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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시나리오

대한민국 K-장녀의 행복찾기

by 장소영

엄마에게는 피부병이 있다. 인근 대학병원에서는 햇빛 알레르기라고 진단받았는데 몇 년이나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 서울 큰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주사’라고 하는 알레르기 진단을 받았고, 서울 큰 병원 약이 엄마에게 잘 맞아 많이 나아지셨다. 그렇게 서울 병원 다니신 지도 5년째다.

한 달에 한 번, 엄마 혼자 삼천포에서 출발해 서울 병원을 다녀오시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아빠는 애가 탄다. 서울 병원에 가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며, 버스 타고 택시 타는 일이 노인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도 택시를 못 잡거나 버스를 놓쳐서, 새벽에 출발한 엄마가 밤늦게 도착하는 일이 잦아졌다.


“소영아, 이제 엄마 진주 병원 다니면 안 되겠나?”

나도 생각은 하고 있던 터라, 아빠 말에 동의했다. 동생이 서울 병원에 전화해서 의사 선생님께 허락도 받아놓은 상황이었다.

“소영아, 엄마한테 네가 좀 얘기해봐라. 아빠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

아빠는 엄마에게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으니 큰딸 작전을 펼치셨다. 큰딸은 명령을 받아 작전을 개시했다. 큰 고민하지 않고 정공법을 쓰기로 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엄마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내려오는 길이 힘들지요? 서울 병원 전화를 해봤더니 처방전 받아서 여기 병원에서 진료받아도 된대요. 그렇게 하는 게 어때요?”

요즘 한껏 누그러진 엄마이기에 한 걸음 다가와 주는 엄마를 생각하며 쉽게 말을 꺼냈다.


“소영아, 엄마 병이 어떻게 나았는데…, 아빠가 그러더나?”

오랜만에 엄마의 발끈하는 모습을 만났다. 아차 싶었다. 그래도 설득할 건 해야지 싶어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의 정공법은 엄마를 더 자극했다.

“소영아, 니 돈 때문에 그러나? 니 돈 다 주께. 니 이제 집에 오지 마라.”

“엄마, 내가 돈 때문에 안 그러는 거 알잖아. 엄마를 제일 생각하는 사람이 딸들인데, 난데, 엄마 덜 힘드시라고 그러지.”

엄마의 모진 말에 내 목소리는 흔들리는데 우리 엄마는 더욱 분명한 발음으로 무장하고 쏘아대셨다. 집에 오지 말라는 엄마 말이 너무 마음 아팠다.


나의 시나리오대로라면 나는 엄마 아빠의 말을 잘 전달하는 유능한 통역사가 되어야 하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 통역사 노릇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엉엉, 아빠! 엄마가 나한테 집에 오지 말라고 했어.” 아빠에게 나의 항복을 알리고, 계속 걸려오는 엄마 아빠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더 부추길 생각이셨겠지만, 엉엉 울어버리는 딸에, 노발대발한 엄마까지, 아빠도 그날 밤 바로 항복하셨을 거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뇌관을 건드린 아빠와 나는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다음 날,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통각은 몸과 마음을 가리지 않는다더니, 마음의 통증이 참 얼얼했다. 방심한 채 제대로 맞은 어퍼컷은 참 아팠다.

정말로 방심했다. 엄마가 내 말을 들으시고 “그렇게 해 볼까?” 답해주실 줄 알았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합리적이고 현명한 생각이라서 엄마가 “좋은 생각이구나.” 하시고 따라와 주실 줄 알았다.

밤새 울면서 나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엄마를 탓했다.


그런데 다음날 퉁퉁 부은 내 눈에는 엄마의 시나리오가 보였다. 하루 만에 서울에 다녀오는 강행군을 마치고 그제야 버스에 조용히 앉았는데 노크도 없이 걸려온 딸의 전화. 낫지 않던 피부병이 서울 병원에 다니고서야 나았는데 이제는 그만 다니자고 말하는 무심한 딸.

‘딸은 엄마보다 돈이 더 걱정스러웠나 보다.’ 딸과 남편이 짝짜꿍해서 나를 이렇게 몰아붙이다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엄마의 시나리오를 찬찬히 읽어보니 엄마의 시나리오는 틀리지 않았다. 성급하게 타이핑했던 나의 시나리오가 잘못 쓰여진 것이었다. 엄마는 그날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으셨다.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그날의 이야기

나의 시나리오와 엄마의 시나리오가 많이 달랐던, 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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