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타처럼 죽고 싶어 08

이율이 넌 짜져 있어, 이번 화는 내 꺼야.

by 햇빛투게더


내 이름은 2389976호


나의 오피셜 명칭은 2389976호다. 저승사자로서 인간계의 예비망자 발생 시 바로 배치된다. 내가 과거에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 인간이었는지, 야생동물이었는지, 반려동물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이런 미션을 수행하는 점액질 괴물인지, 태어난 지 10년 미만인지 중세이전인지 알 수가 없다. 거울에 비춰본 최초의 내 모습은 젤리 재질의 픽토그램이었다. 머리와 몸통, 팔, 다리로 그려진 화장실 앞 표식. 그래, 그거.


사자로서의 미션을 부여받으면 전 세계 어디든 출동한다. 해당지역의 언어와 예비망자의 기억이 이식되며 최근 룰개정으로 예비망자의 얼굴로 찾아가는 서비스~


직전 회차의 예비망자 94세 할배는 미국의 부촌 대저택에서 살았다. 그를 케어하는 인원은 파트별로 대략 10명 정도. 노인은 하루 한 번 꼭 뼈 없는 바비큐 소스 치킨을 먹었다.

잠깐 여기서 주목!! 그 장면들은 내 머릿속에 있으면 안 된다. 예비망자가 영면에 들면 사자 또한 세탁머신에 강금되어 기억을 세탁당하기 때문이다. 세탁머신에서 망자의 모든 기억과 이승의 부산물이 빨려나간 후 완벽한 제로 상태가 된다. 그 후 예비망자가 확정될 때까지 무의식 상태로 대기 탄다. 근데 왜 난 그 할배를 기억하고 있을까. 할배뿐 아니라 그 전회차도...... 기술적 오류, 혹은 누군가의 의도로 탄생한 돌연변이 저승사자려나..


내 비밀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알 수 있을 수도... 아, 7화 말미에 나타나 나를 개죽사발로 만든 선도부 그 녀석을 떠올리시는가. 글쎄 그가 경고한 '인간사에 개입하지 마.'라는 것은 사자의 룰 중에 기본 중의 기본이라 그자가 내 비밀을 안다고 확신할 수 없다. 암튼 내가 돌출행동을 일삼는 것은 내 비밀에 접근할만한 누군가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그가 하는 질문과 위협으로 알 수 있겠지.


며칠 전 본부의 지령으로 이율이를 접수했다. 국적은 대한민국, 주소지는 서울, 스물아홉 살의 미혼여성. 직업은 디자이너. 최근 작업물은 한 락밴드의 30주년 디자인. 락밴드? 락밴드라...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수많은 락음악을 듣고 이율이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 락아티스트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픽했다. 이율이네 집 앞에서 그간 연마한 락음악과 동영상들을 구현해 내며 이율이의 관심을 끌었다. 내가 하는 몸짓, 연주, 음악은 이율이만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신하기 전까지 일반인들은 나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나는 대대적인 현신을 감행했고 본부의 제재를 당할 거라 예상은 했다. 나의 의도적인 돌출행동 플러스 이율이 그 맹추가 서대표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도 싫었다.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 애는 더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난 이율이가 가슴 벅찬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고퀄여생을 만들어줄 것이다.


이율이는 가끔 나를 찾는다. 저승사자가 왜 이렇게 바쁘냐고, 다른 예비망자도 관리하냐고. 그때 난 어디서 뭐 하냐고?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리 할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후후후.


이것만 알려주겠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이율이와 단절된다. 이율이의 생각과 속마음을 읽을 수 없단 소리지. 이제부턴 송기후와 이율이가 단 둘이 있는 시간만큼은 기꺼이 분리해 주겠어. 맘 놓고 달달허게 할 일들 하렴. [락스타, 눈감아] 할 필요 없게. 지금 한참 꿀떨어질테니 분리술을 시전하려는 찰나.


띡띡띡띡띡띡~

뭐야, 이 쌩뚱맞은 도어락 해제소리는. 큰 결심 해준 보람도 없이 이율이 벌써 들어와? 어휴, 맹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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