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9. 모두 엄마 덕분이야

K장녀의 행복 찾기 

by 장소영 Mar 17. 2025

우리 엄마는 길을 가다가도 구걸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못 지나치신다. 20년 전 그날도 그랬다. 그때는 지하상가 입구마다 돈 바구니를 바닥에 놓고 구걸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엄마는 굳이 지갑을 뒤적이셨다. 그리고 동전 500원을 돈 바구니에 넣으셨다. 두 번 만나면 두 번, 세 번 만나면 세 번.


“엄마? 왜 그렇게 돈을 줘?”

“너네 잘되라고. 돈을 안 줘서 너네 잘못되면 안 되니까.”

자식 잘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다지만 우리 엄마의 생각은 강박에 가까웠다.      

게다가 엄마는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자기 탓을 했다. 


“소영아, 엄마가 밥을 늦게 해서 그럴까? 우짜노, 우짜노, 우짜꼬”

아빠가 오늘 번 돈을 엄마에게 안 주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는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억지 인과 관계를 만드는 엄마가 답답해서 오히려 엄마에게 핀잔을 주었다.

“엄마,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노?”     


우리 엄마는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을까? 엄마의 삶을 따라가보면 알 수 있을까?

엄마는 군인이셨던 할아버지 덕분에 남부럽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내셨다. 남들은 고무신도 신기 힘든 시절에 엄마는 빨강 구두를 신고 예쁜 원피스를 입으셨고, 친구들이 학교에서 배급받은 옥수수빵이 맛나 보인다며 자신의 쌀밥과 바꿔먹었다는 이야기는 엄마의 자랑 레퍼토리다. 

“나는 점만 보면 초년 운과 노년 운이 그렇게 좋단다.” 


할아버지가 군 제대를 하시면서 시작된 엄마의 불행을 엄마는 운명으로 받아들이셨다. 할아버지는 퇴직금으로 사업을 했다가 크게 망하셨다. 엄마를 뺀 나머지 식구들은 서울에서 진주로 내려왔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엄마는 서울에 혼자 남으셨다. 엄마는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낮에는 학교에서 급사로 일하고 야간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는 지난날 이야기를 남 이야기하듯 웃으며 말하지만, 한순간에 추락한 상황이 얼마나 서러웠을까?


엄마는 대학 입학시험까지 쳤지만, 뻔히 대학을 갈 수 없는 형편이라 합격 결과를 보러 가지도 않고 그 길로 진주로 내려오셨다. 가진 건 튼튼한 몸이 전부인 우리 아빠와 결혼을 했고 딸 셋을 키워냈다. 결혼생활도 물론 녹록지 않았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 고이 모아둔 딸 성적표 보는 기쁨으로 우리 엄마는 그 세월을 버텨냈다. 

험난한 물길 위, 엎어지고 뒤집히는 뒤웅박에 몸을 실은 우리 엄마는 파도가 덮쳐오는 이유를 찾으셔야 했을 거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우리 아빠가 인정하는 착하고 순진한 우리 엄마는 그 이유를 본인에게서 찾아냈다. 딸이 감기에 걸린 것도 자기 탓, 아빠가 오늘 늦게 들어온 것도 자기 탓. 중얼중얼 본인이 잘못한 일을 읊으셨다.     


자기 잘못조차도 세상 탓,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우리 엄마는 너무 착한 사람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남 탓하기도 버거웠을까? 

어릴 적 나도 그랬다. 나는 감기를 자주 앓았고 엄마 아빠는 자주 싸우셨다. 신기하게도 내가 아플 때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것 같았다. 

‘내가 아파서 엄마 아빠가 싸우시나 보다. 내가 안 아파야지.’

힘없는 아이는 자기 탓을 하니 상황이 이해되었다. 내가 안 아프면 부모님이 안 싸우실 거라는 희망도 품었고 내가 잘한다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했다.


‘내가 밥을 늦게 해서 소영이 아빠가 늦게 오는 걸까?’라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엄마의 자기 탓은 ‘밥을 일찍 하면 소영이 아빠가 일찍 오겠다’라는 희망 찾기가 아니었을까?     

오늘은 힘들지만, 내일은 나아질 거라는 엄마의 기대는 다행히 현실이 되었다.

“다 자식 잘 키운 너희 엄마 덕분이다.” 아빠는 지금의 행복을 엄마의 공으로 돌리신다. 

“맞다. 엄마가 우리를 잘 키워줘서 그렇지.” 우리도 맞장구를 친다. 

“맞제? 내 복이제?”


우리 엄마는 노년의 행복을 자신의 공(工)으로, 복(福)으로 받아들이신다. 

힘든 일이 많았기에 자기 탓을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엄마. 

자기 탓을 해서라도 자식에게 좋은 날을 가득 주고 싶었던 우리 엄마.

이제는 엄마가 자신의 공치사만 하시도록, 좋은 일이 가득하도록 해드리고 싶다.     

엄마, 모두 엄마 덕분이야.                                             

작가의 이전글 8. 할머니, 할아버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