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행복찾기
“할머니! 생일이 언제예요?”
“410……. 모르겠다.”
“할머니! OOO이 누구예요?”
“………, OOO? 우리 아들.”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죠!”
‘간호사 선생님이 바쁘신데 참 답답하시겠구나!’ 이해하면서도 지나치게 무례한 말이 계속되자 앉아있던 손님들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저 간호사, 나한테도 그렇게 말했다니까요.”
내 맞은편 아줌마 손님은 무릎을 내 쪽으로 돌려 앉으며 간호사 흉을 보았다. 다른 한 손님은 “할머니가 귀가 어두우시네. 자식이 어머니를 챙겨야겠네.” 여기 있지도 않은 할머니 아들에게 충고 한마디 하셨다. 나는 눈에 달랑달랑 눈물을 매달았다.
“우리 엄마도 그러실 텐데. 사람들을 답답하게 하고 귀찮게 하는, 부탁 많은 할머니이실 텐데.”
엄마는 시력이 0.2인데도 안경이 불편하다며 안 쓰셔서, 마트에서 물건을 눈앞에다 바짝 두고 확인하신다.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뭘 사려고 하는지,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다른 사람들도 다 알 정도다. 시장에서 장을 보실 땐 덤을 달라 하신다. 다들 한 번씩 눈길을 주고 심하면 눈치도 줄 할머니다.
내가 어릴 땐 엄마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엄마는 갑자기 할머니가 되었다. 여유 있고 느긋한 할머니가 아니라 남을 답답하게 할 할머니. 오늘 본 할머니처럼 그런 장면이 우리 엄마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 아니 이미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달랑달랑 달려있던 눈물이 톡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함께 외출할 때, 엄마 손을 꼭 잡는다. 엄마의 따뜻한 손을 잡을 기회이기도 하고 ‘우리 엄마 무시하지 마라!’, ‘우리 엄마에게 이런 든든한 딸이 있다.’를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그런다. 그리고 손에 더 힘을 준다. 동생들과 함께 있으면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엄마를 호위한다. 나는 엄마에게 잔소리며 타박을 하면서도 남이 그러는 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에서 덤 달라고 하는 엄마를 말리지 못한다.
“엄마, 괜찮아. 가자.” 진상 모녀라 욕할지 몰라도 나는 엄마 편을 든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음을 늦게 알았다. 나에게 부모님은 워낙 큰 존재라서 그랬다는 변명을 한다. 어디가 아프시거나,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엄마 아빠가 해결하시겠지!’ 하는 생각이 컸다. 부모님의 하소연에도 미적지근한 공감만 해드렸다. 그렇게 부모님의 변화를 덮어두고 모른 척한 사이에 우리 부모님은 남들이 인정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부모님의 변화를 빨리 알아차리는 방법은 결국 ‘뜨거운 관심’이다. 자주 전화 드려 부모님에게 어떤 고충이 있는지 알아내고 도움을 드려야 한다. 오늘 본 할머니처럼 귀가 잘 안 들리신다면 생년월일을 적은 종이를 가방에 넣어 드리면 좋겠다. 나도 할머니가 된 우리 엄마의 안경을 챙기고, 할아버지가 된 우리 아빠의 고장 난 카세트 플레이어를 고쳐드리는 일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
사랑받는 아이가 다르듯, 사랑받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다르다. 자식들의 사랑을 받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표정이 밝다. 현재의 소중함을 알고 좋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신다. 가진 것을 남과 나누고 자식과 손자에게 사랑을 더 표현하신다.
“소영아, 천국과 지옥은 죽음 후에 가는 곳이 아니다. 지금 내가 너희 엄마와 이렇게 다정하게 지내고 즐겁게 지내는 여기가 천국이다.”
“자식들 줘야지, 누구 줄끼고? 장어랑 갈치랑 꼭 가져가라.”
이렇게 우리 엄마, 아빠는 사랑받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다.
사랑은 회복할 수 있다. 특히 부모 자식 사이의 사랑은 회복력이 강하다. 부모님과 서로 모진 말을 주고받던 이삼십대를 지나, 지금은 사랑의 언어를 주고받게 된 나의 경험이 증명한다.
사랑받는 아이가 많아져야 하듯, 사랑받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많아져야 한다. 부모가 사랑받는 아이를 만들 듯, 자녀들은 사랑받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