다.


“가자, 이율이.”

“서대표님 죽으면?!”

“그게 너랑 뭔 상관? 죄책감까지 끌어안으시게? 저 여자 운명인거지, 자의건 타의건.”

“왜 끝까지 남의 속을 뒤집는 거야.”

“마음 아끼고, 시간 아끼라고. 딴사람한테 측은지심 느낄 여유 있어?

내 보기엔 네가 더 불쌍해. 네가 젤 불쌍해.”





송기후와 시골집에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고모가 쓸고 닦아 집은 쾌적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고모는 '연락없이 내가 왔다'는 사실보다 ‘남자와 함께 왔다’는 것에 더 놀란 눈치다. 한 달 치의 짐과 건반까지 내리자 고모는 나를 따로 불렀다.


“뉘여?”

“남자친구.”

“회사는?”

“그만뒀어요.”

“둘이 살림 차린 겨?”

“고모.”


고모는 가만히 나를 보다가 무슨 상상을 하는지 동공이 커졌다.


“애 들어섰냐? 저 집에서 반대하능겨? 시상에...”


나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실은... 몸이 안 좋아. 많이.”


고모는 내 손을 덥석 쥐고는 그렁였다.


“내 새끼 워디가 아퍼, 병원에 가야제. 여길 오면 어쩌. 약국도 20리를 가야 허는디....”

“병원에서도 포기했어. 엄마랑 병명이 같아...”

“어메....어메... 내 새끼 어째...”

“나 여기 좀 있어도 되죠?”

“그려, 여가 니 집이여. 잘 왔어, 내 새끼..”


고모의 말에 나는 말갛게 웃었다.


“쟈는 다 알고?”

“응.”

“저녁은 고모집 와 무거, 잉?”

“나 고모 두부부침 되게 그리웠어.”

“그려, 그려.”


고모는 서둘러 갔다. 눈물을 찍어내느라 바쁜 고모의 먼 뒷모습에 울컥했다. 하염없이 고모를 바라보는데 송기후가 다가왔다.


“많이 놀라신 모양이네.”

“기후 씨 보고 한 번, 아프다니 또 한 번.”

“짐 정리하고 있을게, 좀 쉬어요.”


송기후는 내 손을 잡고 집 안으로 이끌었다.


“고모가 저녁 먹으러 오래요. 우리 고모 두부부침 최고야. 직접 만든 두부를 솥뚜껑 위에 들기름을 둘러서 구워주시거든. 아니 튀긴다고 해야 하나.”

“와... 나 그거 진짜 좋아하는데.”


마루에 올라가는 동안 나는 쫑알댔다.


“진짜 킥은 뭔지 알아?”

“뭔데?”

“조선간장이랑 진간장 반반 섞은 다음에 달래 다져 넣은 양념장 있거든? 그걸 위에 끼얹어줘야 퍼펙트.”

“식탐 있네? 할머니랑 사이 안 좋대서 밥투정했나 했지. 걱정 괜히 했어.”

“치킨도 없고 햄버거도 없고 소시지도 없는데 두부부침에 눈 돌아가는 건 당연하지 않아?”

“딱 기다려. 좀 이따 내 눈도 같이 돌아갈 거니까.”


연애의 조건 중 유머포인트와 분노포인트가 중요하다 한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리액션이다. 나를 응시하고 있다가 반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진짜 행복한 일이다. 별 뜻 없는 말, 별 뜻 없는 행동에서부터 진지한 사안까지-

난 이제.... 송기후가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송기후는 대청마루에 건반을 연결하고 우리가 나란히 앉아 영상을 볼 리클라이닝 의자 2개를 조립했다. 할머니의 옛날 집은 건반, 리클라이닝 의자, 스피커, 내가 좋아하는 구슬 전구로 장식한 인디언텐트 등 신문물로 채워지며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태블릿으로 그 광경을 그렸다. 열일하는 송기후의 뒷모습도.





고모도 오랜 시간 홀로 지내셨다. 고모부는 예전에 돌아가셨고 장성한 자식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다 보니 적적하셨나 보다. 살가운 송기 후의 태도에 연신 웃음을 짓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또 훌쩍이며 두부부침을 밥 위에 올려주셨다.


“내 새끼 또 먹고 싶은 거 없능가.”

“손 많이 가는 것도 돼?”

“말만 혀, 뭔디.”

“고모표 식혜.”

“그 까이꺼 뭐... 당장 해주지.”


우리 고모가 원래부터 다감한 스타일은 아니셨다. 어릴 땐 무서운 할머니와 세트플레이로 무뚝뚝 담당이셨는데 내가 변한 건지 고모가 변한 건지 오늘의 관계가 새롭게 형성됐달까. ‘피’를 나누어 가졌다는 건 이런 건가. 나의 일상에서 완전 삭제되었던 분이지만 또 어떤 순간이 되니 마음이 저절로 풀어지는 것... 나는 오늘부로 ‘고모의 내 새끼’가 되었다.


고모는 아빠가 이 깡촌에서 얼마나 자랑거리였는지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내게 아빠의 얼굴이란 서른 중후반부터의 어른 모습이지만 고모의 기억 속에 머무르는 아빠는 대부분이 꼬맹이 시절이었다. 이 가난한 시골집의 귀공자로 자라 노골적인 편애에 고모는 한이 넘쳤다고 귀여운 뒷담화가 시작됐다. 그러나 역시 결론은 군에서, 도에서 소문난 수재였다고 자랑자랑....

송기후는 고모에게 내일 점심은 새우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해드리겠다고 했다. 촌아낙은 평생 바질페스토를 맛보지 못했지만 '넘이 차려줄 한 끼'에 크게 만족하셨다.


소박한 메뉴지만 상다리 부러져라 차린 밥상에 송기후와 나는 배불뚝이가 되어 나왔다. 내일은 맛있는 식혜와 새우 바질페스토를 맛보게 되겠지. 루틴을 깨니 매일매일이 새로운 하루다. 사람은 잠을 자며 매일 죽는다고 한다. 어느 한 날 깨어나지 못한다고 가여운 인생이 아닌 거다.


“고모님 너무 귀여우시네.”

“나도 첨 봐요. 부캐가 있으셨어.”


송기후는 인디언텐트로 나를 쑥 밀어 넣고는 블랭킷을 덮어줬다.


“잠깐 있어요, 방 청소하고 깨울게.”


그는 작게 음악을 틀고 마루를 쓸고 닦았다. 보사노바 음악과 시골집의 걸레질이라니... 사소한 미소와 함께 나는 까무룩 잠들었다.





꿈일까, 아닐까... 괴롭게 앓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내가 잠든 이 인디언텐트에서. 락스타의 공백기처럼 죽음의 통증을 앓고 있는 나. 그리고 그 옆에 또 하나의 나... 이런 게 유체이탈인가.. 육체에서 멀어져 나를 내려다보는 기이함.

쌍둥이처럼 나란히 누워 잠든 두 개의 나... 잔꽃무늬 원피스는 고통에 몸무림 치고, 후드티를 입고 있는 나는 평온하게 잠들어있다. 둘의 머리카락은 한 몸처럼 붙어있었다. 머리카락은 미세한 형광빛을 내며 무언가 흐르는 움직임이 보였다.


[락스타, 나 왜... 안 아파?]


공항에서 했던 나의 질문이 무서운 에코로 반복해 들렸다.


[락스타, 나 왜... 안 아파?]

[락스타, 나 왜... 안 아파?]

[락스타, 나 왜... 안 아파?]


“락스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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