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타처럼 죽고 싶어 23

검은 숲

by 햇빛투게더

나, 송기후


그녀가 내 눈앞에서 쓰러졌을 때 나는 무기력에 무너져내렸다.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울며불며 병원에 옮기는 일이라니.. 소도시의 손바닥만 한 병원에서는 율이 씨가 다니던 병원의 주치의와 의견을 나누었다. 수액을 투약하는 것 외에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고 했다. 율이 씨가 자조적으로 말했던 것처럼-


코마 상태의 율이 씨는 긴 여행을 마친 후 2~3일 푹 쉬는 것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다시 그 예쁜 눈망울을 보여주길 기다리기만 벌써 일주일째.

허나, 체념하지도 기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오르골 태엽 열심히 감고 율이 씨가 소리내주길 보채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율이 씨가 그동안 그림을 그려왔던 패드를 펼쳐보았다. 새로 그린 그림 몇 개가 추가되었다. 맨 앞의 그림은 [노을], 우리 둘이 노을을 배경으로 마주 선 모습이었다. 율이 씨의 그림체는 사실 묘사보다는 멋스러운 그래픽 스타일... 언젠가 꼭 책으로 만들어줘야지 다짐했다.


두 번째 그림은 [미인]이라는 제목이다. 열어보니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가 보시면 엄청 좋아하시겠다.


마지막 그림은 [락스타]. 락스타? 그러고 보니 잠꼬대를 할 때나 악몽에서 깨어나 물기 가득한 눈망울로 불렀던 그 이름. 이름...? 일까. 파일을 열어보니 그림 속의 락스타는 구면이다. 서대표가 난리 칠 때 히어로처럼 나타난 붉은 사자머리 그녀. 그러고 보니 클럽에도 같이 왔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 율이씨한테 힘이 되어 줄텐데..


“아들.”


엄마가 병실로 들어왔다. 며칠 전 안부전화를 했던 엄마였다. 결국 내가 울컥하는 바람에 걱정을 시켜드렸나 보다. 죽이 든 텀블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다. 엄마는 사경을 헤매는 율이 씨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울지 마, 엄마. 율이 씨 들어. 나가자.”




복도 벤치에서 엄마는 핼쑥해진 내 얼굴을 연신 어르며 속상해하셨다.


“뭘 여기까지 와.”

“율이는 일주일째 못 깨어난다며... 근데 아들, 서울로 데려가자. 외삼촌 병원에 전화할게.”

“율이 씨가 시골집에 있고 싶대. 병원에서도 별도리 없대고..”

“속상해, 정말..”

“엄마, 그냥 올라가세요. 언제 깨어날지 몰라.”

“싫어, 얘~ 나도 율이 깨어나는 거 볼 거야. 근처 호텔 잡았어. 너도 가서 좀 씻어. 나랑 교대하자고.”

”장거리 운전했잖아. 오늘은 호텔 가서 쉬고 내일 와. 응? 율이 씨 깨어나면 바로 전화할게.”

“알았어, 얘~”


엄마는 침울한 얼굴로 일어섰다.


“엄마.”

“응?”

“고마워.”

“뭐가.”

“다른 엄마 같았으면 당장 아들 끌고 갔을 거잖아.”

“나도 너 상처받는 거 싫지. 근데 둘이 사랑하잖아. 그걸 누가... 무슨 권리로... 끊어내. 금쪽같은 내 새끼 안그래도 힘든 애한테 피멍 하나 더 얹어?”

“....”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만 언제나 니 편이야. 잘 이겨내 보자, 우리.”


율이 씨는 지금 어디쯤을 헤매고 있을까.







무의식의 검은 숲


연못도, 가야금 소리도, 락스타도 없다.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인 그 검은 숲-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최악의 공포를 겪으며 위성처럼 겉돌고 있다. 이런 게 죽음의 바이브일까.

송기후에게 짧은 안녕도 없이 나.. 이렇게 떠나는 걸까. 그렇다면 락스타는 와줘야지.


“락스타아!!!!!!!!!!!!!”


검은 나무가 하늘 천정을 덮어버린 그곳에서 내 목소리만 메아리쳐 되돌아왔다.


깨어나야 해.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이건 분명 일시적인 현상일 거야. 내 육신이 나약해진 결과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근거는 단 하나야. 락스타의 머리색. 아직은 연핑크고, 내 예상이 맞다면 락스타는 백발로 데리러 올 거야. 그리고 송기후와의 라스트씬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나 대신 통증을 대신하던 애야. 나 홀로 여기에 내동댕이쳐둘 리가 없잖아.

송기후에게 사랑한단 말도 하지 못했어. 락스타에게 내게 나타나줘서 고맙다고 하지 못했어. 고모에게 그리울 거라고 하지도 못했어. 외삼촌에겐 아프단 얘기조차 못했다구.

삶의 의지가 넘쳐흐르다가도 이럴 바에야 차라리 심장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이 극과 극으로 뻗쳐나갔다.

그때 내 옆을 휙 스쳐가는 소녀들. 두 팔에 소름이 돋았다. 비단옷에 혈흔이 가득한 가야금 소녀, 그리고 그 소녀와 똑같은 용모의 백발 저승소녀... 나는 다급히 그녀들을 막아섰다.


“저기요. 잠시만요.”


그러나 그녀들은 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듯, 나를 통과해 지나갔다.


“저승사자가 너랑 똑같은 얼굴이라 놀랐을 거야.”

“어머니는? 아버지는? 내 친족들은..?”

“다 각자의 길로 가고 있어.”

“두 번 다시 볼 수 없어?”

“응, 너는 내가 안내해 줄 거야. 너무 겁먹지 마.”


분명, 락스타가 그랬다. 저승사자가 망자 얼굴로 나타나는 게 최근 시스템이라고... 저들의 시스템에서 천년 정도는 최근이란 말인가.


나는 계속 그녀들을 뒤따라갔다.


“내가 안보이냐구요!!!!”


그런가 보다. 다시 나는 존재감 없는 쭈그리가 됐나 보다. 송기후가 내 몸 세포세포에 심어준 빛이 사라지고 없나보다. 나는 공연히 부아가 치밀어 그녀들 뒤를 따라 달렸다.


“야!!!!!!!!!!!!!!!!”


이 검은 숲에서 갇혀 혼자 늙어 죽든, 그 살수에게 칼 맞든, 이대로 깨어나지 못해 송기후를 보지 못하고 죽든 결과는 같다. 어쨌든 ‘죽는다’는 것.

내가 그녀들을 거의 따라잡을 무렵. 검은 옷에 검은 탈을 쓴 살 수가 지키고 서있다. 나는 너무 놀라 급브레이크 밟았다.

그녀들 앞을 막아선 살수가 서서히 탈을 벗었다. 드러난 그의 얼굴은....

.

.

.

.

락스타를 괴롭히던 선도부 그놈이다.


“2389976호.”


그가 막아선 건, 백발의 저승사자가 아니라 가야금 소녀였다. 공포에 질린 가야금 소녀는 백발소녀 뒤에 숨었다.

저 선도부 놈이 그동안 덫을 놓고 기다렸던 거구나. 락스타의 기원을 찾아내길, 내가 코마 상태에 빠지길...


선도부 놈은 서슬 퍼런 장검을 빼들었다. 어쨌거나 락스타를 지켜야 해. 나는 달려가 가야금 소녀 앞을 막았다. 소녀들과 달리 선도부 놈은 나를 알아봤다. 무섭게 다가오는 선도부.


“넌, 겁대가리가 없어? 그냥 죽으면 끝이야? 뒷감당할 수 있어?”


서서히 다가오는 그의 기세에 밀려 뒷걸음질 쳤다.


정신 차려, 이율이. 운 좋게 내가 깨어나면 상황종료야. 설령 내가 죽는다면 내 무의식도 파괴될 테니 넌 다른 인간의 무의식을 찾아야 할 거야. 당분간이나마 락스타 지킬 수 있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이건 내 꿈이고 내 무의식도 내 공간이야. 당신은 객이고, 주인은 나라고. 나!!”

“이율이!! 하지 마. 미쳤어?”


락스타의 목소리!! 내 눈앞에 연핑크 사자머리 락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와 선도부와 그 중간 위치에 나를 바라보며... 가야금 소녀가 내 뒤에 있으니 선도부는 세명의 여자를 단번에 해할 수 있다. 너무 위험한 위치.


“비켜, 락스타. 위험해.”

“으흐흐흐흐...”


선도부는 소름 끼치게 웃으며 서슬 퍼런 장검을 휘두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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