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스타처럼 죽고 싶어

4화 초대

by 햇빛투게더

집에는 들어가기 싫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락스타도 부담이고

뼈 없는 치킨 냄새도 맡기 싫었다.

어제와는 다른 삶을 살리라 다짐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길 잃은 나는 인근 공원을 빙빙 돌며

시간을 축냈다.

락스타가 또 카드를 쓰기 전에

카드는 몽땅 잘라버리고 완납해야지.

시신이 실려나가면 집주인한테 민폐일 텐데..

어디 입원이라도 해야 하나..

그게 맞겠지..?

왜 부동산에서 연락이 안 오지?

살림살이는 언제 빼지?

알량하게 남은 은행잔고는

어디에 기부하지?

등등

이런 자투리시간 하나

내 감정을 위해 쓰지 못하고

또 이렇게 천년만년 살 것처럼

현실부스러기를 밟고 있다.

집어치워. 제발.

그 딴 건 하루 날 잡고 하고.

이제부터는 모든 순간이 라스트 씬이다.

종료시점을 모르니 말이다.

암튼 오롯이 널 위해 쓰라고, 맹추야.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호수의 찰랑이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얼마만의 평화인가.

유한하지만 향기로운 평화-

눈부신 내 젊음도 아깝지만

어린아이의 죽음에 비하면

내 서글픔은 비겁하다.

아니지, 착한 척하지 말자.

제발 좀 '이율이'식 사고방식을 바꿔보자.

난 억울해. 억울하다고.

서른 번째 크리스마스는 보고 죽어야겠어.


어느새 뉘엿뉘엿 해는 지고

급격히 한기를 느꼈다.



원룸 복도엔 청담사모룩의 여인이

바리바리 싼 쇼핑백을 들고 서성이고 있다.

그녀는 연신 앞집 남자의 집 벨을 누르지만

앞집 남자는 나오지 않았다.

큰 누나 거나, 막내 이모 거나...?


그녀와 스쳐 지나가며 도어록을 해제하는데

'저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애가 집에 없는 모양인데

죄송하지만 냉장고에 여유가 있으신지..."


우리 애?

그토록 장성한 아들 둔 분위기가 아닌데

우와.. 저분 정말 관리력 쩐다.

외평 하느라 내 대답이 지체되자

그녀는 채근의 미소를 보인다.

아, 냉장고...

병원에 다녀온 후론 장 볼일이 없어서

냉장고는 널널했다.


"보관해 드릴 순 있는데 310호 분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문자 남겨둘게요.

빈집에 들이닥치는 거 질색을 해서..."


안심이 된 듯 그녀는 우아하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 이것도 실례인가?

그냥 309호라고 할까요?"


순간, 멈칫했다.

누군가에게 309호로 남는 게

죽기보다 싫었달까.

특히 앞집 남자에게.


"이율이입니다."

"이율이 씨. 기억할게요."


구두의 또각임 마저 우아한 그녀는

발길을 돌렸고 나는 그녀를 멍하니 보았다.

기억을 해준다? 기억을..

기분이 묘했다.

배터리 1%인 나를 누군가 기억해 준다는 게.

묘한 위로다.


락스타는 뼈 없는 치킨 냄새만 남긴 채

보이지 않는다.

1인 가구에 유령 하나 더 있다는 게

이만저만 불편한 일이 아니었지만

또 어디 간 건지, 사고라도 친 건지 걱정이다.

벌써 식구가 되어 버린 건가..

이 생활밀착형 저승girl을 어쩌면 좋을까.

2~3개의 쇼핑백들이 통째로 들어갈 만큼

냉장고는 넉넉했다.

갑자기 '엄마가 미웠어.'라는

속마음이 튀어나와 왈칵 눈물이 났다.

엄마는 날 버린 거야.

어떻게든 날 찾아왔어야 해.

할머니에게서 날 지켰어야 해.

앞집 남자 엄마처럼 해먹일 반찬

바리바리 싸들고 와줬어야 해.

애착이불이랑 애착인형 안겨주고

날 안심시켰어야 해.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내 새낀 내가 지킨다 했어야 해.

죽어도 내 눈앞에서 죽었어야 해.

엄마 보내줄 기회를 줬어야 해.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줬어야 해.


이상한 일이다.

남의 집 엄마의 반찬 때문에 이럴 일인가 싶다.

최근까지 엄마는 내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움도 지쳐, 원망도 지쳐, 아예 없는 사람.

없어야 할 사람.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홀로 눈물 터진 내가 엄마를 공격하는 동안

밤늦도록 락스타도 앞집남자도

기척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벨소리에 눈을 떴다.

부은 얼굴로 문을 여니 앞집 남자가 서있다.

왓씨... 안경이라도 쓸걸..


"죄송합니다. 번거롭게 해 드렸어요."


앞집 남자는 테이크아웃 트레이에

커피와 베이글을 내밀었다.


"아, 잠시만요."


앞집 남자의 트레이를 받기도 전에

냉장고로 달려가 수선스럽게

반찬용기를 챙겨 왔다.

이 지랄 맞은 호감 관성의 법칙.

그때 왜 귀밑머리를 하릴없이 넘겼을까.

쪽팔려..


"이율이 씨한테 꼭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엄마가."


평생을 들어왔던 이름이지만

지금까지 듣던 이율이 씨 중

이토록 고당도로 들렸던 적이 있었던가.

어쩔 줄 모르는 내게 앞집 남자는

담백한 인사와 함께 돌아섰다.


이율이 식 사고방식을 버리자.

저 남자 이름을 묻는다고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죽지 않아.

큰 일도 별일도 아니라고.

내 딴엔 큰 용기로 말했다.


"저어..."


앞집 남자가 느린 화면으로 돌아섰다.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아... 송기후입니다."


송기후...

송.. 기후...

어쩐지 어울리는 이름이다.


"혹시, 밴드 공연 좋아하세요?"

"밴드요?"

"그 안에 초대권 있어요.

관심 있으시면 오세요.

가까운 클럽이에요."


그렇게 우린 말을 텄고

나는 이율이의 못난 '습'을 버리고

결국 그의 이름을 쟁취해 냈다.

그런데 송기후는 락밴드의 분위기가 아니다.

무대 위에선 다르려나. 락스타가 또 있었네.

공학도 느낌이었는데 판교맨 느낌..

송기후가 주고 간 트레이를 허둥지둥 살펴봤다.

두장의 초대장.

밴드 사진의 가장자리에

건반을 누르는 송기후가 보였다.

락스타의 표현대로 육포 전완근을 뽐내며.

와... 앞집남자 송기후의 공연이라니..

버킷리스트 항목이

이렇게 한 칸 더 늘었다.


"뭐야 뭐야 뭐야....."


돌아보니 락스타다.

이젠 그녀의 뜬금없는 등장이 놀랍지도 않다.


"둘이 언제부터?"

"다 알면서 뭘 물어요."

"나도 간다. 공연장"


어차피 맘대로 할 거면서...





락스타는 옷가게로 날 끌고 들어갔다.


"그 꼴로 클럽엘 가겠다고?"

"두 분이 쌍둥이세요?"

"저희가 둘 다 보이세요?"

"죄송해요, 우리 애가 좀 덜떨어져서."


락스타는 더 말을 섞지 못하도록

내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락스타는 내 가슴께에

이런저런 야한 옷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락스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뭘 어떻게 하면 그게 돼요?

보였다, 안보였다?"

"영업비밀이야."


락스타는 환히 웃으며

계란찜색 크롭 니트를 들고 왔다.

색은 마음에 들었다. 근데..


"이거 배꼽 나와요.

차렷하고 있어야잖아.

푸처핸섭도 못한다구요."

"그깟 배꼽 아껴서 어따 쓸래?

죽을 때 금칠해 가려고?"


락스타는 내 말은 귓등으로 들으며

데님 미니스커트를 골라왔다.

락스타는 피팅룸으로 나를 밀어버렸다.

이런 미니스커트는 초등학생 때도 안 입어봤는데..

쭈뼛하고 피팅룸에서 나오자

락스타는 박수를 절도 있게 세 번 치고는


"레츠고."


하며 나갔다.

왜 저렇게 신났대.



크지 않은 클럽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귀가 찢어질 듯 큰 음악소리가 방방 들려대고

무대 위엔 송기후 팀이 세팅하고 있다.

락스타는 벌써 흥이 올라

걸어가면서도 춤을 과하게 춰댔다.

뒤 따라가면서 어색한 크롭니트는 둘째치고

헤드뱅잉 하며 동선 방해 하는 락스타 때문에

연신 사과를 하며 겨우 자리를 잡았다.


한가운데엔 메인보컬이 보였다.

초대장과 같은 대열.

메인 보컬 남은 누가 봐도 밴드뮤지션 바이브.

약간의 날티와 능청스러운 것이

락스타 같은 누나를 뒀을 것 같다.

그에 비해 송기후는 여전히 공학도 같은

담백한 얼굴로 가장자리 건반 앞에서

뭔가 체크 중이다.

락스타처럼 방방대는 사람들 때문에

내 시야에 송기후는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나는 이리저리 고개 빼꼼하며

송기후를 부지런히 바라보았다.


댄스뮤직이 멈추고 마침내

송기후팀 연주가 시작됐다.

첫곡은 강렬하고 신나는 밴드음악이었다.

메인보컬은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노래를 불렀고 락스타는물 만난 고기마냥

저세상 텐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송기후는 나를 알아봤다.

눈이 마주치자 송기후는

아주 짧게 특유의 흰 우유 미소를 주었다.

송기후는 연주에 집중하면서도

간간이 나를 바라봤다.

송기후와 나의 눈빛은

레이저 광선마냥 하나로 이어졌고

이 어수선한 공간에 그와 나

둘 만 있는 듯했다.

살고 싶어.

일 년 만.. 반년만..

아니, 한 달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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