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간부자가 시간 쓰는 방법
내가 꿈꾸는 은퇴생활
<2년 만에 사 먹은 김밥>
전화벨이 울린다 몇 달 만에 아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엄마? 별일 없지?"
"왜? 이틀 전 수술 한 거 말고는 없는데?"
"뭐야? 엄마 수술했어? 왜 연락 안 했어!"
"별거 아니야 혹 있다고 해서 하루 입원해서 한 거야
암도 아닌데 무슨 전화까지 해. 돈 달라고 할 것도 아닌데"
"다행이긴 한데 돈 달라고 할 때만 전화해? 아무것도 아니래도 전환해야지"
"돈 달랠 때만 해야지! 아들이 화수분인데"
전화기 너머로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다
학창 시절 아들이 용돈 필요한 일 아니면 대화할 일 없다고 하면서 엄마는 화수분이라고 말했던 일이
생각 나 소심한 복수를 한 것이다
대화내용이 어째 바뀐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
세상이 흉흉한 거 같아 일하다가 톡이 아닌 전화를 했단다
사기당하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한다
24살짜리 아들한테 그런 말 들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내가 늙은 건가? 아들이 철이 든 건가?
센 엄마무료강연 갔다 끝나고 들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다
한 시간이상 후원업체 광고를 하고 한 시간은 개그맨 김영철님 강연시간이었다
순간 뜨끔했다
사기는 아니지만 후원업체 광고에 1000만 원 이상을 계약할 뻔한 걸 꾹 참았기 때문이다
아들에게도 레이더가 생긴 것인가?
엄마 감시 레이더?
코로나가 내 인생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생각과 가치, 건강, 인간관계, 자산, 사는 방식, 돈 버는 방법, 취미, 시간 쓰는 법 등등...
그중 여가생활을 즐기는 방법도 달라졌다
일 할 때는 여가는 밀린 잠을 자거나 집에서 쉬는 것이 전부였다
딱히 여가라고 할 게 없었다
은퇴전문가들은 은퇴를 하고 나면 시간이 많아 여가를 즐길 시간이 늘어나고
더불어 그 시간 동안 쓰는 돈도 늘어나게 돼서 생활비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필요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은퇴 후에 그 많은 시간들을 즐길 수 있는 돈 안 드는 취미를 미리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다 은퇴자들에겐 돈이 무한정 나오는 화수분이 있으면 좋으련만 시간의 화수분뿐이다
쓸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불행인지 축복인지 수명은 자꾸 길어진다
오죽하면 100살까지 사는 것도 무서운데 재수 없으면 120살을 넘게 살게 된다는 말은 저주에 가깝게 들린다
그 많은 시간들을 돈 쓰지 않으려고 집에만 있을 수도 없다
돈이 없는 대신 시간은 얼마든지 쓸 수 있지 않은가?
시간을 써서 할 수 있는 취미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오전에 다녀온 센 엄마무료강연도 강연은 1시간이지만 그 강연을 무료로 듣기 위해서는
후원업체 광고를 1시간을 들어야 한다
현장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설명이다
돈 벌 때는 아무리 무료라고 해도 광고를 들어야 한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만 투자하고 개그맨 김영철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낼 수 있다
영화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늘 피곤하고 바빠서 쉴 시간도 없는데 어두운 영화관에 갇혀 두 시간을 앉아 있기란 내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천만관객영화가 아니면 관람하지 않았다
트렌드는 좇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나마 천만이 넘으면 보러 갔다
하지만 코로나로 일상생활도 자유롭지 못하고 영화조차도 볼 수 없게 되자 진짜 평범한 것들이 그리웠다
그래서 퇴직하고 나서 통신사 포인트로 무료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통신사 포인트를 다 쓰지도 못하고 소멸했었다
영화 보러 자주 다니지도 않았는데 더구나 혼자 영화를 보러 간다는 건 나에겐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무료영화 관람이 가능한 영화관이 없어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지만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본다
밀수, 콘크리트유토피아, 달짝지근해를 봤고 다음 달 개봉 한국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통신사 VIP무료영화는 일 년에 6번이다
그래서 한 번은 도서관에서 하는 무료영화를 봤다
토요일마다 영화를 상영하는데 주로 만화영화가 대부분이지만
그중 한 번은 성인이 볼 수 있는 영화도 상영한다
내가 본건 헤어질 결심이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는 무료 글쓰기, 독서모임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모여 소통하는 취미는 아직 피곤하다
더 혼자 마음껏 지내고 싶어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로 여가도 즐긴다
아들과의 소통은 아들 자취방을 일주일 한번 청소해 주는 것으로 한다
처음 아들과 같은 건물로 각각 독립했을 때 아들은 수능준비를 하고 있었고 난 학원을 운영 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 방이 있었고 잠시 없었던 적도 있었지만 늘 있었기에 독립에 설렘이 없어 보였다
처음엔 오히려 불만만 있더니 차츰 혼자 사는 게 편하단다
결국엔 엄마랑 다시 살기 힘들 것 같다고까지 말한다
대입에 실패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기자기한 자취템 살림도 사고
친구들과 그 좁은 원룸에 모여 술을 마시기도 하면서 자취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는 듯했다
몇 달 후 직장을 중소기업으로 옮기면서 청년중소기업 대출을 받아 월세에서 전세로 이사하면서
부족한 돈을 주고 자립을 도왔다
그리고 경제적 지원을 아예 끊었다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데로 돼 가고 있는 줄 알았다
한 달에 두 번 반찬을 만들어 주며 가져가라 하고 같은 건물 오피스텔이지만
자취방에는 가지 않은지 몇 개월째 되던 날이었다
반찬을 만들어 놓고 가져가라고 전활 해도 받질 않았다
몇 번 하다가 급기야 불안한 생각에 자취방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다행히 비밀번호는 늘 쓰던 번호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배달해서 먹은 음식들이 먹던 상태 그대로 치우지 않은지 며칠은 돼 보였고
암막 커튼이 쳐진 채 깜깜한 방에는 음식 썩는 냄새와 쿰쿰하고 쾌쾌한 냄새들로 구역질이 날 뻔했다
입고 벗은 옷들은 좁은 방에 수북이 쌓여 널브러져 있었다
게다가 아들은 출근도 하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자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놀라 깼던 것이다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 안 갔어? 쉬는 날이야?"
"아니 관뒀어!"
"뭐? 몇 개월 다녔다고 또 관둬? 무슨 일 있어?"
"몰라 말 걸지 마! 회사 안 다닐 거야!"
헉! 사춘기 때 그 아들이다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가슴은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이 불안함과 공포 언젠가 느꼈던 적 있었다
이혼하기 며칠 전 그때와 똑같은 기분이었다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바로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또 자취방에 가서 아들의 짜증을 들으며 쓰레기들을 치우다가 쫓겨났다
그렇게 며칠을 반복했다
아무것도 더 이상 묻지도 않고 청소만 했다
"푹 쉬고 싶을 때까지 쉬어 근데 밥은 꼭 먹어"
그게 아들한테 한 말이 다였다
그때 난 학원을 관두고 퇴직한 상태였다
한 달째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는 아들을 보자니 내 속은 내 속이 아니었다
그냥 묵묵히 기다렸다
한 달이 지나자 전화를 받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돈 필요해?"
"응..."
다행이다 싶어 돈을 보내 주고 며칠이 지나니 취직해서 출근했다고 전화가 왔다
곧바로 자취방에 가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어디에 취직했는지 묻지 않았다
직장에서 돌아와 깨끗이 치워진 집과 냉장고에 반찬을 보고는 아들은 전화해 고맙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마음 고생 한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렸을 때 바쁘다는 핑계로 가까이 사시는 친정 부모님에게 아이를 자주 맡겼다
지금도 집밥이 먹고 싶으면 할머니가 해 준 밥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도 소풍 갈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은 꼭 내가 싸주었다
그런데 이혼하기 바로 전 소풍 때 싸준 김밥을 하나도 먹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김밥 왜 안 먹었어? 맛없었어?"
"아니 김밥이 가방에 다 쏟아져서 못 먹었어"
"그럼 다른 거 사 먹었어?"
"아니 아무것도 안 사 먹었는데 괜찮았어 소풍이 너무 재밌었어"
아들은 오직 삼시세끼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 간식을 절대 먹지 않는 아이였다
배고프면 놀지도 않던 애가 괜찮았다고 다음에는 도시락 잘 묶어 싸달라고 태연히 말했다
일회용 도시락을 묶었던 고무줄이 끊어져 다 쏟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혼 후 아들의 소풍 때가 됐는데 김밥 싸 줄 아들이 없었다
다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쏟아져 가방 속에 나뒹굴던 김밥들이
눈앞에 눈물로 방울방울 맺혀 흐릿하게 보이는 듯했다
마음이 아파서 터질 것 같았다
그렇게 김밥이 한이 되었는지 소풍 때가 되면 김밥 20줄은 싸야 직성이 풀렸다
며칠을 김밥만 먹게 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군대 제대 중 고졸검정고시 보러 갈 때도 군대 제대 후 수능시험 보러 갈 때도 김밥을 싸 주었다
"김밥 좀 그만 싸줘"
지금껏 한 번도 반찬 투정 없던 아들의 한마디에 그제야 김밥 싸는 걸 멈추었다
그리고 며칠 전 그 이후로 2년 만에 김밥을 사 먹었다
언제부턴가 다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표현해 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시간이 많으니 아들에게 시간으로 플렉스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일주일에 한 번 집청소를 해 주게 됐다
자주 전화하지 않는 나를 아들도 똑 닮았다
매주 집청소를 하면서 아들과 소통한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깨끗한 집을 보고 냉장고에 채워진 반찬을 보고
<엄마는 널 사랑해 >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밀린 관리비와 각종 영수증 등을 보더라도 잔소리를 목구멍으로 침과 함께 삼켰다
수십 개의 맥주캔과 담뱃갑을 보고도 눈을 감았다
아들의 자립에 내 잔소리는 없어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다
지금은 사업을 시작해 더 바쁘다 보니 엄마의 청소 덕분에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엄마의 쉼을 돕겠단다
효도가 아니라 엄마가 자기 독립을 도운 것처럼 엄마의 독립을 돕겠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돈 플렉스는 못하지만 시간부자인 엄마는
시간으로 플렉스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다행이다