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타처럼 죽고 싶어 19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by 햇빛투게더

며칠이 지난 후 송기후의 차는 엄마의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 무릎엔 아빠의 유골함이 얹혀 있다. 노모가 갈라놓은 애틋한 연인이자 아내의 곁으로 가는 아빠는 어떤 마음일까. 착잡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 차창을 보는데 팀장님에게 문자가 왔다.


[서대표 깨어났어. 알고 있으라고.]


자신의 의지로 깨어나면 만회할 시간이 남아있다니.. 서대표가 부러울 따름이다. 그녀는 삶과 죽음 한가운데서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되돌아왔을까. 그에 비하면 선택지 없는 엄마와 나는 너무 가엽다. 엄마는 나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돌아올 수 없었고 나 역시 송기후의 눈물에 돌아설 수 없잖아. 나의 침묵이 길어지자 송기후가 입을 뗐다.


“누구?”

“응?”

“안 좋은 문자야?”

“좋은 소식이야. 대표님 깨어났대.”


송기후는 아.. 하고 짧은 숨소리를 냈다.


“가보고 싶어?”

“글쎄. 다행이긴 한데 딱히 할 말도 없어. 현재는 그래. 마음이 바뀌면 가고 싶다고 할게.”


저 멀리 추모공원이 작게 보였다.


“거의 다 왔어. 고모님 덕분에 빨리 오게 됐네.”

“응.. 고모가 엄청 빨리 움직여주셨어. 쉬운 결정 아닌데..”

“이번엔 연어 사가자. 스테이크 해드려야지.”


맞다, 고모가 큰 결심을 해주신 거다. 나에 대한 연민인지 아빠에 대한 부채감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가족묘에서 아빠를 내어주셨다. 저승의 할머니는 노발대발하시겠지만...


“그러자, 연어 스테이크도 좋아하실 거야.”




엄마와 아빠를 한 부스에 모셨다. 고모가 내어주신 두 분의 결혼식 사진 액자도 새로 두었다. 이제 머지않아 나도 한 줌 가루가 되어 이곳에 들어오겠지.

괜찮아... 진짜 괜찮아... 괜찮,,,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기후 씨, 나.. 잠깐만.. 엄마 아빠랑 시간 좀...”

“차에서 기다릴게. 천천히 와.”


송기후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우리 곧 만나겠지? 생각해 보니 내가 아는 사람은 거기 더 많아. 진짜 사후세계 쫀쫀해서 우리가 만나게 되든 영혼이 우주에 흩뿌려 먼지가 되든 어쨌든 날 알아봐 줘. 엄마, 아빠.. ]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나타나지 않아도 되는데 락스타. 너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락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 아빠의 유골부스 유리창에 투영된 락스타와 나...


“쓸데없다니 뭘.”

“나 때문에 너네 룰 파괴 말라고. 나 때문에 위험해지지도 말고. 알아들어?”

“이율이.”


락스타의 목소리는 낮고 엄격했다.


“넌, 니 일을 해. 난, 내 일을 할 테니.”

“니 맘대로 하겠단 거잖아.”


유골부스 유리창에 남겨진 하나의 나..





송기후와 내가 살 던 원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율이 씨, 밥부터 먹자.”

“응...”


차에서 내리는데 송기후가 멈칫했다.


“엄...마.”

“너 이누무자식. 한 달 휴가 냈다며. 좀 전에 유성이(보컬이형)랑 통화했는데..”


송기후 모친은 나를 발견하고는 환히 웃었다.


“어머, 이율이 씨네. 둘이 어디 다녀와? 데이트?”


나는 머쓱해져 목례만 했다.


“엄마가 밥 사줄까?”




우린 원룸 앞 칼국수집에 자릴 잡았다.


“나 여기서 율이 씨 처음 봤잖아. 우리 아들 이상형 포착의 순간.”

“네?”

“창문 너머 율이 씨가 지나가는데 우리 아들이 하트 뿅뿅 봤다니까.”

“엄마, 쫌..”

“좋아서 그래. 율이 씨도 내 이상형이니까. 내 아들의 이상형 여친.”


최고의 찬사다. 그 말들이.. 감사하고 기뻤다.


“엄마, 자꾸 그렇게 산통 깰 거야?”

“아니에요, 감사한 말씀이죠. 어머니도 제 이상형이세요.”

“어머?! 다음엔 쟤 빼고 나랑 데이트해요.”

“네, 좋죠. 이 동네에서 제일 핫한 디저트 가게가 있어요.”


다음이 있었으면, 제발 한 번이라도 다음이...


“엄마 또 반찬 잔뜩 해왔지?”

“인석아, 니가 미리 말 했으면 안 해왔지. 율이 씨랑 나눠 먹어.”

“율이 씨 말고 율이라고 해주세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해주셨으면 해요.”

“그럴까?”


송기후는 우유 미소를 지었다.


“기후야, 내가 뭐 발견한 줄 알아? 세상에 이게 어디 갔나 했는데 창고 정리하는데 나오더라.”


송기후의 어머니가 핸드백에서 꺼낸 건 아주 오래된 오르골이었다.


“너, 이거 있어야 잠들곤 했는데.”

“언제 적 얘길 해. 나 등만 대면 잘 자.”

“치.. 다 컸다 이거지?”

“이거 열어봐도 돼요?”


칼국수 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구슬프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율이가 가질래? 쟨 관심 없는 모양이다.”

“네, 제가 가질래요.”


송기후의 모친은 아름다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기억할 것이다. 눈 감는 그 순간까지. 그러니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을래..


“어머니, 내일 시간 어떠세요?”

“내일? 없어도 있어. 시간.”

“그럼... 내일 해요. 단 둘이 데이트.”

“정말?”

“귀한 오르골 주셨는데 제가 쏠게요.”


내 말에 기후는 당황했고 그녀는 웃었다.


“내 오르골인데 난 왜 빼?”

“아들, 넌 빠져.”




송기후의 방 창문으로 노을이 엽서그림처럼 불타올랐다. 역시나 송기후 닮은 송기후의 방.. 주인이 며칠 방을 비워도 말끔하고 세련된..


“나 없이 괜찮겠어? 우리 엄마 에너지 과잉이란 말이야. 디저트카페로 안 끝나. 영화, 갤러리, 백화점.. 어휴.”

“여자끼리 갈 수 있는 곳에도 가볼래. 그니까 기후 씨 휴가야.”

“난 괜찮은데..”

“휴가.”

“알았어.”


송기후는 빨래방에 다녀온다고 나갔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데 팀장님의 문자가 마음에 걸렸다.




서대표의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대표는 초췌한 얼굴로 천정만 올려다보고 있다. 내가 다가가자 서대표는 미간을 접었다. 짜증이 아닌 민망의 내천(川) 자.


“구경 왔니?”

“여전하시네요.”

“.......”

“몸은 좀 어떠세요?”

“구경 다 했으면 가. 보시다시피 충분히 비참하고 충분히 불행하니까.”

“여자로선 그럴 수 있죠. 근데 엄마로는 그러지 마세요.”

“건방진 소리 할 거면 그냥 가.”

“저 이젠 대표님이 뭐라든 안 긁혀요. '그려려니'가 된다구요, 이제.”


서대표는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애들이 울면서 전화했어요. 애들한텐 소중한 분이잖아요.”

“.........”

“만회하시면 됩니다. 미안한 만큼.”


나는 돌아 나왔다. 문을 여는데 서대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율이 씨. 거기서 들어."


나는 다시 서대표를 돌아봤다. 서대표는 나를 향해 있었다.


“나, 용서하지 마. 나도 미안하다고 안 할게. 어차피 믿지도 않을 거잖아.”

“....”

“나름 성공이란 걸 하니까 위험한 상태가 됐어. 제어가 안되더라고. 이율이 씨한테 한 행동들도 [난 그래도 돼...]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아.”

“위로가 되네요. [난 그래도 돼...] 였으면.”

“어?”

“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넌 그래도 돼.. 넌 당해도 돼..] 그게 아니었다면 위로가 된다구요.”


나는 살짝 목례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서대표가 [난 그래도 돼]하는 자아과잉 상태라는 걸. 내 결핍과는 상관없는..

복도를 걷는데 서대표의 노모와 아이들이 걸어왔다. 여전히 아이들은 내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노모는 나를 못 알아보는 눈치고. 그렇게 어색하게 스쳐 지나가며 병실 문 여닫는 소리가 났다. 그럼 그렇지... 위기를 넘긴 갑질가족은 변하지 않았어. 절레절레하며 돌아서는 그때, 아들 녀석 목소리가 들렸다.


“이율이.”


내가 돌아보자 아들 녀석은 달려와 막대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내가 제일 아끼는 사탕이야. 먹어.”

“고맙다고 하고 싶구나?”

“뭐래.”


아들 녀석은 내 손에 막대사탕 쥐어 주고 병실로 달려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태도’에 방점이 찍힌 것 같다. 꼬맹이도 그 엄마도 마음은, 눈빛은 조금 변했다는 걸 난 분명히 느꼈다.

‘화해’는 못해도 ‘이해는 할 수 있는 나’로, 나도 분명 달라졌다. 분명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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