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는 왜 엄마 말이 힘들까?
‘나는 왜 엄마 말이 힘들까?’
온라인 서점의 팝업 창에 떠오른 박재연 작가님의 책,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책 제목을 보고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엄마와의 대화가 힘들었다. 머리로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불쑥 치밀어오르는 감정과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모진 말은 제어가 힘들었다.
“건강한 대화를 연습하기 위해선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이든 부정적인 생각이든 그 생각을 알아차리는 훈련이 중요하다.”
-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중에서, 박재연-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고 판단하기, 비난하기, 강요하기, 비교하기, 합리화, 당연시와 같은 자동적 생각을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거 누가 그랬어?”라고 물어보는 말에 ‘나를 비난하는구나.’라는 판단은 내가 만든 자동적 생각이다.
“내 말 듣고 교대 잘 갔지?”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엄마가 내 삶을 강요했구나.’라는 자동적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네가 잘살기를 바랐다.’라는 마음을 담았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떠올리는 자동적 생각을 알아차리는 노력을 했다.
‘내가 예전 일을 떠올려 화를 내려고 하는구나.’
‘내가 이런 자동적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불편한 대화는 거절하고 긍정적인 표현으로 요청을 해보았다.
“엄마, 나 대학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 했으면 좋겠어.”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말라! 살면서 이보다 더 도움이 됐던 말은 별로 없습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거르지 못하고 다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가 되어 수시로 상처받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에서, 비욘 나티코 린데블란드-
이 책도 같은 답을 주었다. 나는 엄마와 대화하며 떠올린 내 생각들을 옳다고 믿었다. 아니, 틀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어.’ 내 생각에 선택권을 주니, 자동적 생각의 자리가 좁아졌다. 엄마와의 대화가 훨씬 수월해졌다. 엄마를 만나기 전에 늘 ‘오늘은 엄마에게 화내지 말아야지!’라고 다짐까지 했던 나였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이 많이 줄었다.
엄마의 말에 부정적 생각이 떠오를 때는 그런 나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려 한다.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나에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빈칸의 말풍선에는 엄마의 욕구를 찾아 채워본다.
부모님의 주는 말을 고스란히 마음에 품는 착한 내 동생에게는 이 말을 선물로 주고 싶다.
“상대의 감정을 배려할 수는 있지만 내가 상대의 감정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중에서, 박재연 -
가족만이 비밀스레 공유할 수 있는 그 심란한 마음, 동생이 힘들어하는 그 마음을 안다. 평온한 일상은 흐트러지고 우울의 바다가 나를 끌어당긴다.
나는 그 감정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 그 첫걸음이 나의 감정과 부모님의 감정, 나의 삶과 부모님의 삶을 분리하는 거였다.
‘나는 여기까지 들어드리고 도와드릴 수 있어. 그다음 선택은 부모님 몫이야. 부모님의 삶이니까.’
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매정한 딸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덕분에 나는 지치지 않고 부모님을 도와드릴 수 있었다.
엄마와의 편안한 대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 문장에 있었다.
“대화는 죽음을 생각하며 할 때 가장 명료해집니다. 깊은 한숨, 먼 곳을 응시하는 시선, 한 방울의 눈물과 부드러운 미소가 바로 대화랍니다. 최고의 대화란, 대부분 깊은 침묵 속에서 이루어짐을 배웠습니다.”
-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중에서, 박재연 -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니 부모님과 나 사이에 뺄 것과 남길 것이 분명해졌다. 죽음 앞에 가벼운 오해, 차가운 의심은 날아간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었다.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건, 결국 감사와 사랑이라는 뜨거운 진심뿐이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메멘토 모리!
엄마가 흐뭇하게 웃는 얼굴과 기름때 묻은 옷을 입고 힘주어 걸어오는 아빠의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플레이된다. 그리고 예쁜 말에 진심을 전하는 내 모습도 함께 플레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