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9. 거북이 엄마, 거북이 아빠

by 장소영

엄마의 건강 검진은 내가 2년마다 하는 숙제다. 우리 집 근처 병원에 검진을 예약한 덕분에 엄마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 주무셨다. 거실에 누운 엄마의 팔을 만져보았다. 엄마가 어릴 적 나에게 해 주셨던 손길 그대로 엄마 어깨부터 다리까지 내려가며 마사지해드렸다. 우리 엄마의 두툼한 허벅지도 조물조물하기 위해 손 뼘을 최대한 늘렸다. 그런데 엄마의 허벅지를 만지는 순간, 훅 사라진 두께에 놀랐다. 물렁 살을 따라 손이 움푹 들어가고 허벅지 뼈까지 만져졌다.


“언니야, 엄마 걷는 게 작년하고 영 다르다.” 오랜만에 엄마 걸음걸이를 본 동생의 말이 맞았다. 젊으실 적 토끼같이 빠르던 엄마는 다리 힘이 많이 빠진 거북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만만치 않은 거북이 아빠도 있었다.


코로나에 걸리신 후 아빠는 원래 앓던 허리 통증이 굉장히 심해졌다. 허리 통증은 다리 통증으로 이어져 몇 걸음 걷다가 주저앉으셨다. 무려 5명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는데 아빠의 통증을 설명할만한 진단명이 나오지 않았다. 디스크가 있지만, 수술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의사, 환자의 통증이 심하다고 하니 수술을 권하는 의사도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진료받은 한 의사 선생님은 아빠에게 필요한 건 근력 운동이라 하셨다. 어느 진단이 맞는지 정답을 선택하는 일은 의사가 아닌 우리의 몫이었다.


대학병원 진료를 마치고 병원 로비에 앉아있는데, 노년 근 손실에 대한 영상이 나왔다. 노인들은 척추 주변 근육이 약해지면, 뼈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하는 디스크에 부담이 가 허리 통증이 심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영상은 아빠의 허리 통증이 근 손실로 인한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아빠는 수십 년 동안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걷기 운동을 하셨는데 코로나에 걸린 후 걷기 습관이 무너졌고 곧이어 허리 통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마지막 의사 선생님 말씀을 정답으로 정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노인 근 소실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 노인의 키가 자연히 작아지는 것처럼 근육이 빠지는 것도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노인들의 근 손실은 질병코드도 등록된 하나의 질병이라고 한다. 근감소증 환자는 골다공증, 낙상, 골절이 쉽게 발생하며 기초대사량 감소, 당뇨, 심혈관 질환, 뇌혈관질환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근 손실로 인해 증상이 쉽게 악화된다는 정보도 얻었다.


아빠가 등산용 스틱을 사달라고 하셨다. 허리 통증과 근육 감소에 가장 좋은 운동은 결국 걷기인데 아빠처럼 통증으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스틱이 유용하다고 친구분이 알려주셨다고 한다. 당장 사서 보내드렸더니 아빠는 스틱을 짚고 평지 걷기 운동을 시작하셨다. 몇 걸음 걷다 주저앉으시던 아빠는 점점 걷는 시간을 늘리시더니 한 시간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걷기 운동을 시작하신 아빠의 뒷모습이 참 멋졌다.

“소영아, 아빠가 미안타. 맨날 아프다 해서. 아빠가 옛날엔 호랑이였는데 이제는 토끼다. 토끼도 안된다.”


허리와 다리가 많이 아팠던 때에 아빠가 하셨던 말이다. 아빠의 기운 빠진 목소리마저 토끼 같았다. 하지만 이제 운동으로 많이 회복하신 아빠는 목소리에도 다리에도 힘이 생겼다.

언제 어디서 소원을 빌 기회가 생기면 이것저것 몇 가지 추려보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오로지 부모님의 건강만 바란다. 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신 모습을 소원한다.


마음만으로, ‘부모님이 건강하시길’ 기대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으리. 운동을 권유하고 검진에 동행하며, 부모님의 건강을 챙길 나를 기대한다.

keyword
이전 18화18. 나는 왜 엄마 말이 힘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