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워서 세상이 미웠어
익숙함은 위대하다. 저승사자와 교감하며 한 공간에서 잠들 수 있다니. 첫 대면의 순간은 상상 이상의 공포였지만 지금은 절친 재질이랄까.
예비망자의 구간에 들면 물리적인 시간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최단기간 나는 락스타에게 익숙해졌다. 락스타에게 익숙해진다는 건 죽음에 익숙해진다는 것. 숨이 멎는 그 순간에도 웃으며 영면할 수 있으려나.
락스타는 창가에 앉아있고 나는 평소처럼 침대 위다. 불 꺼진 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친구와 함께 온 여행처럼-
“하고 싶은 거 없어?”
“일단 하나는 미션 클리어.”
“서대표 그 여자?!”
“응... 하고 싶었던 말은 얼추 했던 거 같아.”
“약해약해~ 어디 한 군데 부러뜨려줘?”
“대표님이 더 이상 선을 넘지 않는다면 굳이..”
“선을 넘어오면 전쟁이야?”
“응. 이율이 옆엔 락스타가 있다며.”
“그러취.”
“근데 서대표는 어쩌다 들켰을까.”
“글쎄다, 니 영혼만 카피 돼서 다른 사람은 몰라. 네가 있는 상황에서만 유추를 하건 꿰맞추건 하지.”
“저승사자가 너무 무능력하다. 전지전능해야지.”
“.............”
한동안 락스타는 말이 없었다. 삐친 건가.. 나는 반쯤 몸을 일으켜 락스타를 바라보았다. 창틀에 몸을 기댄 실루엣만 보인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이 달빛을 받아 오묘한 색을 띠었다.
“자요?”
“내가 하찮은 인간인 줄 알아? 달 떴다고 자게.”
“근데 왜 말을 안 해.”
“뭐 하고 싶은 일 없어? 어딜 가고 싶다거나.”
“생각해 볼게.”
“고약하게 굴었던 인간 많잖아.”
“난... 그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었나 봐. 엄마도 버린 아이였는데 뭐. 남들이 만만하게 보는 거 당연하다고...”
“그럼 엄마한테 가자. 기일이 이 즈음이잖아?”
“..........”
“가서 따지기라도 하라고.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개죽사발 됐다고.”
“내일 송기후 씨 만나기로 했어.”
“내일.. 우리, 우리.. 내일?”
락스타는 놀리듯 까르르 웃어댔다. 나는 화끈거려 베개를 집어던졌다.
“그건 반칙이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염탐할 건가?”
“야, 보이는 걸 어떡해. 보인다고. 막 보여.”
“보지 마요. 눈 감아. 예비망자는 뭐 프라이버시 없는 줄 알아?”
“내 눈 감기고 뭔 짓을 하려고.”
“고백할 거야.”
락스타는 피식 웃었다.
“퍽이나.”
“진짜라고.”
오늘은 송기후의 노래를 듣고 초콜릿 케이크를 먹는 날이다. 아직 죽음의 블랙아웃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나의 마지막 만찬]은 자동연장.
노래할 땐 어떤 목소리일까. 오늘은 대학생처럼 입어야겠다. 송기후와 시밀러룩은 어떨까. 청바지에 스트라이프 셔츠를 걸쳐보다가 의도가 너무 투명해서 살짝 내려놓았다. 그냥 나답게 입자. 내가 가장 많이 입었던 옷으로.
“락스타, 이 옷은 어때? 너무 조신해?”
원룸은 고요하다. 락스타는 도대체 또 어딜 간 거야. 나 말고 관리하는 예비망자가 또 있는 게 분명해. 저승사자가 왜 이렇게 외근이 많아. 나만 관리하는 거 아닌가... 그녀의 분주함이 의아할 무렵 서대표의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율이 씨 외삼촌분이 왔었습니다. 주차문제로 내려갔었는데 그분이 조카를 만나러 왔다 하더군요.]
그리곤 막내 삼촌이 남긴 메모를 사진으로 보내주었다.
[차민호. 보스턴.. 전화번호, 이메일 블라블라블라..]
아직까지 엄마가 미운 난 외삼촌의 존재가 달갑지 않았다. 락스타의 말대로 20년 간 안 찾았으면, 못 만났으면 남이나 진배없다. 죽기 전에 떠올릴 인물 하나 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다 미웠다. 엄마가 미우니 그 피가 다 밉다.
도심 외곽의 납골당엔 엄마의 생년월일과 임종일자가 적힌 단지가 놓여있었다. 고모의 말대로 엄마는 나와 헤어졌던 그해 말쯤 돌아가셨다. 그래도 그 몇 달 동안 뭐라도 했어야지. 유괴라도 했어야지. 왜 그렇게 무력했어. 무력한 건 죄악이야. 바닥에 쭈그리고 한참을 울고 있는데 낯선 발걸음이 다가왔다.
"율이니?"
낮고 부드러운 남자의 음성. 손바닥으로 대충 수습하고 돌아보니 중년의 신사가 몸을 낮춰 시선을 맞췄다.
"누구... 세요?"
누구세요,라고 했지만 이미 나도 알고 있다. 막내 외삼촌이라는 것을. 외가 식구들은 엄마의 죽음 이후 징글징글한 한국을 떠났다고 했다. 특히 친할머니의 폭언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아빠의 죽음을, 겨우겨우 연명하는 엄마의 탓으로 돌리는 통에 모두가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내게서 엄마를 떠올렸듯이 외가에서도 나란 존재는 친가의 꼴 보기 싫은 작은 분신이었으리라.
"누나가 끝까지 하려던 일이 있었어."
나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양육권 되찾아오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몰랐던, 알고자 하지 않았던 진실의 사각지대.
"헌데 병세가 깊어 끝내 이루지 못했지. 네 할머니가 말이 통하는 분도 아니잖니. 누나가 싸우기엔 기력도 없었고 시간이 촉박했다."
"........."
"누나는 절대 널 포기한 게 아니야. 그것 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막내 외삼촌은 엄마가 준비했던 양육권 관련 소송문서들을 건네줬다. 삼촌은 20년 간 기일 즈음 몇 번 귀국을 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에서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내가 와줄까 하고...
"참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는데.."
막내 외삼촌은 납골단지 옆 액자를 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 그리고 그들을 반반 닮은 여자아이의 행복한 한때가 멈춰있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품 안의 딸도 잃고 꿈도 희망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던 한 여인의 비극.
맞다, 차현진 씨와 이진환 씨는 서로 사랑한 죄 밖에 없다. 병약했던 건 엄마 탓이 아니고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다 비명횡사한 게 어찌 아빠의 탓이겠는가.
그 사랑하던 두 남녀는 노모의 폭압 앞에 죽어서도 함께 있지 못하고 떨어져 있다. 양육권을 지키려 했던 엄마의 진실에, 휘발해 버렸던 나의 자존감이 조금씩 차올랐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서, 보호받지 못해서 쪼그라든 나의 심장이 왠지 다시 팽팽하게 펴지는 기분이었다.
외삼촌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삼촌이 말했다.
"율이야, 삼촌이랑 미국 갈래?"
“아니요, 전 여기가 좋아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뭐든.”
“우리 세 식구 같이 있게 해 주세요. 물론 제가 그렇게 할 건데요. 혹시 못하게 되면...”
“응?”
아마도 삼촌은 이장에 필요한 비용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의 마지막 미션은 선명하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우린 한 부스에서 영면할 것이다.
클럽 안은 송기후팀의 모던락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요리조리 빈틈을 찾아 맨 앞까지 갔다. 보컬이형의 노래에 맞춰 무대 앞사람들은 둠칫둠칫 몸을 흔들어댔다. 송기후는 나를 알아보고 살짝 미소 지었다.
"이번 곡은 우리 밴드의 비주얼멤버 송기후가 부릅니다. 제목은, 섬머 브리즈."
사람들의 환호가 터졌다.
"잠깐, 나보다 박수소리 더 크잖아. 이럼 빈정 상하지."
사람들이 송기후를 연호했다. 보컬이 형은 피식 웃으며 센터 자리를 떠났다. 핀조명이 송기후를 비추자 사람들은 고요히 집중했다. 모던락을 주로 하는 송기후 팀의 노래들과는 장르부터 달랐다.
대강의 가사는 이러했다.
섬머 브리즈가 불어올 때 처음 만난 그녀는 노란 튤립처럼 수줍게 울고 있었다.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인사뿐, 그녀가 경계를 풀 때까지 지켜보기만 했다. 열 달 가까이 지겹게 눈인사, 심장이 쿵쾅대도 그저 눈인사.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생겼고 마침내 나는 그녀를 내 공간으로 초대했다. 나는 우리가 되고 나의 오늘은 우리의 내일이 된다. 섬머 브리즈가 다시 불어오기 전에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할 것이다. 어쩌면 진작에 눈치챘을 나의 느린 마음을... 등등
이곳으로 이사하던 날 나는 노란 튤립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그걸 송기후가 기억해 준 것이다. 엄마의 기일, 납골당에 가려다 차마 가지 못했다. 엄마가 미워서 그 꽃다발을 버리려 들고나갔다. 그러다 복도에 주저앉아 울었던 기억- 그때 처음 송기후를 보았다. 아마 송기후는 그날의 기억을 가사에 담았던 모양이다.
원하는 사람에게서 완벽한 고백을 받는 것만큼 기적 같은 기적이 또 있을까. 듣는 내내 섬머 브리즈가 불어와 내 머리칼을 일렁였다.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나는 글썽였고 송기후는 짜르르한 눈빛으로 어쩌지 못하고 서있는 나를 담아냈다.
락스타는 그 시각 이율이의 원룸에 있었다. 뭐야, 이율이가 송기후와 초콜릿 케이크를 먹잖아. 이율이, 내 꺼도 사와라. 서로 달달하게 마주 보며 송기후 노래에 대한 얘길 나눈다. 이율이, 어쭈 케이크 없이 빈손으로 나왔어? 가만 안도.
그때, 어떤 괴력이 나타나 락스타를 때려눕힌다. 꺄악...!!!! 락스타는 무차별 공격을 받지만 저항하지 못한다.
[2389976호,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마.]
그 후로도 공격은 계속되었다. 락스타는 대답하지 않고 공격을 감내한다. 침대에 꽂히기도 하고 번쩍 들려 바닥에 패대기 쳐지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락스타의 목을 틀어쥐고 조르기 시작한다. 락스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지다 겨우 풀려난다. 과호흡을 몰아쉬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천정을 바라본다.
"벌써 가버렸네? 망할 놈."
락스타의 머릿속은 여전히 이율이로 채워진다. 송기후와 이율이가 스티커사진을 찍는다. 장난감 상점 앞 기계에서 인형도 뽑는다. 송기후가 펭귄 인형을 뽑아 이율이게 준다.
둘이 골목을 걷는다. 둘의 손등이 아련하게 스친다. 그리곤 멈춰서는 두 사람. 심장이 주거니 받거니 쿵쾅대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포개진다. 그때 선명하게 울리는 이율이의 다급한 마음의 소리.
[락스타, 눈 감아]
"이율이 이 앙큼한 가시내."
락스타는 터진 입술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닦으며 파리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