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바이브
"락스타, 나 왜 안 아파?"
분명 선글라스 위로 락스타의 눈썹이 움찔했다. 그러나 락스타는 한동안 말을 아꼈다.
"락스타. 묻잖아. 대답해."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른다? 네가 모르는 게 어딨어?!"
"그래서, 그게 불만이다? 본부에 청탁 넣어줘? 죽기 직전에 안 아파서 안달 난 애 있는데 합당한 고통을 하사해주시죠, 하냐고."
"말꼬리 돌리지 말고."
"집에 가. 가서 얘기해. 너 지금 여기서 급발진하면 미친년 되기 딱 좋아. 난 내 모습 드러낼 생각 1도 없는데 너 혼자 귀신 들린 사람처럼 떠들어대면.... 볼만하겠네."
락스타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가는데
"타앙!!!!!!!!"
지금 내가 들은 게 총소리 맞나? 그러나 주변은 일상적인 소음 뿐, 큰 소란은 없었다. 정작 흐름이 깨진 건 락스타다. 몇걸음 가는 듯 하더니 무릎 째 털썩 주저앉는다. 설마 하며 락스타에게 달려갔다. 락스타의 관자놀이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락스타!! 정신 차려! 락스타!"
좀 전의 총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들은 정작 나의 꽥소리에 술렁였다. 그들의 눈에 락스타가 보일 리 없으니 구경거리라도 난 듯 나를 힐끗거렸다. 허공에 버둥대며 락스타를 어르는 이상한 동작을 하는 나를 어찌 생각할지... 허나 상관없다. 나는 락스타를 부축하며 걸었다.
"총소리 들었어, 누구야."
"제발, 조용히 좀 해."
락스타는 가까스로 말했다.
"좀 떨어져 줄래?"
"너 많이 다쳤어, 병원이든 무당한테든 가자, 어?!"
그때... 알 수 없는 어떤 괴력이 나를 넘어뜨렸다. 나는 무기력하게 뒤로 꽈당 밀리고 말았다. 아무리 눈을 비벼도 락스타 외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괴력은 순식간에 락스타를 천장 높이까지 끌어올렸다.
"락스타... 안돼!!"
층고 높은 천장에는 척추가 뒤 쪽으로 둥글게 과신전 된 락스타가 보였다. 사지는 기능을 잃은 듯 축 늘어졌다.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것처럼 락스타는 위태로워 보였다. 도대체 뭐야, 락스타를 괴롭히는 괴력의 정체가 뭐냐고..?!!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피투성이가 됐던 락스타가 생각났다. 저승의 일이라고 했어. 저승의 일.
아슬아슬한 마음 졸이며 위태로운 락스타를 목이 꺾어져라 올려다보는데 그 순간 락스타가 출렁 움직이며 뚝 떨어지다가 어떤 지점에서 멈춰 매달려있다. 이 공간에서 경악하는 이는 나뿐이다. 대부분 갈 길을 가거나 내 주변의 몇 명은 내 시선을 따라 천정을 보고 나를 번갈아 보다가 쯔쯔... 하며 가버렸다.
바로 그때 락스타가 추락한다. 자이로드롭처럼 순식간에 뚝 떨어지더니 그녀가 나를 덮었다.
"꺄악!!!!!!!"
그리곤 블랙아웃..
마치 죽음, 바이브...
소리는 아득하고 시야는 뿌옇다. 두 눈을 껌뻑껌뻑 하는데 한쪽 손에 온기가 느껴졌다. 락스타...? 반대쪽 손으로 눈을 비비며 내 눈앞의 따스한 온기의 주인공을 찾았다.
"율이 씨, 괜찮아요?"
송기후다. 그의 목소리가 인식되니 시야가 서서히 걷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율이 씨한테 전화했는데 간호사가 받았어요. 놀래서 달려왔고.. "
"........"
"27시간이 지났어요. 율이 씨."
조만간 송기후에게 '나, 이사 가는 거 아니고 죽는 거다.' 당당히 안녕 빠빠이 하려 했다. 모두에게 죽음은 공평하고 순서만 다른 거니까... 근데 생각해 보니 그건 하루살이 케이스다. 그 순서라는 게 50년, 60년 차라면 최소 몇 년은 우울할 텐데 잠깐 썸 타다 사라져 버린 나쁜 년이 나을 수도 있겠다.
그렁이는 송기후의 눈망울에서 내가 보이자 정신이 번쩍 났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슬픔이 된다는 건 이런 거구나... 고맙고 안온한 대신 '심적 부담금'이 청구되는구나... 그래서 영화나 소설을 보면 시한부의 주인공들이 끝내 연인에게 비밀로 하는구나.. 미움이 슬픔보다 종료시점이 빠르기 때문에...
"집에 가고 싶어요."
"깨어나면 의사 선생님이 보자고 하셨는데."
송기후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나는 의사에게 내 병을 알고 있고 다니는 병원이 있다고 했다. 인간미 없어 보이는 의사는 말했다. 응급요원으로부터 이야길 들었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구경꾼 누군가가 응급요원에게 나의 영상을 보여줬다며 혹시 이런 증세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물었다.
락스타가 나타난 이후겠지. 락스타가 현신하지 않는 한 타인들에게는 귀신과 소통하는 듯 보였을 테고... 의사의 관점에서는 망상환자였겠지. 난 그냥 '얼마 안 됐다.'라고 했다. 락스타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말을 믿지도 않을 테니.
그나저나 락스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상한 상실감이 들었다. 내가 본 기괴한 장면들, 락스타에게 총을 쏜 그 자들은 왜 락스타를 공격했을까.
택시 안에서 난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송기후는 내 몸을 기울여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이 사람에게도 말을 해야겠지? 송기후의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허튼 내 욕심에 관하여...
며칠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락스타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고 락스타의 빈자리는 송기후로 채워졌으며 송기후가 얼마나 보드랍고 속 깊은 사람인지 더 느끼게 되었고 송기후가 일하러 간 동안 나는 엄마가 겪었을 통증에 내 몸을 치고 방바닥을 기었다. 엄마... 어떻게 버틴 거야..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이 고통에서 엄마는 나를 떠올리며 견디었겠지.
락스타가 보고 싶다. 언제라도 껄렁껄렁한 걸음으로 문을 통과해 올 것만 같았다. "어이, 이율이~ 이 맹추야~" 하면서 되도 않는 연애코치를 해주던 그 락스타가.. 어디 있는 거야. 보고 싶다고... 네가 있으면 좀 덜 아플 거 같아.. 저승사자가 뭐 이래. 내가 이 세상 뜰 때까지 함께 해줘야지. 직무유기야..
창 밖의 햇살은 밤하늘로 바뀌었고 송기후가 벨을 눌렀지만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검은 방, 별빛조명 아래서 그저 자는 척하며 그를 보냈다. 송기후는 짧은 문자를 남겼다.
[율이 씨, 컨디션 많이 안 좋구나.. 죽 사 왔어요. 문 앞에 있으니까 꼭 먹어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 주고요.]
참 이상한 일이다. 락스타와 함께 있을 땐 송기후 생각만 했다. 그러나 송기후와 있을 땐 락스타 생각이 났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건 그런 건가보다. 내가 점유한 그의 시간, 그의 시선, 그의 포근함에 배가 불러 또 다른 애정을 쏟아 부을 다른 대상을 찾는 것인가.
어쩐지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송기후의 일상까지 망쳤구나. 알량한 내 욕심에, 몇 년쯤 연애할 수 있는 사람처럼 송기후에게 설렜고 굽이굽이 미래가 펼쳐질 사람처럼 그에게 다가갔다. 조만간 송기후에게 용서를 빌어야겠다. 당신과 나눌 오로라 빛 미래 따윈 없다고. 아무래도 나.. 당신을 농락한 것 같다고...
눈물이 귓속으로 들어갔는지 소리가 아득해졌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데 검은 방, 별빛조명 아래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런데 그 실루엣은 요란뻑적지근 했던 락스타의 것이 아니었다.
"누구.. 세요?"
서서히 몸을 돌리는 그녀는 나의 수의, 나의 잔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뱅헤어의 이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