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타처럼 죽고 싶어 20

저물어 간다는 건-

by 햇빛투게더


서대표 병문안을 마친 후 버스 정류장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기운이 있거나 없거나의 차원이 아니라 뭔가 저물어가는 느낌. 도시의 끝자락을 물들이는 노을 탓이려나.


“이율이 씨!!!!”


간절히 나를 부르는 소리, 송기후다. 돌아보니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그가 보였다. 내 앞에 멈춰 선 송기후는 가쁜 호흡을 몰아쉬었다.


“왜.. 혼자.. 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왜 알 거 같지.


“냉장고 메모 못 봤어요? 서대표 병문안 간다고..”

“봤.. 지.”


도대체 얼마나 빨리 달려온 거야. 얼마나 걱정을 연료로 달렸을 거야. 나는 그의 거친 호흡에 묘한 감동을 느꼈다. 내가 뭐라고 이토록 애달프게 바라봐... 내가 뭐라고 이토록..


“나 괜찮아, 기후 씨.”

“내가 안 괜찮아, 내가.”


저물어 가는 삶의 끝에서 내 마음은 다시 뜨거워졌다. 송글송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그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어루었다.


“어디 또 혼자 가기만 해.”

“아라또.”

“아라또래... 지금 애교 부린 거?”

“배고팡.”

“배고팡? 아라또.”


우리의 한정적인 행복이 이토록 유치 찬란 애틋하다.






주방의 송기후는 등을 보이며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고 나는 한껏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그림 같은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그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상부장의 그릇을 꺼냈다.


“율이 씨.”

“....”

“율이 씨.”


재차 부르는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난 그냥 그를 훔쳐보는 걸 들킬까 장난친 건데 송기후는 식겁했던 모양이다. 그는 다급히 내게 다가왔다. 허둥지둥 이불을 걷어내는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급히 머리맡의 오르골 뚜껑을 열었다. 오르골 소리가 들리자 송기후는 잡아다니던 이불 한 끝을 놓아버렸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이불을 걷어냈다.


“장난친 건데... 화났어?”

“왜 그딴 장난을 쳐!!”


송기후는 하얗게 질려있었다.


“목도 좀 잠겼고... ”

“알았으니까 목 잠기거나 말하기 싫을 때 오르골 열어. 응?”

“웅..”


송기후는 안심하는 얼굴이 됐다가 다시 엄격하게 다짐받으려 했다.


“또..또 그러기만 해.”

“응..”

“배고프다며. 밥 먹자.”


이렇게 내겐 의무조항이 또 늘었다. 항시 살아있는 티 내기. ‘깰꼬닥’ 같은 최상급의 모션으로 장난치지 않기. ‘죽을 만큼 사랑해’ 같은 말 하지 않기.







드디어 송기후의 모친과 둘이 만나는 날이 밝았다. 송기후는 자기 없는 만남에 걱정 한 바가지를 했지만 그의 아름다운 모친과의 데이트는 즐거웠다.

송기후 말은 역시 맞았다. 어머니는 넘치는 에너지로 나를 이끌었다.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내돈내산으로 해보지 않았던 일을 클리어한 셈.


첫 번째 간 곳은 억 소리 나는 한정식집. 어른의 초대가 아니면 이 호사스러운 식당에 올 일이 있겠는가, 화려한 음식 하나하나 음미했다. 음... 죽기 전에 한 번은 먹어볼 가치가 있었다.

두 번째로는 네일숍. 나는 개인적으로 과한 네일이 좀 부담스러운 타입이다. 업무적으로도 너무 긴 손톱은 불편했고 내가 입는 옷에도 어울리지 않아 나는 언제나 초등학생 손톱을 유지했다. 한정식처럼 이 또한 이벤트성으로 한 번은 즐길만했다. 분명 기분전환은 됐으니까.

세 번째는 내가 모시고 간 우리 동네 핫플, 디저트카페. 그녀는 과자로 만든 집에 초대받은 아이처럼 천진하게 감탄하며 인증샷을 남겼다.

네 번째는 백화점. 쇼핑할 게 있다 하셔서 따라갔는데 그녀가 나를 이끈 곳은 내 또래의 샵. 열 번의 사양에도 그녀는 극구 내게 최신 원피스를 사 입혔다. 점원은 우리를 자매 아니냐고 했다. 나도 처음에 착각했을 만큼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으니까.

다섯 번째는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노을이 물든 공원을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하루 종일 즐거웠지만 그만큼 마음이 무거웠다.


“니들, 결혼도 생각하는 거지? 내가 너무 앞서나갔나?”

“....!!....”

“나는 아무 간섭 안 해. 결정되면 날짜만 알려줘.”


그녀는 눈부시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이 찬란할수록 행복한 이 감정이 죄책감으로 전환되면서 자꾸 그녀를 속인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래, 잠깐 앉을까?”


우린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무슨 말?”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저... 기후 씨 많이 사랑해요. 기후 씨도 크게 다르지 않구요.”

“으이그... 내가 그걸 모를까 봐? 아, 우리 연말에 호캉스 송년회 할까? 미리 예약해야 해서. 크리스마스는 너네 둘이 달달하게 보내고. 나는 연말 파티에 껴주라. 응?”


아... 정말... 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


“전 참석 못할 것 같아요.”

“왜, 벌써 선약 있어? 기후랑 해외여행 가?”

“다음 생이 있다면 꼭 어머니의 가족이 될게요.”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기후와 상의도 하지 않았고 선뜻 얘기하기 힘든 주제였기에-


“제가 좀 아파요.”

“어? 그럼 치료해야지.. 당장 병원 예약 할게.”

“병원에서도 해줄 게 없대요. 아마 조만간... 그렇게 될 거예요.”

“그렇게라니..?”

“죄송해요, 이런 말씀드려서.. ”


한동안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손부채질로 얼굴을 식혔다. 나는 범행현장을 들킨 흉악범처럼 뻔뻔하고 될 대로 되라의 심정이 됐다.


“기후 씨도 알아요. 그래서.... 어머니가 도와주셨으면 해요. 기후 씨가 포기를 안 해요. 저도 더 이상 추한 모습 기후 씨한테 보이고 싶지 않고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지금까지 받은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해요.”


그녀의 손부채질은 계속되었다. 나는 그녀의 처분을 기다리며 입을 닫았다.


“율이 씨 정말 나쁘네.”

“죄송합니다. 맞아요, 제가 나빴어요. 죽기 전에 저 멋진 남자에게 고백이라도 하고 싶었고 이민 간다 하고 사라질 결심을 했어요. 단 하루라도 행복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서는 안 됐어요. 기후 씨와 제가 같은 생각이라는 사실에 내일 죽어도 좋다.. 그랬거든요. 남겨질 기후 씨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내 기분에 취해 내 억울함에 취해 그랬나봐요. 그런데요.. 기후 씨를 사랑할수록 후회가 밀려와요. 어머니가 좋아진 만큼 제 행복이 부끄러워요.”

“내가 막은들 기후가 그만둘까. 율이 씨가 선의로 연을 끊은들 남겨진 기후가 상처 안 받을까? 율이 씨 사라지면 냉큼 행복해지냐고. 난 내 아들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

“........”

“솔직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말이 정리가 안되네..”

“......”

“그러니까... 내 말은...내 눈치 보지 마.”

“네?”

“기후 여친들 내가 다 봤어. 하나 같이 내 마음에 차진 않았지만 그게 누구든 기후 의지대로 만나고 헤어지고 했다고. 근데 내가 확실히 아는 건... 그전과는 다르다는 거야. 기후... 진짜 율이 씨 좋아해. 내가 그걸 알아. 알아버렸어. 그니까 내가 나서서 되네 안되네 그런 건 기대하지 말아 줘. 상처? 오래가겠지. 근데 그건 기후가 겪고 헤쳐가야 할 문제야. 기후가 감당할 일이라고.”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도대체... 왜들 이렇게... 왜 다들..

기후의 모친은 한마디 한마디 나를 울렸다. 설령 그것이 달콤한 거짓이라 해도-


“이율이.”


나는 죄인처럼 무겁게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율이가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 아들놈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나도 그럴 거라고. 응?”

“......”

“힘든 얘기,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

“우리 율이, 한 번 안아보자.”


그녀는 엄마처럼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송기후의 모친을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일각에 락스타가 보였다.


“왜 이제 나타나.”


락스타는 씩~ 웃었다.


“송기후가 모친을 닮았네.”

“응... 말년에 내가 뭔 복인지 모르겠어. 평생 내 걸림돌이었던 결핍감을 다 채우고 가나 봐. 사랑받는 느낌이 뭔지 알 것 같아.”

“다 니가 만든 결과야.”


내가 만든 결과...


“근데, 락스타..”

“왜.”

“니 머리색.. 좀 달라졌다?!”

“뭐?!”

“남자 아이돌 머리 같애. 반짝이는 회색이 됐네, 힙하다.”


락스타는 순간 휘둥그레졌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 시그널의 의미.

확실히 내 삶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걸.







>>>에필로그 by 락스타


아... 내 머리색이 달라졌구나. 이율이 스타일로 변모한 후 내 머리칼은 이율이와 똑같이 검은색이었다. 허나 지금은 반짝이는 회색. 하필 그걸 이율이가 언급했다.

예비망자의 시간이 마감될 때 저승사자는 백발이 된다. 그러니 회색이 됐다는 건.. 실질적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설령 이율이가 눈치챘다 해도 저승사자인 나는 끝까지 모르쇠 해야 한다. 우린 서로 모르는 체하며 서로를 속이겠지.


“락스타, 가능하다면 말이야.”

“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줄 수 있어?”

“왜,”

“나한테 락스타는 그 모습이니까. 힘든 일이야? 잠깐 그 선도부 놈한테 눈속임하려고 그랬다며.”

“어렵지 않아. 어차피 선도부 놈한테 들켰는데 뭐.”


나는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붉은 노을빛 머리칼이 길게 흘러내리고 그물스타킹에 미니스커트, 라이더 재킷, 웨스턴 부츠... 처음 이율이를 대면 했을 때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붉은 노을빛 사자머리. 그래, 이제야 너답다.”


뭘 확인하고 싶었구나. 이율이가 눈을 반짝이며 내 머리칼을 봤다. 그 순간 붉은 노을빛 머리가 연핑크 머리로 바래졌다. 순간적인 변모에 이율이가 자신의 확신을 더 굳히는 듯했다.


“하하, 걸그룹이 됐네? 신경 쓰지 마.”

“신경...? 내가 신경 쓸 일이 있나 보다?!”


으이그... 내가 또 빌미를 줬네, 줬어.


“저기, 송기후 나와있다. 빨리 가. 빨리.”


송기후가 이율이를 발견하고 달려오는 통에 우리의 대화는 멈췄다. 송기후를 바라보는 이율이의 표정이 한가득 빛났다. 저 아름다운 커플에게도 조만간 커다란 싱크홀이 생기겠지.... 눈치 없이 100% 백발이 되어 버릴 내가 벌써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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