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한글의 위대함을 오락으로 일깨우다
뿌리깊은 나무는 꽤 잘 만든 퓨전 사극이다. 한글 창제라는 한민족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사건에다가 극적인 캐릭터와 사건을 집어넣으니 꽤 재밌다.
TV 드라마라서 그런지 클로즈업 사용 방식이나 영상미 부분이 좀 촌스럽고 딸리는 부분이 있지만 그걸 크게 신경 쓰게 하지 않는 흥미진진한 전개와 매력 있는 캐릭터들 덕분에 드라마는 좋은 품질로 나왔다.
훈민정음, 무협, 추리, 비밀조직같이 듣기에는 해괴한 조합들이 서로 어색하지 않게 맞물리는 것이 장한 부분이다.
한글의 경우, 이제는 당연한 것 같은 그 편리함을 다시 일깨워 주는 장치들이 꽤 많다.
의도적인 사투리와 외국어의 등장이 한자의 한계와 한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천자와 이천자 강조도 평민들한테 한글이 왜 필요한지 역설한다. 히로인인 소이(신세경)가 복잡한 글을 몰라서 큰 비극을 당하는 것도 한글의 필요성을 설득시킨다.
물론 그렇다고 이 작품이 한자를 막 폄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작중 혜강(권성덕)이라는 유림이 무인이나 무력할 때 무(武)를 예시로 이것이 그칠지(止)와 창(戈)의 회의자(둘 이상의 한자를 뜻으로 결합시켜 새 글자를 만드는 방법으로 된 한자)이고 이것은 싸움은 멈춰야 한다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한자가 비록 어렵긴 해도 여러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물론 이 캐릭터가 악역이라는 점에서 각본가는 진짜 그런 의도로 쓴 건지는 모르겠다. 내 개인적 생각일 수도 있다.
다시 한글로 돌아와서, 한글을 만들기 위한 과정도 나름대로 흥미롭게 만들었다. 일단 의문사한 신하의 시신을 해부하고 그 성대를 통해서 한글을 만드는 걸 보면 글자 발명을 위한 고생이 잘 느껴진다. 소중한 유산인 것을 강조하는 느낌이다. 확실히 한글이 없었으면 내가 이 글도 한자나 알파벳으로 적었을 것 같은데 끔찍하다. 대왕의 좋은 유산이 맞다. 다만 납득 가지 않은 무리수가 있기도 하다. 일단 한글을 똑똑하면 이틀 만에 배울 수도 있다는 건 억지가 심하다.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나친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싶다.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다는 것도 th 발음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약간 떨어지기도 하고...
무협과 액션의 경우, 예산과 시간의 한계가 뚜렷한 TV 특성상 크게 기대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볼 수준은 아니다. 칼싸움은 확실히 나름대로 보는 맛이 있다. 다만 이걸 무협으로서 크게 기대하면 안 된다. 축지법이나 허공답보 비슷한 기술이 나오기는 하는데 엄청 과장된 건 아니다. 초인들의 액션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다. 약간의 과장만 기대하는 게 좋다.
러닝타임이 영화 보다 길어서 캐릭터를 표현하기 충분한 드라마답게 캐릭터들의 매력은 대부분 훌륭하다.
한석규가 연기한 세종 이도는 상당히 강렬한 캐릭터성을 남겼다. 실제 세종도 대중들의 이미지와는 다른 능청맞으면서도 지랄로 대표되는 욕쟁이 세종은 꽤 신선한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과격함 속에서도 세종 하면 떠오르는 애민정신을 잘 녹아들게 만들었다.
장혁이 연기한 무사 똘복이는 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서 매력 있다. 진지한 모습을 보이거나 검은 한복과 삿갓을 입고 쓴 모습은 상당히 카리스마 있다. 또 능청을 떨 때는 정겨운 아저씨의 모습이다. 그리운 여인을 향해 울부짖는 모습은 정말 서글프고 불쌍하다. 한석규와 더불어 연기를 가장 잘한 배우인 듯하다.
윤제문이 연기한 메인 빌런 정기준은 선민사상이 다소 있는 빌런임에도 그렇게 미워할 녀석은 아니다. 일단 애민정신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재상주의 정치를 추구하고 왕권 정치를 경계하는 모습과 그 이론도 설득력이 제법 있다. 다만 선거제와 로마 제국 얘기를 씨부린 건 좀 괴상해서 아쉽다.
그 외에도 평소 조진웅과 달리 끝까지 멋을 지킨 무휼, 귀여운 궁녀 삼인방, 후속작을 궁금하게 만드는 한명회(조희봉)와 성삼문(현우), 사투리 쓰는 주모 이미지임에도 카리스마가 있는 도담댁(송옥숙), 배우 평소 이미지와 캐릭터의 태도 때문에 악역일 것 같은데 끝까지 충신으로 남은 조말생(이재용), 그리고 엄격한 부성애와 가르침을 준 이방원(백윤식) 등등 잘 조각된 캐릭터들이 많다.
이 드라마가 비록 단점을 찾으면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해도 장점들이 제법 많기에 당당히 추천해 줄 수 있다. 프리퀄인 육룡이 나르샤도 많이 궁금하다. 후속작인 샘이 깊은 물은 안 나올 것 같은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