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너무 흘렸다
지슬은 감자를 제주어로 부르는 것이다. 즉 이 영화는 제주어를 쓰는, 제주도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영화이다. 그리고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비극인 4.3 참사에 대한 영화이다.
잔혹한 사건이니 영화도 잔혹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4.3의 비극을 다루는 영화답게, 당시 일어났던 거대한 정치 싸움의 본질이 아닌 그 여파의 참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정치가 뭔지 제대로 모르고 이유도 잘 모른체 죽는 주민들과 역시 잘은 모르지만 명령과 여론에 따라 죽이는 군인들의 모습은, 이 나라의 탄생이 크게 굴곡진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라의 건국과 큰 연관 없는 섬 하나로도.
영화는 단순 건조하게 사건만 보여주지 않는다. 피해자인 주민들이 피난 생활 도중에도 서로 웃으며 얘기하고 사소한 걸로 싸우는 것도 중요하게 보여준다. 이걸로 피해자들은 단순 사건의 피해자로만 보이지 않고 인격과 역사가 있던 사람으로 보여진다. 때문에 그들의 죽음은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가해자인 군인들을 마냥 악으로 묘사하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군내의 부조리와 자비를 베푸는 일부 군인들을 통해서 그들도 억울한 고통을 겪고 타인에 대한 연민을 느낄 줄 아는 인간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들도 투입 이전에는 보통 사람들이었겠지만 권력과 이념이라는 불가항력의 힘에 의해 괴물이 되었다라고 생각하면 이것도 비극이다.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한국도 지금의 안정적인 국가가 되기까지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지슬은 미학적으로도 좋은 영화이다. 흑백과 음울한 음악은 영화의 쓸쓸한 비극을 강화하는데 좋은 선택이다. 덤으로 흑백과 삭막해 보이기도 하는 자연경관은 잊혀질 뻔한 참사를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슬은 좋은 영화이다. 이제 다른 제주 4.3.영화인 내 이름은을 볼 차례이다. 근데 요즘 정지영의 영화 실력이 많이 떨어진 감이 있어서 이건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