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감각

그 어떤 목표와 타이틀로도 증명될 수 없는 우리라는 존재

by fernweh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

그러려면 현재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끊임없이 이런 질문을 품으며 살아왔다.

한 지점에 도달하면 늘 그 '다음'을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나는 죽음을 다룬 책을 접했다.

박완서 작가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뒤 쓴 글이었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였기에, 더 잔혹하고도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사랑하는 모든 것을 한순간에 앗아갈 수 있는 무시무시한 현실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그 순간 나는 내 모든 고민들을 죽음 앞에 놓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10년 뒤 목표"도, "현재 나의 노력"도,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는 너무나 작아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 사회적 명성, 돈, 아름다움 같은 목표들은 무력하게 빛을 잃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무력감 속에서 나는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 할까?’

'삶이 결코 내게서 앗아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순간 내 마음을 스친 것은 ‘생의 감각’이었다.

요가할 때 내 호흡에 몰두하는 순간, 내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오감으로 맛보는 순간, 길을 걸으며 발끝에 닿는 땅의 감각을 느끼는 순간, 나는 분명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이 아무리 모질게 굴어도 빼앗을 수 없는 단 한 가지이다. 그리고 오감 그 이상으로, ‘감각한다는 행위 자체’가 바로 생의 감각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의 감각을 빼앗아 간다.

돈으로 음식을 사 먹으면 우리가 직접 요리하면서 느낄 수 있는 재료 본연의 모습, 맛과 향, 조리과정에 대한 이해를 놓치게 된다. 길을 걸으며 피부로 계절을 느끼던 그 감각은, 에어컨에 둘러싸여 그저 목적지만을 향해 달려나가는 수많은 자동차 속의 일상으로 바뀌었다. 챗gpt를 통해서 위로받았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에서,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정서적 교감 또한 기술에 의탁되고 있다는 현실을 발견한다.


삶을 스스로 운용하며 느낄 수 있던 생의 감각들을 많은 경우 기술과 자본으로 대체되었다.

지나치게 '효율'적인 사회 속에서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아주 작은 한 조각이 되어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나는 이를 단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다.


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니며 내가 해야 할 일은 '공부' 외에는 없었다. 늘 맛있는 급식이 나오고,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으며, 정해진 시간표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공부 외의 모든 것을 주변환경이 대신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기계처럼 살아야 했다. 그때 내가 유일하게 삶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었던 방법은 '산책'이었다.

학교 건물 밖을 나가 잠시나마 걷고 계절을 느끼며 "살아있다"는 그 감각을 붙잡으려 했다.


많은 이들이 목표와 타이틀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생의 감각을 잃어버린다. 취업준비생, 수험생, 혹은 무언가에 몰두해 사는 이들. 목표는 에너지를 주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대학교 타이틀, 번듯한 직장, 연봉.

이런 것들은 나의 일부일 뿐, 나의 존재 자체를 증명할 수는 없다. 내가 살아있고 세상을 느끼고 있다는 그 감각. 그것만이 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 소울에서 보여주듯, 삶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라 길을 걷고 바람을 느끼며 음식을 맛보는 그 감각 속에 있다. 결국 실존주의가 말하는 바도 이와 같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목표에 의지한 삶은 위태롭게 흔들리지만, 그 어떤 순간에서도 생의 감각만큼은 흔들리지 않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에게 효율적인 ‘부품’으로 살아가라 하지만, 생의 감각을 지켜내는 사람은 사회적 직함이나 역할이 자기 삶을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빛을 잃을 희미한 목표들에 삶을 휘둘리지 않는다.


나는 어떤 의미를 위해 살고 싶지 않다. 다만 삶의 어떠한 파도 앞에서도 생의 감각을 잃지 않고, 단단히 뿌리내린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앞으로도 나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달리겠지만, 나를 그것과 동일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일상 속 작은 순간들—호흡, 요리, 산책, 계절의 감각—을 붙잡으며 한평생 살아갈 것이다. 일상 속에서 생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여러 순간들을 끊임없이 느끼고 감각하고 되새기며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