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타처럼 죽고 싶어 21

락스타... 너처럼 죽고 싶어

by 햇빛투게더


“이 근처에 핫플 포장마차 있는 거 알아?”

“술 잘 못해. 수면제로 가끔 마시긴 하지만... 안주발은 자신 있어.”


우리가 향한 포장마차는 또래들로 가득했다.


“엄마가 막 부담 주지 않았어?”

“아니, 전혀. 어쩌면 내가 부담드렸을 수도.”

“응?”

“결혼까지 생각하냐고 하셔서...”

“어휴, 내 그럴 줄 알았다. 미안해.”

“어머니 입장에선 젤 궁금하시겠지. 결혼식 날짜만 알려달라시대. 엄청 쿨하셔.”

“그래서, 뭐랬어?”

“그래서...”

“그래서?”

“솔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내 상황.”

“어?”

“미안해, 기후 씨랑 상의했어야 하는데...”

“.........”

“다음 생이 있다면 꼭 어머니 가족이 되겠다고.”

“........”

“나 사고 친 거지?”

“아냐. 두 사람... 힘들었겠다.”

“어머니가 꽉 안아주셨어. 그래서 나 충전완료 100%.”

“율이 씨 이사 왔을 때 고백해 버릴걸. 시간 아까워.”

“그러게, 그때 말이라도 걸어주지. 안 튕기고 바로 오케이 했을 텐데... 시간 아까워.”


기후는 새우를 살뜰히 까서 내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나, 율이 씨 패드 봤어. 그림 궁금해서.”

“뭐야.. 훔쳐봤어?”

“훔쳐보긴, 당당히 펼쳐봄. 비번도 없두만.”

“창피해..”

“많이도 그렸더라. 내가 이율이 24시간 보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 그렸지?

내가 잘 때 꼭 끌어안고, 아침에 눈 뜨면 그대로 있었는데.. 이상하다..”

“혹시 그것도 봤어?”

“맨 뒤쪽에 있는 버킷리스트 그림?!”

“봤네, 봤어...”


그 그림이란, 화면 가득 양동이를 그려 넣고 그 안에 10개의 문장을 글로 썼었다. 의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직후, 그 밤.


“사실 복수리스트에 가깝지.”

“몇 개나 클리어했어?”

“서대표한테는 하고 싶은 말 다 했구... 그 아들녀석 꿀밤 한 대 먹이고 싶었는데 걔가 제일 아끼는 막대사탕을 줬어. 그래서 용서해 주기로.”

“시골집 가기 전에 몇 개라도 클리어하자.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다 적어놔.”






소주 딱 한 잔 마셨는데 핑 돌았다. 송기후가 계산을 치르는 동안 포장마차 앞에서 밤공기를 쐬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이율이.”


목소리 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섰다. 설마 엑스 남친 그 새끼?! 나는 서슬 퍼런 눈으로 돌아섰다. 역시나 소름 끼치는 그 인간이 허세 가득 서있다. 이래서 핫플이 싫다. 개나 소나 다 얼쩡거리니까.


“혹시나 했는데 맞네. 잘 지냈어?”


나를 만나는 동안 양다리 십다리를 걸었던 그 새끼는 느물거리며 내 위아래를 훑었다.


“와... 근데 너 많이 달라졌다?! 이렇게 섹시했던가.”


그 놈의 개소리에 풉.. 하는 헛웃음이 났다. 한때는 저 새끼의 ‘원 오브 뎀’에 불과했던 나였다. 그럼에도 ‘원탑’이 되지 못해 괴로웠던 나였다. 먹고 죽을래도 없었던 자존감을 전량 상실했던 나의 흑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쳤다.


“넌, 여전하구나?”

“어?”

“사람 위아래로 훑어보는 거. 그거 되게 매너 없는 거야. 허긴, 매너가 있으면 장종철이 아니지.”


그때 송기후가 다가왔다.


“율이 씨.”


그의 음성은 신기했다. 나에 대한 포근함과 낯선 이에 대한 날 선 경계심이 그 한마디에 다 드러났다. 송기후 목소리에 돌어본 장종철이가 떫떠름해졌다.


“아는 분이셔?”


언제나처럼 송기후는 나를 보호하듯 막아섰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남친의 살뜰한 모션을 고까운 듯 보고 있는 장종철이다.


“나한테 라이터 있냐고 묻네. 가자.”


그건, 장종철이가 내게 빈번히 했던 말이다. 집에서고 어디에서 만나든 수시로 ‘라이터 없냐?’ 물었던 놈이다. 비흡연자인걸 뻔히 알면서. 내가 저놈을 만나면서 썼던 돈 중에서 제일 아까웠던 건 라이터 1000원이었다. 매번 내게서 그 물건을 찾으니 구비해 둔 멍청한 나였으니까.

사랑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거, 원하는 게 뭔지 한번에 알아채는 능력이다. 그러니 어떻게 능력자 송기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그래서 송기후 곁을 떠나지 않겠다. 나는 내가 눈감는 순간까지 그가 원하는 거, 필요한 걸 채워주고 갈 작정이니까.

송기후는 나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며 돌아섰다. 남겨진 장종철의 표정이 어땠는지 내 알 바임?


“나, 버킷리스트 하나 더 채운 거 같아.”

“응?”

“그런 게 있어.”


송기후 같은 근사한 연인에게 근사한 사랑받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 그 시원한 강력펀치의 맛을 송기후는 모른다. 장종철은 핫플 포장마차 일각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자기와 만났던 쭈구리 이율이가 아니라 사랑받아 빛을 난반사시키는 이율이의 모습에. 그러니 아쉬워 따라 나왔겠지.

버킷리스트 따위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으스대며 클리어하지 않아도 이미 난 다 가졌으니까.


“버킷리스트 다시 쓸래.”

“어떻게?”

“복수는 얼추 됐고, 세상 쿨한 빠빠이로.”

“인사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

“시골집 근처에 초딩 때 담임 선생님 댁 가보려고. 계시려나?”

“가보자. 곧 시골집 갈 거니까.”


달빛이 아름답게 우리 앞을 비춰주었다.







그건 꿈이었을까. 분명 집에 돌아온 후 송기후가 차를 끓이는 동안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까무룩 잠이 든 모양이다.


근데 여긴 어디지...? 눈을 비비고 주변을 돌아보는데 어째 좀 으스스하다. 밤은 밤인데 키 높은 나무들이 하늘천정을 막아 이중삼중으로 어둠이 갇힌 느낌. 그 곳에 서있는 것만으로 고립감이 느껴졌다.

그때 내 팔을 잡아다니는 누군가의 완력에 소름이 돋았다.


“까약...!!”


질색팔색 팔을 걷어내는데...


“오버 좀 하지마. 나야, 나.”


고개 들어 보니 걸그룹 핑크색의 락스타가 서있었다.


“락스타.. 여기 어디야? 서... 설마....나.. 지금... 가는 거야?”

“또또.. 오버한다.”


락스타가 있음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나였다. 그때 검은 나무숲을 뚫고 들려오는 음악소리. 아니 풍악소리라 해야 하나. 가야금 농현 소리가 현란하게 들렸다.


“여기 왔을 때부터 저 소리가 들렸어. 누가 나를 부르는 거처럼..”

“우리 락스타 바빴구나. 나 대신 앓아주랴... 가야금 소리 따라다니랴...”

“나 여기에 살았었나?”

“과거에 사람이었던 건 맞아?”

“선도부 놈이 그랬어. 과거에 인간이었던 요원이 불량품이라 골치라고. 그러니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

“가보자. 뭐가 나오는지. 가야금 소리가 점점 더 커지면 가깝다는 거잖아.”

“새가슴 이율이 많이 바뀌었네.”

“이유가 있어. 나, 결심한 게 있거든.”

“결심?”

“락스타 너처럼 죽고 싶어.”

“뭔 소리야.”

“너처럼 당당하고 개멋지게 죽음을 맞이할 거야.”

“허이구... 비장미 쩌네.”

“니 탓인지 니 덕인지 덜 무서워졌어. 죽는다는 게.”

“막상 닥치면 그 말 후회할 거다.”

“니가 데려다줄 거잖아. 그럼 난 괜찮을 것도 같고.”


아직은 그 공포가 닥치지 않았다. 어쩐지 나는 꿈이라는 안전울타리를 믿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율이. 거기 서, 지지배야. 왜 저렇게 깨춤이야. 어울리지도 않게.”


keyword
이전 17화락스타처럼 죽고 싶어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