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행복찾기
우리 집에서 ‘콜록콜록’ 기침 소리가 나면 십중팔구 엄마의 레이더에 잡힌다.
“누고? 누구 기침 소리고?”
누구의 어디가 아픈지 빠르게 진단을 마친 엄마는 그때부터 오진과 과잉 진료를 시작한다.
“못 먹어서 그렇나?”
“한 입만 더 먹어라.”
어디가 아프든 엄마가 내린 진단은 ‘못 먹어서’이고, 엄마가 내린 처방은 ‘한 입만 더’이다.
최근에 동생이 무릎 수술을 했다. 동생 말로는 딱 하루만 입원할 정도로 가벼운 무릎 시술이었다고 하는데, 우리 엄마는 가슴이 철렁했나 보다. 본인도 안 한 무릎 수술을 갓 마흔 넘은 둘째 딸이 했으니 말이다.
동생의 무릎 통증마저 우리 엄마가 내린 진단은 ‘못 먹어서’이다. 마흔 넘은 딸 입에 숟가락을 디밀어 음식을 떠먹이려고 하셨다. 어릴 적 받던 엄마의 돌봄이 반가운 것도 잠시, 동생은 엄마의 과보호에 이내 지쳐버렸다. 엄마 등쌀에 못 이기는 척 음식을 받아먹던 동생은 결국 짜증을 내버린 것이다.
“엄마, 알았다고. 그리고 나 이제 안 아프다고!”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 세 딸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내가 아픈 것을 엄마에게 알리지 마라.”
딸이 아프면 우리 엄마는 지극정성 어미 새가 된다.
“지영이는 밤새 컴퓨터 보고 일한다.”
딸이 잠도 안 자고 일하면, 만만한 컴퓨터를 쪼아대신다.
“장어 먹어봐라. 민어 좋은 거다.”
정작 딸은 좋아하지 않아서 몇 점 먹고 마는 장어와 민어를 부지런히 구해서 먹이신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엄마의 첫 어미 새 모습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감기가 안 떨어지더니, 결국 나는 천식을 앓게 되었다. 엄마는 삼천포에서는 안 되겠다며 진주에 있는 유명한 소아과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중학교 때는 알레르기 비염이 생긴 나를 대학병원에 데려가, 그 시절에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알레르기 검사를 받게 하셨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원정 진료를 받으러 가는 일은 육아하는 부모들이라면 진저리치는 고된 일. 게다가 엄마는 뚜벅이. 딸의 천식 치료를 위해 몇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남은 거리는 걸음으로 채우면서, 엄마는 점점 과잉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누가 기침 소리를 내고, 코를 훌쩍거리고,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면 엄마의 비상벨은 켜지나 보다. 엄마의 ‘한 입만’ 처방은 딸 셋 잔병 수발의 결과인가 보다.
오늘 머리가 좀 아팠다. 감기가 올 것처럼 몸이 으스스했다.
‘못 먹어서 그러나? 그래, 한 입 더 먹어보자.’
엄마가 옆에 없는데도, 엄마의 처방전이 나에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