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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앞니 빠진 우리 엄마

by 장소영

“아이고 또 빠졌네.”

밥을 먹다가 엄마가 입을 움켜쥐셨다. 그러고는 빠진 앞니 두 개를 훔쳐 잡아 손바닥 안으로 얼른 숨기셨다.

‘엄마가 곧 일흔이시지만, 아직 이가 빠질 리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엄마의 앞니는 ‘진짜 이’가 아니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났다.

내 앞니는 치열이 고르지 않아 불만이었는데, 엄마 앞니는 큼직하고 매끈해서 부러웠다. 그래서 나는 왜 엄마의 예쁜 이를 닮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엄마 앞니 네 개가 엄마 것이 아니라 하셨다.

“소영이 너 낳고 네 할머니가 씻지도 말라 하고 이도 닦지 말라 했다이가. 그래서 앞니가 다 썩고 야매로 이를 해 넣었다이가.”

엄마는 할머니 말을 철석같이 믿고 진짜로 양치를 안 했단다. 엄마의 매끈하고 예쁜 앞니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다. 게다가 그 시절에 치과에서 진료받을 형편이 안 되었던 엄마는 불법진료소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이를 해 넣으셨다. 내 나이가 마흔이 넘었으니 엄마의 새 이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최근에 밥 먹다가 이가 빠지는 일이 벌써 몇 차례 있었단다. 엄마의 극성으로 치과에서는 몇 번이나 다시 붙여주었는데 이제는 못 붙여준다는 최후통첩을 내렸다고. 엄마는 이 이야기를 딸들에게 숨기셨는데 하필이면 온 가족이 밥 먹는 자리에서 들통이 났다.

돈만 내면 임플란트로 새 이를 심을 수 있는 세상, 그래서 나는 걱정을 안 했다. 그런데 정작 걱정할 것은 돈이 아니었다.


엄마 이가 빠졌던 것이 작년 겨울, 지금은 추워서 안 된다는 엄마 말을 믿고 봄을 기다렸다. 따뜻한 봄이 되었는데 엄마는 ‘무릎이 아파서 치과는 못 가겠다’라고 하셨다. 무릎으로 한창 고생하시고 이제 무릎은 괜찮아지셨는데, 결국 본심을 드러내셨다.

“치과에 못가겠다. 무섭고 귀찮다. 그냥 이렇게 살란다.”

임플란트하면 치료비도 대어주고 돈도 드리겠다고 해도 안 가신단다. 일흔 살 우리 엄마의 고집은 일곱 살 아이보다 더했다.


아이들 여름 방학에 온 가족이 다시 모였다. 딸, 사위, 손자를 마중 나오신 우리 엄마는 앞니 네 개 빠진 모습으로 손을 흔드셨다. 허름하고 늘어진 옷, 부스스 정리 안 된 머리에다가 빠진 앞니까지 더해진 모습으로.

‘큰딸이 뭐하나? 엄마 이 치료도 안 해드리고’라고 수군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반갑게 손 흔드는 엄마가 나는 영 반갑지 않았다.


온 가족이 계곡에 갔다. 엄마는 한 발씩 계곡물에 담가 보시더니 나중에는 몸에 꽉 끼는 튜브도 타셨다. 몇 년 만의 물놀이에 즐거워하시는 엄마를 보니, 나도 신이 나서 엄마 튜브를 밀고 계곡 여기저기를 다녔다.

동생이 카메라를 들었다.

“엄마, 언니야, 여기 봐!”

물놀이에 신이 난 엄마와 두 딸은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었다.

“엄마, 이!”

사진을 확인한 동생이 입술을 앙다물며 엄마의 빠진 앞니를 감추라는 시늉을 했다. 엄마는 딸이 시킨 대로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어 빠진 이를 감추었고 그렇게 두 번째 사진이 찍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세 딸과 엄마는 크게 웃어버렸다. 이 모습이 세 번째 사진에 담겼다. 물놀이를 마치고 사진을 보니 세 번째 사진이 제일 예뻤다.


앞니가 빠진 우리 엄마라도 웃으니까 예뻤다.

앞니가 빠진 우리 엄마라도 딸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예뻤다.

엄마도 웃고, 딸도 웃으니 참 예뻤다.


허름하고 늘어진 옷을 입어도 우리 엄마, 정리 안 된 부스스한 머리를 한 엄마도 우리 엄마, 앞니 빠진 엄마도 우리 엄마다.


엄마가 치과에 안 가겠다고 하시는 걸 어떡하나? 우선 한 걸음 뒤로 물러서련다. 당뇨, 무릎, 피부까지 진료받느라 진주로, 서울로 여기저기 병원에 다니시는데 일 년 이상 걸릴 임플란트 치료가 겁이 나실 만도 하다. 엄마 마음이 바뀌어 치료를 받으면 더욱 좋겠지만, 당장 엄마를 채근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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