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타처럼 죽고 싶어 06

맹추의 반격

by 햇빛투게더


뚜걱뚜걱 북소리처럼 울리는 구두소리-

락스타는 히어로물의 주인공처럼 등장했다.


"불륜은 당신 주종목 아닙니까?"


복도엔 수십 개의 눈동자가

락스타의 동선을 따라 일제히 움직였다.

서대표는 의외의 공격수에 당황한 기색이랄까.

두 여자의 살벌한 대결각에 당사자인 나는

뒷전으로 밀렸다.


"락스타, 이.. 건 내 문제.. 야"


또 소심증이 올라와 웅얼거리며 말했다.

락스타는 내 쪽은 보지도 않은 채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에게 입 닫으라는 제스처?

락스타, 이건 아니잖아...


"공동주택에서 일방적으로 소란을 피우면

입주민 죄다 튀어나올 테고

그러면 당신이 떠들어대는 대로

오해하고 손가락질할 게 뻔한데 이런다?!

외도를 들킨 건 너 때문이니 너도 개망신당해봐.

그 심보 아닙니까?"

"넌 뭔데 껴들어?"

"거참, 말꼬리 돌리지 마시죠.

끼어들만하니까 끼어드는 거니까."


드센 락스타를 상대하기 벅찼는지

서대표는 내게 윽박질렀다.


"야, 넌 도대체 뭐라고 떠들고 다니는 거야?"


서대표가 거칠게 나오자

송기후는 슬쩍 몸을 옮겨 보호하듯 내 앞쪽에 섰다.

아, 이게 아닌데...

난 나약한 보호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고.

락스타는 물론 송기후 당신한테 특히 더.


"염치없는 자들의 종특인 건가.

불리하다 싶으면 본류에서 벗어납디다.

이길 재주 없으니 메신저 공격이나 하고.

경곱니다. 더 나가면 다 까발려요?!"

"증거 있으면 까발리든가!"

"디자이너로 채용하고선

그 집 애들까지 갑질하게 만든 거.

불륜남과 남편이 회사주차장에서 마주쳤을 때

이율이 막내 삼촌이라고 뻥친 거.

아무렴 증거도 없이 경고할까."


락스타.. 제발...

결백입증 보다 그간의 흑역사가 더 수치스럽다.

하필 송기후 앞에서...


"그만해!!! 해도 내가 해."


나조차 나의 단호한 말투에 놀랐다.

내 앞을 막아서주던 송기후도 살짝 돌아봤다.

나는 두 주먹 불끈 쥐고 한걸음 한걸음

서대표를 향해 갔다.


"사과하세요.

지금껏 제게 하신 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저한텐 잘못하셨어요. 대표님이 젤 잘 아시구요."

"어디서 따박따박..!"

"후임에겐 이러지 마세요.

야, 너, 쟤 하지 마시고 업무 외 사적인 심부름,

이상한 알리바이 동원도 하지 마시고.

잘 밤에 불러내지 마세요."

"월급 받아 처먹고 그 정도도 못해?"

"뭐라구요?"

"내가 어떻게 일군 회산대?

저딴 거 잘 못 뽑아서.. 이 무슨 꼴이냐고!!"


저딴 거라고 했다.

저딴 거.

기막혀.


"월급 월급 하시는데

내 하루 중 근무시간만큼만 지급하신 거예요.

저요!! 내 24시간, 내 영혼까지

내다 판 거 아닙니다."


찍소리 못했던 직원 아이가

단단한 목소리로 내지르자 많이 놀란 눈치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소리쳤다.


"이제 그만 가주시죠. 남편분 불러드려요?!"

"안돼!!!!!!!"


남편 얘기에 사색이 된 서대표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복도의 갤러리들은 다들 수군거렸다.

그 [안돼]의 의미가 너무도 명백했기에-


락스타는 서대표의 어깨를 잡았다.


"사과하고 가셔야죠. 우리 율이가 원하잖아요."

"이.. 이것들이 왜 자꾸 사과타령이야?

증거 대라고!!"


서대표는 락스타의 손을 거칠게 걷어냈다.


"못 알아들으니 다시 말씀드리죠.

이율이가 가정파탄 냈다 했나요?

아니죠, 당신 가정은 당신 외도 때문에

박살 난 겁니다.

이럴 때 이율이 딱 이용해 먹으면 좋겠는데

퇴사를 했으니 집까지 분풀이하러 온 거 맞죠?

지금 제일 두려운 게 불륜녀 꼬리표일 테고-

그걸 착해빠진 이율이한테 뒤집어씌워

골질 한 거고.

이웃사람들이 거짓루머에 색안경 끼고 볼 텐데

얘가 여기서 다리 뻗고 살겠냐구요.

퇴사를 한 후에도 더러운 영향력 행사하겠다 이거죠.

근데 이를 어쩌나. 이율이한텐 내가 있는데?!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던가?"

"돼... 됐고!!! 내 변호사랑 얘기해."


서대표가 도망치듯 사라졌다.

락스타는 현관문 빼꼼족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팩트 확인들 하셨죠? 자, 해산."


락스타를 시작으로 3층 입주자들은 하나 둘 들어갔다.

긴 복도엔 송기후와 나만 남겨졌다.

송기후는 부들부들 떨리는 나의 두 주먹을 본다.

송기후는 내 주먹을 쥐더니 평평하게 펴줬다.

빨개진 손바닥이 어느새 뽀얗게 돌아왔다.


"우스운 꼴 보였어요. 미안해요."


송기후는 내 손을 제자리로 놓아주었다.


"저 사람이 누군데요? 기억나요?"


다 잊으라는 송기후의 고마운 의도가 읽혔다.


"아뇨, 기억 안 나요."


우리의 두 볼엔 미소가 번졌다.


"내일 봐요. 우리."


우리.. 내일...

내일.. 우리...

나의 라스트 씬이 이 사람이었으면..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밤의 루틴이 시작됐다.

락스타는 또 어딜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화장하고, 잔잔한 꽃원피스 수의를 입고,

메리제인슈즈를 신고 암막커튼을 치려는데


"꺄악!!!"


창문에 거꾸로 매달린 락스타 때문에 뜨악했다.


"놀래라 진짜..."

"물구나무 복식호흡 중이야. 아 피곤해."

"빨리 내려와요, 앞 건물에서 신고하기 전에."


락스타는 허공을 빙돌더니 창문에 걸터앉았다.


"골목에서 처맞는 동생 구하러 온

친언니 같았어요. 고마워요."

"동생 구해주러 갔는데 얘가 아기 파이터였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처음이라.."

"진상진상, 그런 진상은 나도 처음이다."


락스타와 나는 큭..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근데 화나면 존댓말 하는 스타일?"

"그랬냐."

"어찌나 깍듯하신지 다른 저승사자 납신줄."

"넌... 괜찮고?"

"퇴사 전에 하고 싶은 말 못 하고 나와서

답답했는데 여한 없어요."

"여한 없으시겠지,

나 떼놓고 꽃미남이랑 단둘이 밥 먹더라?!"

"떼놓긴 누가 떼놔.

가자는데 본 척도 안 해놓고."

"너는 친해지면 말 놓는 스타일이구나?"

"근데 이승 말투를 언제 마스터했대?"

"니네 말로 딥러닝 좀 했다 왜."

"선글라스 썼으니까 내 얼굴이랑 똑같다는 거 아무도 모르겠죠?"

"앞집 남자는 알겠지. 한 번 봤으니."

"옷 사줄까요? 좀 덜 공격적인 걸로..."

"왜, 이제와서 내가 창피해? 부끄러움은 너의 몫?!"


사자와 예비망자는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생의 그 끝자락에서 웃고 웃고 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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