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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빠의 라떼

K장녀의 행복찾기 

by 장소영 Mar 18. 2025

   

“엄마 초등학교 때는 말이야. 50원만 있으면 학교 앞 문방구에서 빨강, 노랑, 초록 사탕이 들어있는 신호등 사탕을 살 수 있었어. 집 냉장고에 오렌지 주스를 넣어두잖아, 그럼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였어. 늦게 냉장고 문 열면 이미 주스는 없었다!”

아들에게 들려주는 나의 라떼 이야기가 순한 맛이라면 우리 아빠의 라떼는 지독하게 매운맛이다.

      

아빠는 5남 1녀 중 셋째였다. 집에서는 누구 하나 못 먹어도 모를 정도로 치열한 식사시간이었고, 학교에는 도시락을 못 싸가서 점심시간에는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고 한다. 텔레비전에서 본 그 애달픈 장면들이 우리 아빠 이야기다. 

“어릴 때 이런 음식을 어디 먹어본 적이 있었나? 참 좋은 세상이다. 아빠는 삼천포 앞바다에서 친구들하고 해루질해서 괴기(물고기)랑 문어도 잡아 먹었다이가.” 


맛난 음식을 차려 함께 먹는 날이면 아빠는 배곯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셨다.

아빠가 유독 체격이 좋고 힘이 세어서 그랬을까?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아빠의 손을 끌고 소방서로 데려가셨다. 아빠는 소방서에서 우물물을 길어 소방차에 싣는 일, 설거지하는 허드렛일을 했다. 공부해야 할 열두 살 아이의 손은 시렸고, 아팠고, 갈라졌다. 

“그 우물 물동이가 얼마나 무거운 줄 아나?” 

아빠는 험한 일로 패이고, 다친 상처로 가득한 손을, 자신의 어린 시절 보듯 안타까이 보신다. 자신의 한 손을 다른 손 위에 얹고 마주 비비신다. 참 힘들고 아팠던 열두 살 아이 손을 만져주듯 말이다. 열두 살 어린 아빠가 번 돈은 큰아버지와 삼촌, 고모들 학비에 보태졌다. 가족을 위한 아빠의 노동은 너무 일찍 시작되었다.      

“소영아, 아빠는, 아빠는, 무식하다이가, 공부를 못했다이가.” 


아빠는 가게 일을 하시다가 손님에게 무시 받은 날에는 술을 드시며 많이 괴로워하셨다. 

“내가 전생에 큰 죄를 지었는가 보다. 소영아.” 

인생이 여전히 오르막길을 내어줄 때 서럽게 우셨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기도문을 외우며 자신의 가슴을 치는 아빠가 슬퍼 보였다.

“느그는 다 엄마 딸이제?” 

마음 한 켠 내주지 않는 딸들에게 서운해하셨다.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빠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이었다. 나는 아빠가 엄마와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나는 싸움을 말리고 엄마도 아빠도 위로해드렸다.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아빠를 내 삶 밖으로 밀어낼 수 없었다.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아빠랑 이야기를 잘해?” 호랑이 같은 아빠가 무섭기도, 멀기도 했던 동생이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아빠가 이해가 돼.”

아빠의 라떼 이야기는 몇 번이나 정독한 소설 같았다. 소설 속 인물의 삶을 이해하듯 나는 아빠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만약 아빠의 인생을 들려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아빠를 미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변영주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자식이 마흔이나 쉰 살 때쯤 됐을 때 부모의 삶이 이해된다면, 그 부모는 좋은 부모라고.’ 

- 「아무튼, 여름」 중에서, 김신회 -       


아빠의 삶을 연민한다. 아빠를 키워낸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살았던 아빠의 삶을 연민하다.

아빠의 삶을 긍정한다. 옳고 그름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아빠의 인생을 긍정한다. 

아빠의 삶이 고맙다. 아빠에게 주어진 인생을 참 열심히 살아주셔서 고맙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최근에는 아빠의 라떼 이야기도, 하소연도 들은 기억이 없다. 

“요새 좋다. 잘 있지.”

“이렇게 좋은 집에서 아무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살아야지!”

이제 아빠의 라떼 이야기가 진짜 옛날이야기가 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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