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행복찾기
“소영아, 엄마가 지금 다리를 못 움직인다. 지금 119차 타고 진주 병원 가고 있다. 니도 가 있어라.”
얼음물을 맞은 듯 몸이 바짝 얼었다. 엄마가 다친 무릎을 치료받고 계신 건 알고 있었는데, 움직이지를 못하신다니…. 여러 생각이 나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머리를 흔들어 무서운 생각을 떨쳐내어도, 엄마가 한쪽 무릎을 안고 울상짓던 모습이 내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3월의 마지막 토요일, 한 달 반 전이었다. 꽃놀이하러 가자는 말을 연습하며 벚꽃처럼 살랑이는 마음을 안고 친정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엄마는 웬일로 목소리로만 나를 맞으셨고, 방에서 무릎을 잡고 안절부절 앉아계셨다. 왜 다쳤느냐고 여쭤보니, 엄마는 된장을 담으려고 무거운 장독을 들다가 다리를 삐끗했고, 그때부터 무릎 통증이 심했다고 하셨다. 지금은 무릎 연골 주사를 맞으며 치료를 받고 있고, 의사 선생님 말대로 이제 나을 일만 기다리고 있던 엄마였다.
엄마가 오기로 한 병원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앉았다 일어났다, 차가 들어오는 길목을 바라봤다가를 반복하며 초조함을 눌렀다. 무릎 통증, 무릎 치료, 연골 주사 등 여러 검색어를 넣고는 읽히지 않는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금요일이라 길이 막혀서 하늘이 어둑해질 때쯤에야 엄마를 실은 119차는 도착했다.
엄마는 ‘아야’ 하는 소리와 함께 들것에 실려 내렸다. “어머님이 엄살이 많으시네요.”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파서 정신없는 엄마 대신, 내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 엄마는 잘 참는다. 20년 전,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될 때까지 참았던 우리 엄마다. 그런데 ‘이게 아픈 거구나’라고 결정이 나면 아프겠다고 결정한 사람처럼 앓는 소리가 크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다.
요란하게 병원에 도착한 엄마는 여러 차례 진통제를 맞고서야 앓는 소리 볼륨을 줄이셨다. 여러 검사를 받으며 원인의 범위를 좁혀갔다. 무릎 연골 주사를 맞고 온 직후부터 아팠던지라 주사가 잘못된 것 아닌가 싶었지만, 원래 찢어졌던 무릎 연골 끝부분 때문에 그렇게 통증이 심했을 거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끝나면 이제 나의 쇼타임이다. 나는 입원 처리를 하고 엄마에게 환자복을 챙겨 입히고, 입원에 필요한 물건을 사 왔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내 부모를 돌볼 수 있다는 힘이 생겼다는 것. 복막염과 자궁근종 수술을 동시에 한 엄마를 돌보며 눈물 찔끔 짜던, 마음 여린 스무 살의 어린 내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바라던 어른이 되었다. 엄마, 아빠가 아프실 때 병원을 알아보고 입·퇴원 처리를 하고, 부모님을 부축하고 돌봐드리는 든든한 어른 말이다.
병원에서 나흘 밤을 자고 나니 엄마의 아픈 증상이 나아졌고, 나의 불안한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엄마는 햇살이 가득 비치는 휴게실에서 혼자 생각에 잠겨계셨다.
“엄마, 나 왔어!”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궁금했다.
“소영아, 상추 모종하고 곰보배추 모종 주문해줄래?”
퇴원할 때가 되셨나 보다. 딸에게 부탁할 주문 목록을 생각하느라 바빠지신 걸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